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창간기획] ‘워라밸’ 불똥 튄 정비업계, 균형은 사라지고 갈등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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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창간기획] ‘워라밸’ 불똥 튄 정비업계, 균형은 사라지고 갈등만 남았다
  • 김정규 기자 kjk74@gyotongn.com
  • 승인 201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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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주52시간 ‘직격탄’…‘을대을’ 대립, ‘인력난’ 고조
부정적 전망 가득…“절벽으로 내몰고 있다. 보완책 필요”

 

[교통신문 김정규 기자] 내년부터 주52시간 노동제가 50인 이상 기업체까지 확대 시행되고 최저임금은 시급 8590원으로 올해 대비 2.9% 인상된다. 동시에 정부는 탄력근로제 확대 등 보완 입법을 검토 중에 있으며 국회에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 이상으로 늘리는 법안 등이 계류돼 있다. 이처럼 정부 주도로 노동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가운데 근로시간 단축,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을 위한 조치라는 노동정책이 ‘남의 나라 일’에 불과하다는 업계가 있다. 자동차정비업계는 노동복지 차원에서 진행되는 정부 정책이 경제적 약자인 ‘을(영세업체)대 을(근로자)’의 갈등만 키울 뿐 업계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한다. 정비업계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괄 적용하다 보니 인력난을 가중시키는 등 기형적 구조의 악순환에 빠지게 됐다는 것이다. 영세사업자는 경영부담에 내몰리고, 근로자는 노동권 보장을 주장하며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사이 생산성과 효율성이 위기에 처할게 될 것이란 부정적 전망이 나온다. ‘워라밸’을 추구하는 정부 정책이 그나마 유지되고 있던 정비업계의 노동환경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한숨 섞인 목소리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업종별 차등적용 필요…“현실 감안 실태조사 그리 어렵나”

"정부는 최저임금을 지키지도 못하는 영세 정비업종에 대한 실태조사를 왜 안 할까?" "매년 최저임금을 정할 때마다 `을(영세 업체)과 을(근로자)`의 싸움인데, 근본적인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최근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에 업종별 차등 적용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자 정비업계, 도금, 금형 등을 포함한 중소제조·영세 업종 대표들과 소상공인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그동안 이들은 2020년도 최저임금 동결과 함께 업종별 차등 적용, 지불 능력을 감안한 최저임금 책정 등을 요구해왔다. 업계는 최근 2년 간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고통을 겪고 있는 만큼 최소 동결·업종별 차등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중소기업 리더스포럼`에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업종별 구분 적용은 굉장히 현실적인 요구 사항인데 이를 부결한 것은 현장을 무시한 처사라고밖에 할 수 없다"며 "경영난으로 지불 능력도 없는 영세 소상공인에게 최저임금을 주라고 하는 것은 대안 없이 그냥 범죄자가 되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최저임금위의 결정에 대해 이 같이 강력하게 비판했다.

소상공인연합회도 노동 환경 변화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연합회는 "소상공인 업종 산업규모별 최저임금 차등화, 월환산액 표기 삭제 등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외면당한 것을 강력하게 규탄하며 소상공인들의 분노와 저항을 모아나갈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저임금위 조사에 따르면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최저임금 미만율`은 전 산업 평균 15.5%에 이른다. 특히 최근 2년 새 최저임금이 29.1% 급등하면서 숙박음식업 43.1%, 농림어업 40.4% 등 영세 업종은 평균 30% 이상을 넘어서고 있다. 또 중기중앙회 조사 결과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경영부담이 2년 전보다 4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최저임금위가 최저임금 업종별 구분 적용을 부결한 이상 업계는 정부가 정확한 최저임금 실태조사부터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영세 소상공인과 뿌리 제조업체를 제도권 밖에 방치하지 말고 정부가 업종별 실태조사를 하도록 최저임금위가 `권고 조항`으로 두라는 것이다.

한 정비업체 대표는 "근로자 측은 업종별 최저임금 실태에 대한 정확한 통계 자료가 없어 구분 적용이 힘들다고 하는데, 올해 실태조사에 착수해 내년에는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불능력 없는데 임금만 오르고”…기술인력난 가중 원인

실제 영세 정비업계의 ‘을과 을’ 갈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정부의 노동 정책으로 경영난이 가중되기만 했다는 정서가 팽배하다. 성수동에 있는 한 정비업체 대표는 “들어오는 물량을 처리하기도 쉽지 않다”고 현실을 토로했다. 그는 “근로자들은 주52시간에 따른 노동시간만 고수하고 있고 최저임금이 올랐다고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들어오는 물량도 처리하지 못하는데 무슨 능력으로 임금 기준을 맞춰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문기술 인력난도 업계를 옥죄고 있다. 노동환경이 달라지면서 신규 채용에 나서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정비인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비학과 대학이나 전문직업학교 출신들이 최저임금 인상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완성차 제조사 협력정비업소 한 대표는 “최저임금 인상, 주52시간제 시행 등 노동권 확대 정책이 오히려 신입 기술자의 취업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업계 내에서 고용과 설비 투자를 꺼리고 있어 전문 기술인력이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현실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사정이 조금 낫다는 완성차 협력정비소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강서구에 위치한 한 정비소장은 신규인력 채용이 꺼려진다고 말한다. 그는 “신규 인력을 채용하고 현장에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데 보통 2년의 시간이 걸린다. 최저임금 인상에 맞춰 200만원을 상회하는 금액을 주고 있지만 10년차 팀장급 기술자와 임금 차이가 두 배도 나지 않는 상황에서 누가 신규인력을 채용하겠느냐”고 지적했다. 당장 현장 투입이 가능한 숙련 기술자를 찾아 고용하는 것이 차라리 경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 월 평균 1000대 가량의 정비물량을 처리하는 이곳은 주 근로시간이 이미 40~45시간에 맞춰져 있지만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정비업계 일각에서 제기하는 외국 기술인력 수급안도 대안이 될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언어 소통의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최저임금을 맞춰줘야 하는 현실이 발목을 잡고 있다. 업계는 숙련도에 맞는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제안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업계 한 관계자는 "법적으로 외국인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는 300인 미만 기업들은 인력난이 심해 외국인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며 "이들에게는 최저임금 인상뿐 아니라 임금을 숙련도에 맞게 지급하는 방안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가장 기술인력이 시급한 자동차 판금·도장분야만이라도 '외국인 특정활동(E-7)' 도입직종으로 선정하고 한시적으로 시범운영을 해보자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3년간 전국 총 200여명의 E-7 비자의 외국 기능인력을 판금(100명)과 도장(100명) 분야만이라도 고용토록 해 숨통을 트여 달라는 주장이다.

반면 정부는 정비업계의 가중되고 있는 인력난을 기술자격 완화 등 우회로를 통해 풀려하고 있다. ‘자동차정비산업기사’ 국가기술자격을 ‘과정평가형’을 통해 취득이 가능토록 해 고질적 인력난에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일정 학력 이상 관련 학과를 졸업하지 않으면 응시할 수 없었던 정비산업기사에 누구나 도전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정비업 관련 일자리 창출 효과를 기대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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