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택배 정책,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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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택배 정책, 누구를 위한 것인가?
  • 이재인 기자 koderi@gyotongn.com
  • 승인 202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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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신문 이재인 기자] 설마 했던 우려가 현실이 됐다.

소비자와 공급자, 이해관계자간 상호 협의를 거쳐 정해져야 하는 서비스 상품과 운용방식, 나아가 거래 편익과 이용가치를 반영한 재화에 대한 산정 기준이 정부 개입 아래 인위적으로 작동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국민 서비스로 자리매김한 택배 물류가, 인명사고를 계기로 당정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면서 탈경제주의적, 탈생산주의적 방향으로 현 자유주의경제체제의 역행을 앞두고 있다.

지난 12일 정부가 확정한 계획안을 보면, 현재 보편화된 주6일제 택배 배송을 주5일제(토요일 작업 중단)로 단축하고, 배송기사 등 현장 인력의 작업시간은 22시로 제한했다.

또 이러한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인력 확충 및 시설 정비‧개선 등에 따른 추가 비용은 택배 요금 현실화를 통해 해결한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당사자의 자발적 의지로 합의와 계약이 이뤄졌고, 그에 대한 선택과 책임은 계약자들의 몫인데도 말이다.

인상분에 대한 금전적 부담은 소비자의 몫으로 돌릴지, 서비스 공급자(택배회사, 영업 대리점, 택배기사)가 분담할지, 구체적 시나리오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 모든 선택권과 결정권을 지닌 시장을 대신해 정부가 매듭지었다는 것이다.

경제활동 주체의 생산 활동은 물론, 시장에서 통용되는 거래행위에 대한 자율성이 훼손된 셈이다.

무엇보다 업체간 자율경쟁을 통해 시장의 요구사항에 부합한 서비스 상품의 개발과 질적 개선, 산업 고도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작위적 연출을 강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시대적 요구사항도 반영하지 못했다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같은 맥락에 있는 운수업(버스‧택시‧화물) 기사들의 행적과 유사한 형태로 업무내용이 변하고 있으나, 유독 택배기사에 초점을 맞춰 반강제적 조치를 취한다는 것은 차별성 특혜라는 이유에서다.

운전기사, 배송기사라고 해서 운전만 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는데 있어 요구되는 제반업무를 단계별로 처리했을 때 비로소 서비스(여객운송, 화물운송)가 종료되는 프로세스로 직무가 확대됐는데, 이러한 시장의 흐름에 정부가 제동을 건 것이다.

​과거에는 버스기사, 택시기사, 화물차 운전자는 차량 운행을, 이외 부대업무는 보조인력이 지원했으나, 시장 흐름에 맞춰 운용방식이 변화했고, 1인 운전자가 다역의 역할을 소화해야 하는 시대에 도래했음에도 말이다.

예컨대 시발점이 된 택배기사의 ‘분류작업’ 역시 소비자에게 상품을 인도하는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오배송‧분실‧파손 등의 사고예방을 위해 배송 담당자 개개인이 맡은 구역별 상품을 직접 확인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물류 프로세스를 포괄적으로 바라보고 접근해야 하는 것이지, 각각의 구간을 나누어 기능적으로 분리해 이해하면 또 다른 불협화음이 야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택배비 인상 부분에서도 논란의 여지는 상당하다.

소비자가 운임을 지급할 때 해당 요금 속에는 운송료, 상하차 및 분류, 시설 사용료가 포함돼 있는데, 집배송 기사의 업무 분담을 위해 별도의 분류작업 인력을 충원하고 그에 대한 비용을 화주 의뢰인을 비롯한 시장 참여자 모두의 몫으로 돌리는 것은 이치에 어긋나는 행위다.

분류인력의 필요성을 제시한 배송기사와, 인력충원 계획안을 발표한 택배회사가, 관련 비용을 각각 지불하거나, 상호 조율을 거쳐 분담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할 문제이지, 정서적 호소를 통해 소비자에게 연대책임을 제안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정해야 하는 택배 가격에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는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번 정부의 택배시장 근로환경 개선대책이 다수의 편익을 위한 것인지, 소수 특정집단을 위한 것인지, 하나하나 되새김질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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