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범 교수의 교통안전 키워드] 중대재해처벌법과 교통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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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범 교수의 교통안전 키워드] 중대재해처벌법과 교통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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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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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학교 이수범 교수

도로 작업자 안전 확보해야

최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계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 이후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된 산업안전 이슈가 전국을 강타했다. 2022년 1월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의 중대재해 예방이다. 이 법은 표면적으로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핵심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사전 예방 조치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나 언론매체를 통해 많은 이들이 느닷없이 사전에 아무런 논의도 없이 이 법이 시행된 것인 양 혼란스러워하거나 두려워하고 있는 것을 접하면서, 우리 사회(또는 구성원)가 아직 안전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안전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안전은 사람들의 행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시스템 관점에서 선제적인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의 문제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사건사고는 계속 반복되기 마련이고, 결국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무엇이 두렵고 혼란스럽단 말인가? 안전사고 자체를 무서워하거나, 사고 이후 책임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안전을 비용의 시각이 아닌 예방과 투자의 관점에서 인식해야 한다. 그것이 출발점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민간 부문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기에 공공의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교통안전 문제에 대해서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시민들의 안전 문제는 재해에 따른 처벌 대상과 수위에 대한 논의를 차치하고서라도 교통수단과 교통시설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버스와 지하철 등 시민들의 교통수단인 대중교통뿐만 아니라, 각종 도로·철도·항공 분야의 교통시설 모두 재해와 연관돼 있다. 하지만, 현실은 재해 발생 시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처벌 대상이나 수위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교통수단과 교통시설의 운영 및 관리주체는 시민의 안전 확보 차원에서 체계적인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교통수단과 시설 관점에서의 이슈 외에도 주목되는 분야는 유지관리 분야다. 지난 몇 년에 걸쳐 도로·철도·항공 등 교통 전 분야는 투자의 측면에서 그야말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화두였다. 기존의 건설 중심에서 운영 중심으로의 투자 전환이 빠르게 확산된 것이다. 도로 부문에 한정해서 보면, 도로 유지관리 분야(포장·구조물 보수 등)에 대한 투자비가 크게 증가했다. 도로 유지관리 분야에 대한 투자비 증가는 도로의 유지관리 업무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교통안전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유지관리 업무 자체가 도로 시설의 안전과 이용자의 안전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교통안전과 중대재해처벌법은 연관돼 있다. 또한 도로 시설과 이용자 관점에서의 안전뿐만 아니라 작업자(종사자) 관점에서의 안전도 간과할 수 없다.

그동안 도로 시설과 이용자 관점에서의 안전은 개선에 대한 큰 노력이 진행돼 온 것이 사실이다. 이에 반해 작업자(종사자)의 안전은 소홀히 인식돼 온 측면이 있다. 한국도로공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7년~2021년) 고속국도 현장 도로보수 작업 과정에서 170건의 교통사고와 5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전국 도로에 대한 통계는 확인된 바 없지만, 그 사상자 수는 상당할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도로 종류(고속국도·일반국도·지방도·시도)별 관리주체인 도로공사, 국토관리청, 지자체 등은 작업자(종사자)의 안전 확보 차원에서 증가하는 도로 유지관리 업무에 비례해 도로 작업 관련 안전 문제가 점차 확대될 것을 대비해야 한다. 1개월 이상의 장기 공사뿐만 아니라 짧은 시간 내 이뤄지고 있는 포트홀 정비·노면 청소 등과 같은 이동작업 과정에서의 작업자의 안전 문제에 대해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는 도로 유지관리 업무의 확대 등의 영향으로 작업자들의 교통사고 위험은 더욱 가중될 것이 분명하다.

도로 유지보수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행정기관인 지자체, 관리청 등은 이미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에 해당한다. 하지만, 작업자들의 안전 확보를 위한 행정기관의 노력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작업자들이 안전하게 도로 유지보수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안전 수칙이나, 여러 도로교통 상황과 위험 상황에서의 대처 방법 등 실질적으로 작업자들의 안전을 확보하도록 하는 매뉴얼, 설명서를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 국토교통부의 도로 공사장 교통관리지침(2018년 개정)은 교통통제에 관한 매뉴얼로서 작업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작업자들의 안전을 담보하는 내용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이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도로 유지관리 분야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일어날 때이다. 작업자 안전 확보를 위해 새롭게 필요한 정책이나 제도는 만들고, 미흡한 부분은 보강해가며 안전한 조직과 사회를 만드는 노력을 계속해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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