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자가 대기하고 있어도 일시정지하는 보편적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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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가 대기하고 있어도 일시정지하는 보편적 문화
  • 교통신문 webmaster@gyotongn.com
  • 승인 2022.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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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익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횡단보도를 건너기가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건너가려 해도 차량은 보통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운전자는 건너는 사람에게 방해만 안된다면 내가 먼저 통과해도 문제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습관처럼 운전하게 된다. 
자동차와 보행자가 충돌하면 다치는 쪽은 보행자다. 이러다 보니, 보행자는 통행 권리를 차량에 양보하고 그 다음에 건너가는 게 흔한 일이 됐다. 운전자가 양보하지 않으면 보행자가 먼저 조심할 수밖에 없는 차량 중심의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러나 보행자의 안전한 이동권은 기본적 권리이다. 
횡단보도에서 운전자의 일시정지의무 규정이 개정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개정된 도로교통법 제27조 제1항(2022년 7월12일 시행)에 의하면 ‘운전자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거나 통행하려고 하는 때에는 보행자의 횡단을 방해하거나 위험을 주지 아니하도록 그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정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존의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을 때’에 더하여 ‘보행자가 통행하려고 하는 때’가 추가된 것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횡단보도 주변 운전실태를 조사한 결과,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운전자가 보행자에게 양보한 경우는 4.3%에 불과했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보행자의 안전을 외면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고 운전자의 시야에 횡단 중인 보행자뿐만 아니라 횡단보도에서 대기하거나 접근 중인 보행자가 있어도 차량은 일시정지하도록 해 폭넓게 횡단 보행자의 안전을 확보하고자 하는 데 법 개정의 취지가 있다. 
유럽, 일본, 싱가포르 등 국가에서도 횡단보도에서 ‘통행하려고 하는 때’를 포함해 일시정지를 규정하고 있다. 더욱이 미국 등을 포함한 선진국에서는 보행자가 횡단을 위해 접근 또는 대기하고 있을 때 운전자가 일시정지하는 문화가 보편화돼 있다. 
금번 법 개정은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 차량을 살피고 조심하는 ‘차량 중심의 문화’에서 횡단보도에서는 운전자가 보행자를 먼저 살피는, 이른바 ‘차보다는 사람이 우선하는 교통안전문화’가 자리 잡도록 법이 선도해 가는 하나의 과정이기도 하다.
교통사고는 기본적으로 운전자의 주의 소홀, 즉, 사람의 과실을 수반하며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사람이 가급적 실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면에서 ‘보행자가 통행하려고 하는 때’의 의미는 적어도 횡단보도를 앞두고는 운전자가 서행하면서 횡단보도 인근까지 시야를 넓게 확보하고 예기치 못한 보행자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데 있다. 즉 횡단하고자 하는 보행자를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운전자의 과실을 방지코자 하는 것이다.
한편, ‘보행자가 통행하려고 하는 때’를 보는 운전자와 보행자 간에 인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보행자가 횡단보도 가까이 대기하거나 도로 및 차량을 살피는 때,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향해 접근하는 때 보행자가 손을 드는 행위, 기타 운전자에게 횡단 의사를 표시한 경우 등은 보행자의 횡단 의사가 명백한 경우로 보아야 타당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운전자가 주행 중에는 모두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횡단보도에서는 운전자의 시야에 보행자가 있으면 일시정지하여 보행자의 횡단 여부를 운전자가 먼저 살피는 것이 안전하며 보행자 또한 최소한의 방어적 조치로서 차량에 주의하면서 횡단할 필요가 있다.
차도와 보도는 모두 이용 주체가 사람이며, 단지 차도는 사람이 자동차 등을 통해 이용하고 보도는 사람이 도보로 활동하는 공간이다. 횡단보도는 비록 차도에 표시된 영역이지만 보행자의 안전한 횡단을 보장하기 위하여 법이 규정한 보행 공간이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의 12대 중과실교통사고 항목 중에도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보호의무 위반’과 ‘보도가 설치된 도로의 보도 침범’이 명시되어 보행자 안전에 있어서 만큼은 횡단보도와 보도를 같은 수준으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서 횡단보도는 보행자가 통행하는 순간 보도이며 보도에 준하는 보행자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횡단보도 일시정지의무 규정이 개정된 것으로 이해된다. 
법이 개정되었다 해서 횡단보도 사고를 막기에는 부족하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나도 보행자가 된다는 국민의 이해와 사회적 공감대가 요구된다. 
인식의 변화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에 캠페인은 계속돼야 한다. 차량보다는 사람이 우선하는 안전의식이 보편화된 문화로 정착된다면 그 어떤 사고 예방대책보다 보행자의 안전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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