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권 문화 정착
상태바
우선권 문화 정착
  • 관리 webmaster@gyotongn.com
  • 승인 2008.05.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객원논설위원·홍창의 관동대 교통공학과 교수>



교통 선진국인 미국은 첨단신호체계, 고속도로 유고검지시스템, 여행시간 예측 프로그램 등 다양한 지능형 교통체계를 지향하는 시설물들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미국에도 구식의 전방향 정지(All Way Stop)가 대부분의 국지도로 교차로에서 굳건히 차량 운행의 질서를 유지시켜 주고 있다.
미국에 간 한국 사람들이 처음 운전하다가 경찰에게 가장 많이 적발되는 사항이 지역 간 도로에서는 과속이고 지역 내 도로에서는 정지신호 위반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전방향 정지이다.
이것은 매우 특이한 제도인 데, 우리나라의 양보시스템과 다른 것이고 프랑스의 오른쪽 도로 우선권 제도와도 다른, 미국의 교통문화 특성이 반영된 모든 방향의 도로에게 우선권을 인정하지 않는 시스템이다.
전방향 정지에서는 어느 차량이든 한번은 일단 정지해야 한다. 그리고 정지를 먼저 한 선착순으로 다시 출발을 하면 된다. 즉, FIFO(First In First Out)인 셈이다.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면 매우 멋진 질서가 성립되는 것이다. 차량이 집단을 이루어 교차로에 접근했을 때도 1열의 차량이 선착순으로 다 처리된 후 2열의 차량들이 다시 선착순으로 출발하면 된다. 만일 누구나 제대로 정지만 했다면, 정지 후 가속에 따른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거의 모든 경우 정지선에 도착한 순서대로 출발하게끔 돼 있다.
전방향 정지는 4지 교차로일 경우에 4way stop으로 보조표지판에 표기가 되어 있고 3지 교차로에서는 3way stop으로 표기된 곳도 있다. 신호교차로에 비유하면 한 교차로에서 차량이 정지한 뒤 출발할 때까지의 시간이 1초일 때, 3지 교차서는 신호주기가 3초이고 4지 교차로는 4초인 셈이다.
물론 모든 지역 내 도로에서 전방향 정지를 실시하는 것은 아니다. 편도 1차선 도로 중 속도제한이 필요한 도로, 즉 시속 25마일(40km/h) 이하의 도로에 교통량이 그다지 많지 않을 때에 그 설치조건이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비뉴, 블르바드, 로드 등의 대로(大路)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스트리트, 드라이브, 레인 등의 소로(小路)에서나 찾아 볼 수 있다.
한편, 미국에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전방향 정지가 유럽에는 왜 없을까? 라는 의문을 가져볼만 하다. 아마도 자동차 변속장치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수동기어 차량에게 전방향 정지를 한 개의 가로축에서 수차례 강요하는 것은 운전자나 차량에게나 모두 무리이기 때문에 자동기어 차량이 주종을 이루는 지역에서나 전방향 정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에는 수동기어 장치 차량이 주종을 이루고 미국에는 자동기어 차량이 주종을 이룬다. 교차로를 신호로 할지 무신호로 할지는 교통량을 중심으로 한 교통흐름의 성격이 많이 좌우한다. 그 다음 무신호 중에서 유럽처럼 원형교차로로 할지 아니면 미국처럼 전방향 정지로 할지는 그 나라의 차량 기어형태와 문화가 좌우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에는 이 같은 시스템이 없는 가? 이유는 간단하다. 전방향 정지나 원형교차로나 기본적으로 우선권이라는 커다란 틀 속에 움직이는 교차로 운영시스템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우선권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이다. 해방 후 격변하는 오랜 세월동안 우리는 규칙보다는 눈치에 더 익숙해져 있고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인지를 판단할 능력을 자의든 타의든 간에 많이 훼손당한 것이다.
양보할 때는 양보하고, 내 권리를 찾아야할 때는 상대방의 양보를 당연시 여기고 내가 먼저 가는 우선권 규칙을 지켜야만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다.
누구나 “양보만 하는 것이 미덕이다”라고 하면 교차로는 아무도 지나가지 못하고 서로 양보만 하다가 아까운 시간만 허비할 것이다. 아무쪼록 우리나라에도 남을 위해 잠시 정지할 줄 아는 우선권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