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6주년 기념 인터뷰] 상생의 미덕 지키며 성공한 사업가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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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6주년 기념 인터뷰] 상생의 미덕 지키며 성공한 사업가 되기 
  • 박종욱 기자 pjw2cj@gyotongn.com
  • 승인 2022.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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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운송업계 한 평생...이연익 대원냉동(주) 회장

냉동차 운송·전기 화물차로 학교 급식 자재 운송 
‘상생 경영’ 평판으로 경기협회 이사장직 2연임

  

“당시는 냉동냉장식품을 운송하기 위해 화물차 적재함에 얼음을 별도로 함께 실어야 했어요. 적재물의 저온상태를 유지해야 했으니까요. 매우 중요한 의약품이나 혈액 등의 저온 운송을 위해 몇 대 안되는 냉동냉장 기능을 갖춘 화물차를 운영했는데, 이것들은 모두 수입차들이었습니다.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연익 대원냉동(주) 회장은 자신이 처음 관련 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때인 1970년대 후반을 이렇게 기억했다.
그는 1980년대 초 수협중앙회의 한국냉장이라는 회사의 전무로 재직 중 국내에서 막 기지개를 켜던 냉동차량 운영 전반을 관리하면서 냉동 화물차 운송과 인연을 맺었다고 했다.
그는 한국냉장의 냉동식품을 운송하던 대원냉동이 매각되는 상황에서 회사의 권유로 냉동차량 6대를 인수해 월급제 지입차주를 두고 운영에 참여했다 이후 다른 차주들과 회사를 공동인수해 회사를 차근차근 키워나갔다.
국민 소득이 계속 늘어나면서 냉동식품 소비가 급속히 증가하던 시기를 맞아 회사는 급성장한다. 특히 ‘마시는 우유’를 표방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매일유업과의 거래는 사업은 본격적으로 번창하는 계기가 됐다. 식품 특성 상 저온 냉장이 아니면 유통이 불가능했기에 드라이아이스나 얼음을 채워 운송했던 유통체계를 일소하는 냉동차 운행을 추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면서 냉동운송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호사다마라 할까. 잘 나가던 매일유업 운송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매일유업 사주가 운송권을 자녀에게 물려주겠다고 했으니 달리 대책이 없었다. 당시는 화물운송사업이 등록제로 전환돼 누구나 차량을 구입해 등록만 하면 운송사업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이 어처구니 없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이 회장은 전화위복의 기회를 만난다. 지금도 국내 청정 식자재와 냉동냉장식품 최상위 전문 기업인 풀무원이 막 성장하던 시기, 냉동차량 운송의 필요성이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회장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그의 성실성에 대한 평판이 그를 도왔던 것이다.
이연익 회장은 이후 안정적인 경영을 유지하면서 서울가람물류(주), ㈜케이트란, 유성실업(주) 등 냉동차량 전문 기업으로 풀무원 외에도 네네치킨, 동원산업, 현대그린푸드, 일동제약, 아워홈 등 기업 물량을 운송하고 있고, 최근에는 전기 화물차로 학교 급식 자재 운송분야를 개척하는 등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다. 
그는 2006년 화물운송사업 현장에서 닦고 쌓은 경험과 역량을 운송업계 공동의 이익으로 환원하고자 경기도 화물협회 이사장 선거에 도전해 당선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경기도 화물업계는 전국 최대의 운송사업자와 화물차 보유 지역으로 규모가 가장 커 이사장 선거도 매우 치열하게 전개되곤 했다. 
그는 온건 이미지와 천부적인 성실성, 공익에 우선하는 청렴성 등을 높이 평가받아 내리 2연임에 성공한다. 대부분의 이사장이 단임으로 끝나던 협회의 관행도 그에 의해 깨어졌다. 
“말로만 듣고, 지면으로만 알고 있던 교통신문과 직접 대화하며 관계를 만들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사장 취임 직후였습니다”
그는 당시 업계 최대의 현안이었던 국토교통부의 ‘화물운송사업 선진화법’의 철회 또는 완화를 위해 온몸으로 뛰던 때, 업계의 애로를 이해하고 법령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던 교통신문의 논지를 지금도 기억한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인연이랄 것은 없지만, 업계에 우호적인 정서가 일반화돼 있었어요. 지금도 그렇겠지만 당시에도 몇몇 교통전문지가 있었지만, 교통신문이 단연 제 역할을 해주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신뢰를 잃지 않는 저력과 힘을 갖춘 유일한 전문언론이라고요”
그는 팔순을 코앞에 둔 지금, 이미 사업 대부분을 아들인 이진우 사장에게 맡기고 자신은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근황을 소개했다.
“우리 사회나 기업이나 마찬가지로 젊은 분들이 열심히 일해 성과를 내는 풍토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 그것이지 않습니까”
평생 무리하지 않는 생활, 공존과 상생의 삶을 살아온 원로 사업자의 마지막 덕담이 참 훈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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