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여름 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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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여름 밤의 꿈
  • 교통신문 webmaster@gyotongn.com
  • 승인 2019.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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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호 교수의 ‘자동차 단막극장’

[교통신문] 지난달 개최된 상하이 모터쇼에서 중국의 전기차가 인기를 끌었다. 배터리용량, 주행거리와 같은 기본적인 성능은 물론이고 자율주행과 인공지능과 같은 고급기술까지 적용된 차량이 대거 전시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국 공산품의 가장 큰 장점인 저렴한 가격까지 더해 중국 전기차 회사의 전시 부스가 북적였다고 한다.

5월2일 코엑스에서 개최된 EV 트렌드 코리아 전시회에서는 중국 북경자동차그룹이 세단, 중형 SUV, 소형 SUV 전기차 모델을 한국에 판매한다고 발표했다. 세 차종 모두 주행거리가 400km 정도이고 가격은 3000만원 중반에서 4000만원대 초반으로 알려졌다. 이는 보조금 지급 전의 가격으로 국산 전기차에 비해 훨씬 저렴하고, 특히 중형 SUV의 전기차 모델은 현재 국산 모델이 없어서 그 충격이 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자동차 분야에서 중국의 진출이 활발해지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가장 큰 이유는 자동차 기술의 변화 때문이다. 자동차의 핵심기술은 엔진과 변속기였다. 현대차가 엔진과 변속기의 국산화에 성공한 90년대 초반 이후 상품성이 빠르게 향상되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엔진과 변속기가 빠지고, 모터와 배터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상전벽해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한국보다 한수 아래였던 중국의 전기차가 약진하게 된 것이다. 중국 제품이 보급되기 시작하면 전기차의 대중화 시점이 빨라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지난달에는 우리 정부의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이 발표되었다. 2040년까지 석탄 발전은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35% 수준으로 증대시키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발전 시설을 분산시키고, 에너지효율 상승을 도모하여 에너지 총수요의 증대 속도를 조절하며, 환경 보호 비용을 에너지 가격에 일부 반영하겠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다양한 발전 방식, 효율 증대, 수요 억제, 환경 보전 등이 핵심 목표로 감지된다.

중국의 전기 자동차와 한국의 에너지 기본계획은 일견 관계가 없는 것 같다. 화석연료를 자동차의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던 시대에는 전력수급 상황과 자동차가 서로 무관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기차가 주요 차종으로 부상하면 전력 수급 상황이 자동차와 밀접하게 관계된다. 전력 수급, 전기요금, 자동차 유지비, 차량 가격 등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전체 에너지 수요량은 어느 정도 유지되겠지만, 수송 분야의 전장화가 가속화되면서 화석 연료에 대한 수요는 감소하고, 전력 발전량에 대한 수요는 크게 증대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미래를 위한 에너지 수급계획에 자동차 분야의 전기화 추세를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 50~60kWh 수준의 대용량 배터리를 매일 저녁 각 가정마다 한 대씩 주차장에서 충전하는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이에 대한 전력 수급을 계획해야 한다. 실내에서는 에어컨이, 실외에서는 전기차가 전기를 빨아들이는 한여름의 열대야를 상상해 보자. 필자만 블랙아웃의 서늘한 한기를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갈수록 악화되는 도심의 미세먼지와 대기오염을 고려할 때 전기차는 선택이 아니고 필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북구와 유럽에서는 탈내연기관 시대가 시작되었고 점점 더 강화되는 추세이다.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전력 수요는 증가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신재생에너지의 경우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이 소규모 발전이 다양한 지역에서 추진될 수 있고, 그 발전 방식 자체도 친환경적이라서 비중을 늘리는 것이 유리해 보인다. 자신의 집에 설치된 소규모 태양광과 풍력 발전 장치에서 공급되는 전기를 자신이 사용할 전기차에 충전하여 사용한다면 그 효과는 더욱 클 것이다.

또한 신재생발전 장치의 전력을 저장하는 배터리인 ESS(Energy Storage System)를 전기차의 대용량 배터리로 일부 대체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배터리 충방전 조건을 정밀하게 관리하는 고급 기술이 적용된 전기차의 배터리가, 전력이 충분할 때에는 흡수하고 부족할 때에는 전력망에 전기를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친환경, 분산 발전 전략이 아닐까. 막연하고 거대한 에너지 수급 계획에 대해서 개인이 일일이 대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발전한 전기를 자신의 차량에 충전한다는 개념을 인식한다면 새로운 에너지의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지 않을까? 원전에 대한 찬반으로 분열되는 국론에 대한 정부의 대처도 이런 지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바로 우리의 손으로 환경을 보호할 수 있고 그것이 우리 자신의 이익과 일치한다는 인식의 확산 말이다. 인식이 바뀌면 풍경이 달라지는 법이다.

다시 한 번 전기차 시대의 한여름 열대야를 떠올려 보자. 이번에는 서늘한 한기 대신 시원한 청량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객원논설위원·평택대학교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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