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 시장 판단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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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 시장 판단 아닐까요?
  • 이승한 기자 nyus449@gyotongn.com
  • 승인 2017.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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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신문 이승한 기자] 지난 14일 일본 이스즈 3.5톤 트럭 ‘엘프’ 출시현장. 차량을 국내 수입하는 큐로모터스 민병관 사장은 슈퍼캡 모델이 출시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2.5톤과 3.5톤 트럭은 원거리 보다는 대도시 권역을 주로 운행하고, 장거리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라 슈퍼캡이 필요하다 판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슈퍼캡은 운전석 뒤에 자투리 공간이 있어 운전자가 잠시 휴식할 때 좌석을 뒤로 젖히거나, 온갖 짐을 보관할 수 있다.

해외에서 검증 받았다는 엘프 기본 성능은 차치하고, 회사의 차량 출시 전략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적지 않은 자동차·화물 업계 관계자가 “시장 분위기와 너무 동떨어진 것 아니냐”고 입을 모았다. “초기 수요 조사를 잘못한 것 같다”는 반응도 나왔다.

실제 많은 트럭 운전자가 좌석 뒤에 자투리 공간이 있고 없고에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안양에서 3.5톤 트럭을 운행하는 정병훈(47)씨는 “인천을 오가며 화물을 실어 나르는데, 짧은 구간이라고 해도 운행 도중에 피곤할 땐 좌석을 젖히고 잠시라도 쉬어야한다”며 “대형트럭처럼 넓지는 않지만, 나름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성에서 3.5톤 트럭을 운행하는 송용하(54)씨는 “차량을 구입할 때 다만 얼마라도 절약을 해보자는 생각에 슈퍼캡이 아닌 일반캡을 구입했는데, 아무래도 화물차는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이 많아 수납공간이 절실하다”며 “슈퍼캡이었으면 좌석 뒤에 물건을 보관해 둘 수 있었는데, 그러지를 못해 조수석에 온갖 잡동사니 물건을 쌓아두니 불편하고 후회된다”고 말했다.

이들 화물차 운전자 주장은 실제 차량 구입 비율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국내 2.5~3.5톤 트럭 구매자 70~80% 정도가 슈퍼캡을 선택한다. 마이티를 판매하는 현대차 관계자도 “차량 구매 고객 상당수가 슈퍼캡을 계약하기 때문에 중소형트럭 시장에서 슈퍼캡이 필요 없다는 판단은 수긍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큐로모터스는 엘프 도입에 앞서 수년간 한국 시장 트렌드를 면밀히 분석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향후 3.5톤 트럭 시장에서 점유율 30%를 달성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출시 초기부터 사소하더라도 시장 분위기와 동떨어진 모습을 보인다면, 목표한 국내 시장 진입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엘프가 1970~90년대 국내 생산돼 향수를 자극하는 모델이라지만, 국내 트럭 시장은 누구도 과거 영광만 믿고 도전할 수 없을 만큼 험난한 곳이다. 어찌됐든 엘프는 이제 막 시장에 진입해 많은 점이 불리하다. 어깨 힘준 채 일방적으로 차량을 공급한다면 시장과 고객에게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시장 소통에 실패하며 참담한 패배를 겪은 ‘히노’ 브랜드 트럭 ‘레인저’ 사례는 ‘엘프’에게 결코 남 일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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