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택배실종 사건’의 이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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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택배실종 사건’의 이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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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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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구역 정하는 대리점 막강한 권한 휘둘러
표준계약 안지키고 구역조정 무기 압박하기도

지난달 초 경기 성남시 정자동의 한 고급 아파트에서 배달된 택배가 자꾸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파트 보안업체와 경찰이 폐쇄회로(CC)TV를 분석한 결과 범인은 과거 이 아파트에 택배를 배달하던 A씨였다.
A씨는 자신의 배달구역이 동료 기사에게 넘어가자 앙심을 품고 해코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경찰에서 "배달 구역을 빼앗겨 화가 나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A씨에게 절도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23일 택배업계에 따르면 아파트 밀집지역은 기사들이 선호하는 '꿀구역'으로 통한다. 업무 효율성이 높아 결국 상대적으로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5년 차 택배기사 홍성호(44)씨는 "체력이 곧 돈"이라며 "최근 고급 아파트는 택배함이 1층에 있거나, 프런트에 깔아두고 메시지만 보내면 된다"고 전했다.
고급 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진 황당한 택배 절도사건은 여전히 대리점주가 갑으로 군림하는 택배기사 계약·업무 관행의 병폐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택배기사는 근무시간에 따라 일률적으로 책정된 임금이 아니라 배송 건수대로 수수료를 받는 특수고용직이다. 5년 간 물류업에 종사한 박홍일(34)씨는 "배달구역은 근무시간과 강도, 수익과 직접 관련이 있어 매우 민감한 문제"라고 했다. 문제는 근로조건과 직결되는 배달구역을 주로 대리점주가 결정한다는 점이다.
택배기사 표준계약서는 배달구역을 조정할 때 대리점이 반드시 기사와 합의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했다. 강제 조정은 보통 대리점주가 임의로 구역을 결정하는 경우다. 대리점주가 표준계약서를 따랐다면 A씨 같은 절도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업계 종사자들은 입을 모았다.
홍씨는 "대리점주가 임의로 구역을 조정하면 안된다는 조항이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라며 "얼마 전 새로 들어온 기사가 일을 힘들어해 내가 맡던 좋은 구역 중 일부를 떼어 줬는데, 대리점주가 '새로 온 기사는 이런 구역을 맡으면 안된다'며 자신과 친한 기사에게 그 구역을 다시 넘겼다"고 전했다.
박씨도 "수수료 문제로 소장(대리점주)과 갈등이 벌어지면 구역을 건드려 기사들을 압박하기 시작한다"며 "차량부터 송장 프린터, 전산처리를 위한 유료 애플리케이션까지 모두 내 돈으로 사는 개인사업자이지만 결국 대리점 밑에서 일하는 격"이라고 했다.
진경호 전국택배노조 위원장은 "대리점주가 배달구역 조정에 전권을 행사하는 문제를 방지하려고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합의를 거치도록 명문화했지만 일방적 조정은 여전히 만연하다"며 "계약을 위반하더라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고 계약서를 아예 작성하지 않는 대리점도 많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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