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폭염까지…배달노동자 이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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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폭염까지…배달노동자 이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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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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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콕' 늘어나 업무량 많아져“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휴게실"

서울 구로구 고척동 일대에서 택배 배달을 하는 김 모(42) 씨는 이달 들어 출근길에 '보랭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음식물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시락 형태의 가방이지만, 김씨의 가방 안에는 음식 대신 쿨토시와 여벌의 옷, 여러 개의 아이스팩이 담겨있다.

그의 담당 지역에는 오래된 다세대 주택이나 빌라가 많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이 대부분이고, 택배차가 들어가기 힘든 골목도 곳곳에 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흐르는 '땡볕' 아래에서 택배 물건들을 들고, 지고, 메고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옷은 금세 땀으로 흠뻑 젖는다.

땀을 배출한다는 쿨토시도, 차가운 아이스팩도 난로처럼 달아오른 몸을 식혀주기엔 역부족이다. 에어컨을 틀어놓은 트럭 안이 유일한 대피처지만, 쏟아지는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이다 보면 차 안에 있는 시간은 전체 근무시간의 20%도 되지 않는다.

김씨는 "원래도 여름에 일하기 힘들었지만, 올해 여름은 유독 더운 것 같다"며 "퇴근할 때면 머리가 멍해지는 탈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다 쓰러지겠다'하는 걱정도 들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유행이 시작된 이후 택배 물량이 더 많아져 쉴 시간이 없다"며 "'집콕'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만큼 우리는 더 많이 돌아다녀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택배기사 A씨는 "날씨가 더워진 후 배송 캠프에서 물건을 가져올 때부터 아이스팩이 녹아 택배 상자가 너덜너덜한 경우가 많다"면서 "고객이 항의하거나 배송 점수가 감점될까 봐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자가용을 이용해 택배 일을 하는 '아르바이트 기사'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도 폭염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글들이 많았다. 한 기사는 "에어컨을 틀면 차량 기름이 닳는 게 눈에 보여 무섭다"며 "창문을 열고 운전하지만, 공기 자체가 후텁지근하고, 비가 오면 창문조차 열지 못한다"고 말했다.

냉방이 사실상 불가능한 배달 노동자들은 자구책을 찾으며 더위와 맞서 싸우고 있었다.

서초구 일대에서 전동 킥보드와 도보로 음식 배달을 하는 김 모(40) 씨는 여름을 대비해 아이스팩을 얼려 넣을 수 있는 '얼음 조끼'를 구매했다.

하루 10건 정도 배달을 하는 김씨는 4시간가량 한낮 태양 아래를 누벼야 한다. 꽁꽁 얼려둔 아이스팩도 2시간이 지나면 모두 녹아버리는 탓에 그는 일하는 중간 마트에 들려 얼음물을 사서 조끼에 다시 채워 넣는다.

김씨는 "얼음조끼를 입으면 몸이 무거워지는 단점이 있지만, 더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관악구에서 배달 기사로 일하는 백 모(43) 씨는 30도를 웃도는 날씨에도 안전을 위해 매일 긴바지와 긴 소매 옷을 입고 출근한다. 헬멧에 마스크까지 착용한 채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백씨는 "배달 노동자는 다른 업종과 달리 휴게실도 없어 쉴 곳이 마땅치 않다"며 "정말 더운 날에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잠시 숨을 돌리는 것이 고작"이라고 말했다.

라이더유니온은 "배달 플랫폼에서는 심한 더위 등으로 근무 환경이 악화하면 프로모션 형식으로 배달 수수료를 올려주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일시적인 할증 대신, 기사들의 최저 소득을 보장하는 '안전 배달료'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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