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내년 봄까지는 버텨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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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년 봄까지는 버텨야 할 텐데
  • 교통신문 webmaster@gyotongn.com
  • 승인 2020.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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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욱 박사의 대중교통 현장진단

[교통신문] “상욱아, 잘 지내고 있냐?” 이른 아침 걸려온 제주 고향 친구의 안부전화. “요즘 여기 날씨, 정말 끝내준다. 그림이다 그림. 그런데 날씨 좋으면 뭐 하냐, 슬프다 슬퍼.” “청정 제주가 무슨 죄가 있냐. 그놈의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여기는 완전 초토화다.”

내 친구 지후(61)는 17년째 전세버스 회사에 매달 지입료를 내고 25인승 중형 전세버스를 운행하는 자영업 관광 기사다. 이전에 15년 넘게 택시와 중기 덤프트럭도 몰았던 운수업 현장의 베테랑이다. 택시처럼 하루하루 사납금에 쫓길 필요도 없고, 대형사고 위험에 기름값 빼면 남는 것이 별로 없는 덤프트럭에 비하면 비록 몸은 바빠도 운 좋으면 한 번에 목돈을 만질 수 있어 이 업종에 뛰어들었다. 타고난 입담꾼의 재주와 유머, 몸에 밴 부지런함 덕에 단골손님이 끊이지 않아 수입이 제법 짭짤한 편이다. 성수기엔 한 달에 600만 원, 비수기에도 200만 원은 족히 번다.

그런데 친구의 말대로 IMF나 사스보다 열 배는 더한 것 같다는 갑작스러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단 한 사람의 단체관광 손님도 없어 잠시 휴업으로 일손을 접었다. 중국 관광객이 전면 끊기고, 국내 관광객들도 경기 침체 공포와 10인 이상 모임이나 행사를 자제하라는 정부의 권고도 있어 그야말로 단체 관광객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래도 예전 같았으면 중국 관광객이 줄어도 일본 관광객이 있고, 골프장이나 유명 맛집 등을 찾는 내국인 단체 손님들이 조금씩은 있었다.

지금 제주도에는 국제항공이 운행된 지 51년 만에 전면 운행 중단됐다. 렌터카의 가동률은 10%, 전세버스는 가동률 1%다. 줄어든 것은 관광객뿐만이 아니다. 항공편 운항 중단으로 일본 수출길이 막히고 내수가 줄면서 참소라, 도미, 광어 등 해산물이 ‘똥값’이다. 많은 식당이 문을 닫고 학교급식도 중단되면서 가격 폭락을 견디지 못해 농민들은 풋마늘, 양배추 등을 갈아엎고 있다. 제주도민의 1/4쯤은 관광업에 의존해 산다. 관광업이 직격탄을 맞고 농수산업, 건축업 등 지역 경제 전반으로 도미노처럼 하나둘씩 무너지고 있다. 서둘러 제주를 떠나는 불법체류 중국인들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순식간에 기약 없이 사라져 버린 일자리에 대한 공포일 것이다.

다시, 내 친구 이야기다. 그는 당분간 수입은 아예 포기하고 매달 꼬박 나가는 40만원의 지입료와 10만원의 보험료라도 줄여보려고 휴업을 신청해 놓았다. 1개월씩 연장하며 3개월까지 가능하단다. 그나마 내 친구는 비용 부담이 적은 중형버스라서 다행이다. 훨씬 비싼 지입료와 보험료 외에 월 200만원~300만원의 차량 할부금까지 얹혀있는 영세 지입차 주들은 3개월의 휴업 신청 마감이 끝나면 하나둘씩 포기할 지도 모를 일이다. 산업현장의 이런 영세 사업자들이 버틸 수 있도록 정부정책은 보다 촘촘하고 세밀해져야 한다.

당국을 원망하는 친구의 목소리엔 힘이 없어 체념한 듯하다. “정부에서 뭔가 지원한다는 것 같은데, 사업체들에게나 돌아가지 우리 같은 현장의 근로자에게 뭐가 오겠나?”. 두고 보면 알겠지만 이젠 더 이상 기대도 안 한단다. “모든 게 다 그렇지 뭐, 자네도 같이 만들지 않았나? 책상에 앉아 봉급이나 꼬박꼬박 받아먹는 공무원들이 우리 같은 사람들의 사정을 제대로 알기나 하겠나, 항공이나 뭐 좀 덩치 큰 것들은 챙기는 것 같은데...”

“영세 사업자에게 정부에서 융자 좀 해준다는데, 그것도 보증보험 받아오래. 새벽 3시부터 줄 서는 사람들도 있지. 어렵게 보증보험 받아들고 은행에 가니 담보가 부족하다고 안 된다는 거야. 그럼 뭐 하러 주는 거야. 이런 것부터 좀 풀어줘야지.” 정부에서는 대통령까지 나서 ‘민생경제 특단대책’, ‘파격적 지원방안’을 연일 천명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체감하기엔 아직은 역부족인 것 같다. 정책은 ‘타이밍’인데.

최근 제주특별자치도가 도 의회에 보고한 ‘코로나19 대응 추진 상황’ 자료에 따르면 제주지역의 업황은 2월 한 달만 해도 15년 만에 최악의 상황을 알리고 있다. 관광업이 초토화되고 내수가 침체되면서 3월 제주들불축제, 4월 벚꽃축제도 모두 취소된 채 숨을 죽이고 있다. 전 업종에 걸쳐 감원, 무급휴직 등 고용불안이 심화되면서 IMF 때보다 더 혹독한 시련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어디 내 고향 제주뿐만 이겠는가. 6월쯤이면 이 사태가 끝날 것 같다는 전망도 있다. “우리만 끝나면 뭐 하냐, 미국과 유럽에선 지금부터 시작이라는데, 내년 봄까지는 기다려야 하지 않겠나...”

<객원논설위원=한국교통연구원·교통칼럼니스트>

출처 : 교통신문(http://www.gyotong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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