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자전용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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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전용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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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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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도심지에는 선진국 도시처럼 보행자가 걸으면서 자유롭게 상가에 들르면서 진열된 물건을 구경하고 쇼핑할 수 있는 그들을 위한 전용구역이 드물다. 서울의 명동이나 인사동에 자동차 통행을 제한하는 구역이 있기는 하나 흉내만 내었을 뿐이다. 이곳의 일부구간에는 여전히 자동차 때문에 보행자들은 늘 불안한 마음으로 거리를 걷게 강제하고 있다. 서울이나 다른 도시도 선진국 도심지에서와 같이 보행자가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보행자전용구역(pedestrianized zone)을 만들 수는 없을까. 보행자전용구역은 자동차 없는 구역(car-free zone)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것은 과거에 자동차가 다니던 도로를 폐쇄한 뒤 보행자만 통행할 수 있도록 관련 시설을 개조한 것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처음 도입되어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전파되었다.

보행자전용구역 또는 자동차 없는 구역은 1960년대초 네덜란드 델프트시에서 처음 조성되었는데 시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게 되자, 전 유럽도시로 전파되어 지금은 웬만한 도시에 이런 구역이 조성,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자동차 없는 구역이 각광을 받는 이유는 구역내 상가의 영업매출액이 크게 늘어나고, 도심지 기능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고, 고객들이 도보로 상가에 접근하는데 용이하며, 자동차 중심에서 사람 중심의 도시이미지를 개선하고, 소음과 대기오염을 감소시키며, 도시경관을 대폭 개선시킬 수 있는 장점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독일은 본, 함부르크, 뮌헨, 쾰른 등 32개 도시에 도심지 통과 도로를 폐쇄하고 보행자전용구역을 조성한 결과, 보행에 의한 상가 방문객이 그전보다 50% 증가했고, 본의 경우는 고객 증가로 인한 영업매출액 상승에 힘입어 상가건물의 부동산 가격이 크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덴마크의 코펜하겐 스트로이(Stroget) 경우도 보행자전용구역 상가 매출액이 그전보다 20-45% 증가한 것으로 보고됐다. 미국은 1959년 미시간주 칼라마주(Kalamazoo) 도심지에 보행자몰(pedestrian mall)을 조성된 이래, 로스앤젤레스, 마이애미, 버펄로, 미니아폴리스 등 많았을 때는 200여개의 도시가 도심지에 자동차 없는 구역을 조성한 바 있다.

초창기에 보행자전용구역을 조성한 도시의 경우 처음부터 순조롭게 진행한 것은 아니었다. 우선 도시의 가장 번화한 지역을 관통하는 도로를 폐쇄하는데 대해 자동차 운전자들이 반대하였고, 특히 대상지의 상가주인들이 영업매출액이 감소할 것을 두려워하여 맹렬히 반대하였다. 반대이유는 고객들이 자동차를 타고 백화점이나 상가를 방문하여 물건을 구매하는 행태에 익숙하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고객들이 자동차 없이 여유자적하면서 상가에 진열된 물건을 구경하고 때로는 구매하는 현상은 거의 상상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네덜란드나 독일의 도시에서 보행자전용구역으로 고객과 관광객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매출액이 크게 증가하면서 상인들의 행태가 바뀌게 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미니아폴리스라 할 수 있는데 도심지에서 영업하는 상가주인들이 보행자전용구역 조성에 소요되는 건설비와 운영비를 부담한 바 있다. 또한 자동차 없는 구역으로 유명한 콜로라도주 보울드와 영국 카디프는 도심지 상가가 중심이 되어 도보로 오는 고객과 관광객을 유치하는데 시정부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 북창동 중앙길에 도심재창조사업의 일환으로 테마가로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북창동 약 28,000평은 2000년 3월 관광특별구역으로 지정되었는데 음식거리와 유흥시설 밀집지역으로 유명하다. 약 190억원을 투입하여 폭 10m, 길이 300m의 중앙길 테마거리 조성, 테마공원 조성, 232대의 지하주차장 건설 사업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이 지역은 시청, 업무, 백화점, 호텔, 금융, 고궁 등이 위치하고 있어 평소에도 24시간 내내 수많은 직장인과 관광객이 붐비는 곳이다. 이곳을 차량과 보행자가 혼잡하게 통행하는 테마거리로 조성하겠다는 것은 아직도 선진국 도시들의 자동차 없는 구역의 성공사례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북창동을 보행자전용구역으로 만들기 위한 구상은 아예 없다. 이는 그 지역의 구청, 건물주, 토지주, 상인 등 이해당사자의 강력한 저항이 있을 것으로 예단하여 처음부터 손쉬운 방안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사업명칭에서 보는 ‘도심재창조’와는 거리가 멀다. 선진국 사례에서 보듯이 정책결정자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시정부, 구청, 이해당사자, 시민단체, 전문가의 참여와 협조, 설득과 조정을 위한 거버넌스를 형성하여 단계적으로 접근하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북창동을 보행자천국으로 만들면 서울시의 또 하나의 명물이 될 뿐 아니라 상가주인들에게는 영업매출액이 크게 늘어난다는 실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루이스 멈포드가 일찍이 자동차의 폐해를 예견하여 도시를 사람중심으로 계획하도록 권고하고, 미국 대도시의 생사(Death and Life of Great American Cities)를 쓴 제인 제이콥스가 급격하게 삭막해가는 도시에 사람이 길거리를 걸으면서 이웃과 얘기하고, 어린이들이 안심하고 뛰어놀 수 있는 거리와 보행환경이 도시 삶의 질을 결정하는 기본이라는 충고를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객원논설위원=김광식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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