대기업, 중고차 만만하게 봤다가 ‘혼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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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중고차 만만하게 봤다가 ‘혼쭐’
  • 최천욱 hillstate@gyotongn.com
  • 승인 201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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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엔카 지분 이동, 스피드 메이트 철수, GS카넷 조직 개편
가격통제 불능, 금전 사고, 수익 저조 등 “가시밭길”
바잉파워 구축·신모델 필요…“제2도약 될 수도”


"규모만 키웠지 수익이 없다. 대기업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 첫째도, 둘째도 수익이 우선이다. 투자대비 가져가는 게 없는데 누가 더 사업을 진행하겠냐?"

중고차 시장에 불고 있는 대기업의 변화에 대한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SK네트웍스의 스피드메이트가 사실상 철수를 시작한 가운데, SK C&C가 SK엔카를 인수했다.

GS넥스테이션의 GS카넷 역시 부서명을 중고차 판매사업 부문에서 자동차 유통사업본부로 변경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GS카넷 관계자는 "중고차쪽에 많은 변화가 올 것으로 보이나, 이달 중순 이후 있을 조직 개편을 봐야한다"면서 "중고차를 넘어 자동차 애프터마켓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대기업의 크고 작은 변화에서 알 수 있듯, 중고차 시장은 이들에게 '난공불락의 요새'인가?

▲‘자본+브랜드+인적자원’ 무장

업계에 따르면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뛰어든 시점은 2000년경이다.

SK에너지 독립회사인 SK엔카가 첫 테이프를 끊었고 오토큐브(2001년), 자마이카(2003년), GS카넷(2007년), 스피드메이트(2008년)순으로 속속 등장했다.

SK엔카가 등장하기 전 삼성자동차가 1998년 SM520을 런칭하면서 '삼성자동차 서비스센터'에서 정비도 하고 중고차를 판매하는 시스템을 도입 했으나, 2000년 르노에 인수되면서 이 시스템은 없어졌다.

이들은 중고차가 기업 매출과 이익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자본과 브랜드, 인력 등을 내세우면서 앞다퉈 진출 하게 된다.

▲가격통제 불능, 금전사고,  수익저조, 마케팅 실패 등 화중지병(畵中之餠)

업계 측은 대기업들이 중고차 시장에 몸 담은지 10년이 넘었는데 재미를 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가격통제를 들었다.

대기업은 인건비, 세금, 주차 관리비 등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중고차를 비싸게 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매매상사 딜러들은 차를 팔아야만, 생활 할 수 있기 때문에 소매가보다 가격을 더 떨어뜨려 판매하는 것은 다반사.

결국 신차처럼 정해진 가격에 판매를 한다면 이익을 가져갈 수 있으나, 가격을 정해놓고 팔아도 딜러들이 더 저렴하게 팔 수 있기 때문에 가격 통제가 사실상 어렵다는 얘기다.

업계 딜러들의 "중고차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은 이를 둿받침하기에 충분하다.

또 하나는 마케팅 실패 사례다.

SK네트웍스의 스피드메이트는 지난 2008년 세상이 깜짝 놀랄 약속 '세계최초 2년 4만km 품질보증 실시'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며, 업계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런 스피드메이트가 '추억의 중고차'로 남게될 소지가 크다.

A매매단지 내 스피드메이트 매장 관계자는 "철수하는 거 맞다. 자세한 사항은 SK네트웍스 본사에 문의해 보는게 좋다. 여기서 해줄 말은 없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했다.

전(前) 스피드메이트 매장 운영자 B씨는 "지난 해 12월 초 직영점에서 본사 사정에 의해 계약 해지를 해야겠다는 통보를 받아 중순경 정리했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스피드메이트가 시장에서 철수하게 된 배경은 재고금융에 따른 손실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매입을 위해 돈을 빌린 딜러가 차를 판매한 후 전산에 '매도'신고를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실제 차는 없고 전산상에는 차가 있게 된다. 이런 '먹튀' 딜러들로 인해 금융사고가 있었고 피해금액도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스피드메이트 관계자는 "사실 무근이고 처음 듣는 말이다.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은 잘못된 소문이다. 사업부는 그대로 유지한다"며 일축했다.

SK엔카의 경우 2000년 이후 매년 꾸준한 매출 성장을 이루고 있지만, 매출 대비 순이익은 현저히 떨어진다.

업계에 따르면 2010년 이 회사의 매출은 4000억원이 넘는데 순이익은 1%도 안된다.

결국 수익모델일 거라고 생각했던 중고차 시장을 대기업이 만만하게 보고 덤볐다가 '추풍낙엽(秋風落葉)'되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S조합 한 관계자는 "중고차 시장 생리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자본과 브랜드를 내세우면 차가 쉽게 팔릴 것으로 보고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 ‘바잉파워’계층 만들어야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마켓 분야를 창출해 내야 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바잉 파워(Buying Power)를 갖춘 계층을 만들어야 한다. 수입차 보유 고객이 세컨카로 국산차를 사듯, 돈이 있는 사람들이 세컨카로 중고차를 구입하거나 자본력 있는 계층을 중고차 시장으로 끌어 들이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존 시장에서 수익을 내려고 하다보니 업계와 대립의 각을 세우고 결국은 사라지거나 유명무실 해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SK엔카에 과징금을 부과한 것도 결국 수익의 근원이 온라인 광고비에 국한 됐기 때문이다.

▲ '인수'를 통한 제2의 도약

지금까지의 시장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대기업의 중고차 사업은 앞으로도 험난한 ‘가시밭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이런 상황이 반전의 기회가 돼 '제2의 도약'을 가져 올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SK엔카의 합병은 눈여겨 봐야한다.

지난 해 초부터 인수를 추진한 SK C&C가 최근 SK엔카의 최대 주주인 SK에너지 지분 91.74%를 인수했고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민경동 SK C&C 홍보팀 과장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ICT 기술을 기반으로 SK엔카가 가지고 있는 중고차 서비스 기술을 결합해 글로벌 온라인 포털사이트로 키우려고 한다"며 인수배경을 전했다.

이와 관련 임민경 SK엔카 팀장은 "전산 등 새로운 사업영역을 만들어 두 회사에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직영점을 늘린다거나 투자계획 등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민 과장 역시 "온·오프라인 운영 계획 등 구체적인 사업 내용을 논하기는 아직 이르고, 장기적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SK C&C는 ‘PMI(Post-Merger Integration)’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PMI’는 합병을 통한 기업가치의 증가와 주주이익의 현실화를 위한 합병 이후의 조직통합과정을 말한다.

즉 어떤 부분을 SK엔카에 지원하고 이를 통해 어떤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것인지 논의 중인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SK엔카의 오프라인 노하우와 브랜드 이미지, 스피드메이트를 통한 실패사례, SK C&C의 IT기술력 등이 기반이 돼 향후 몇 년 안에 새로운 중고차 모델이 나올 수도 있다.

이렇게 된다면 중고차 업계에는 이 모델이 '새로움(新)'을 넘어 '매서움(辛)'으로 다가오게 될지도 모른다.

▲ “큰 영향은 없지만, 배울 것은 배우면서”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2000년 중고차 거래대수는 169만대이고 지난 해는 325만대다. 대기업들이 중고차 진출 러시를 시작한 이후 2배 가까이 거래규모가 늘어났다.

규모에 비해 질적으로 더딘 성장을 하고 있는 중고차 업계가 길빵(길에서 하는 영업), 허위․미끼매물 등 중고차와 연관된 부정적 단어나 이미지를 정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소비자들에게 깊이 각인 돼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SK엔카, GS카넷, 스피드메이트 등 대기업들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경영방식을 중고차 시장에 접목시켜 새로운 유통질서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배울 점은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 중고차 A쇼핑몰 대표는 “네이버가 SK엔카를 인수한다면 시장에 변화를 주겠지만, 이번 인수로 인해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SK C&C가 IT가 강점이기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 마케팅은 다양한 형태로 시장에 쏟아져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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