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택시기사’와 택시 비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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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택시기사’와 택시 비하 사회
  • 유희근 기자 sempre@gyotongn.com
  • 승인 2019.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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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신문 유희근 기자] “아니, 내가 가라 그러면 가야 하는 거 아니야? 가, 앞으로 가! 여기서 우회전 해. 좋게 좋게 얘기 하니까 진짜....”

70대 택시기사는 30대 승객을 태운 이후 ‘말투가 공손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목적지까지 온갖 욕설과 ‘반말 지시’를 들어야 했다. 가슴 속에서 화가 치밀었지만 운전대에서 손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택시기사는 결국 목적지에 도착해 승객을 내려 준 후 요금 4200원을 청구했다. 

이제 더 이상 모욕적인 일은 없을 것이라고 여겼던 택시기사의 얼굴로 갑자기 동전이 날아들었다.택시에서 내린 승객이 근처에 주차돼 있던 자신의 자동차에서 동전을 가지고 와 기사를 향해 집어 던진 것이다.

요금으로 4200원 밖에 나오지 않은 짧은 시간 엄청난 스트레스와 충격을 받은 택시기사는 결국 가슴을 부여잡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이후 골든타임 동안 방치되다 뒤늦게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부검 결과 급성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12월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일명 ‘동전택시기사’ 사건은 최근 자신을 숨진 택시기사의 며느리라고 밝힌 한 청원인이 청와대 국민 청원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 사고 2달여 만에 다시 재조명됐다.

게시글에서 청원인은 “(사고로 숨진 택시기사는) 작년에 칠순을 맞이했고 한 달 전 받은 건강검진 결과도 이상이 없었다, 꼭 주먹으로 맞거나 칼에 찔려야 폭행치사죄가 성립되는 것이냐”며 경찰이 동전을 던진 행동 외엔 별다른 물리적 가해가 없다는 이유로 가해자를 단순 폭행 혐의로 검찰에 송치한 것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했다.

동전택시기사 사건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택시 비하를 극단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사례다. 분명 극단적이지만 그렇다고 예외적인 것은 아니다.

지난 2016년 말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취약계층 노동자 노동실테 조사 일환으로 서울시 택시기사의 노동실태를 조사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택시노동자들은 운행 중 승객의 반말, 욕설, 폭력으로 인해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안전도 위협받고 있다”며 “설문 결과 응답자의 46.5%는 1주일에 1회 이상 반말, 욕설, 폭행, 등에 노출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보고서는 “택시노동자는 일반적인 감정 노동자에 비해 폭행노출 위험이 6배나 높고 운전자 절반 이상이 정신불건강 문제가 있다고 보고되고 있지만, 승객의 반말, 욕설, 폭행 문제는 승차거부 등 택시서비스 문제가 항상 먼저 부각되면서 이슈로 부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 동전택시기사가 접했던 상황이 특수하거나 예외적인 건 아닌 것이다.

이번 사건 당시 상황이 담긴 차량 블랙박스와 주변 CCTV 녹화 영상을 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은 계속해서 욕을 하는 승객을 참다못한 택시기사가 항의하는 부분이다.

택시기사가 “택시기사지만 왜 욕을 하냐”고 말하자, 가해자 승객이 “넌 택시기사니까 택시기사만 하면 돼”라고 막말을 한다. 그러자 택시기사는 다시 “택시기사니까 택시기사만 하면 되는데 열심히 돈 벌려는 사람한테 이런 식으로 하면 되는 거냐”고 항의한다.

이 부분을 보면서, 특히 숨진 기사가 “택시기사지만…”이라고 하는 부분에서 막말하는 가해자 승객은 물론 억울하게 욕설을 듣는 택시기사 또한 택시기사를 하대하는 우리 사회의 통념이 내면화돼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실제로 연구보고서를 보면 택시기사들은 애로사항으로 장시간 노동과 사납금에 대한 압박감 다음으로 운전직을 천시하는 우리 사회의 풍토·문화를 꼽았다. 우려스러운 건 이 같이 택시를 하대하고 조롱하는 분위기가 최근 카카오 카풀 등 승차공유서비스 업계와의 갈등 국면 속에서 더욱 증폭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택시업계가 택시회사에 새로 취업하는 청년 택시기사들을 대상으로 사납금을 일부 감면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인터넷 포탈에 올라오자 댓글창에는 현재 택시기사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한 작성자가 쓴 댓글이 가장 많은 공감을 얻었다.

“나 하나로 택시운전은 끝이지 내 자녀는 절대로 택시운전대 못잡게 한다, 정부의 정책실무자는 자녀를 택시기사 시킬 의사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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