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국 박사의 모빌리티 르네상스] 이면도로의 바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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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국 박사의 모빌리티 르네상스] 이면도로의 바른 모습
  • 교통신문 webmaster@gyotongn.com
  • 승인 2024.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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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에 따르면 전체 교통사고 중 50% 이상의 사고가 폭 9m 이하의 좁은 이면도로에서 발생한다. 사망을 수반하는 치명적 사고 또한 좁은 도로에서 50% 이상 발생한다.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정도의 사고는 높은 수준의 자동차 속도가 수반된다. 그렇다면 왜 좁은 도로에서 운전자가 속도를 낮추지 못할까?

미국 또는 유럽에서 운전하다 보면 고속도로와 같은 간선도로와 도시부의 좁은 도로에서 운전자들의 행태가 매우 다름을 느낀다. 미국이나 유럽의 고속도로는 제한속도가 우리나라보다 조금 높다. 유럽에서 많이 운행되는 경차들도 제한속도보다 조금 높은, 과속 단속에 걸리지 않을 정도의 매우 높은 속도로 운행한다. 미국의 경우 고속도로에서 앞차의 범퍼 뒤를 바짝 따라가는 차들도 많이 목격할 수 있다. 즉 고속도로에서 우리 기준으로 조금 과격하다 싶을 정도로 속도를 높이는 차들이 많다.

그러나 도시부의 좁은 도로에서는 대부분 운전자들이 매우 얌전하게 운행한다. 보행자와 같이 사용하는 이면도로에서 보행자가 나타나면 운전자들이 보행 속도로 천천히 운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면도로에서도 보행자는 길가에 붙어 걸어가고 차들이 그 옆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일상이다.

이러한 행태의 차이가 운전 문화의 차이에서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운전자 시야에 보이는 고속도로나 국도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중앙선이 있고 차로를 구분하는 차선이 있고 길 어깨 쪽에는 운전자에게 도로 경계를 보여주는 측대 표시 실선이 있다. 다음으로, 이면도로 정비 사업을 시행하여 깔끔하게 개선된 이면도로를 상상해보자. 도로폭이 비교적 넓다면 중앙선이 있다. 두 차로를 만들기 어려운 좁은 도로의 경우 중앙선은 없으나 가장자리 쪽으로 실선이 그어져 있다. 포장은 고속도로와 마찬가지로 아스팔트 포장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장자리의 실선은 도로 설계 가이드에 따르면 측대를 표시하는 선이다. 측대는 운전자가 차로의 경계를 쉽게 가늠하게 해주어 높은 속도로 운전하도록 도와주는 게 목적이다. 즉 이면도로와 같이 속도가 낮게 관리되어야 하는 장소에 어울리는 시설이 아니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이 실선은 길가장자리구역 표시선이 될 수 있다. 길가장자리구역은 보도를 확보하지 못하는 도로에 반드시 두도록 법이 규정하는 보행자 공간이다.

다시 한번 우리의 이면도로를 떠올려보자. 가장자리 실선 바깥쪽 공간이 보행자가 편안하게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사례가 떠오르지 않는다. 비교적 넓은 길가장자리 공간이 확보된 도로라면 어김없이 그 공간이 자동차의 주차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도와 같은 높은 등급의 간선도로와 도시 이면도로의 이미지를 동시에 떠올려 보면 검은 아스팔트 포장, 깔끔하고 명확하게 그려진 차선 또는 가장자리 실선이 떠오르고 두 이미지 간에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30㎞/h 이하 제한속도가 적용되는 학교앞 2차선 도로를 상상해보면 중앙선까지 존재하므로 지역간 간선도로와 똑같은 모습이다.

네덜란드는 ‘스스로 설명하는 도로(self explaining road)’라는 개념을 도로 설계에 적용해 왔다. 이것은 도로의 모습에 의해 운전자가 적정한 속도를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이 개념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인간의 인식 체계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정보를 얻어내는 경향을 갖는다. 운전자의 인식 체계 내에서 주행 중 도로의 등급(간선도로, 국지도로, 이면도로 등) 구분은 기존 기억 속의 저장 정보와 운전자가 보는 일련의 도로 이미지를 비교하여 결정된다. 도로가 구분되면 이에 맞게 주행 속도가 무의식적으로 정해진다. 이러한 과정은 도로 이미지를 입력받아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진다. 운전자 인식 체계가 낮은 등급 도로로 판단하면 운전자는 보행자 등 돌발 물체를 예상하여 느린 속도를 선택한다. 운전자 인식 체계가 높은 등급 도로로 판단하면 운전자는 돌발 물체가 없다고 예상하여 빠른 속도를 선택한다. 낮은 등급의 도로가 높은 등급 도로의 이미지를 갖는다면 운전자 실수를 유발하여 사고로 귀결된다. 등급 판단의 입력 자료는 각종 노면 표시선, 도로선형(직선, 곡선), 폭, 노면색 등이다. 시야에 들어오는 다양한 디자인 요소가, 동일한 등급 도로에서는 비슷해 보이고 다른 등급 도로 간에는 매우 달리 보여야 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유럽의 간선도로는 우리 간선도로와 같은 이미지를 갖는다. 그러나 이면도로는 우리 이면도로와 매우 다른 이미지를 갖고 있다. 유럽의 경우 포장은 대부분 블록포장이고 우리 이면도로에 항상 보이는 노면 실선이 그려져 있지 않다. 이면도로 입구에는 제한속도 표지 또는 보행자 우선 지구 표지(본앨프 표지와 같은)가 위치한다. 노상주차 구획이 많이 존재하여 도로를 더욱 좁게 만든다. 미국의 경우 아스팔트 포장인 경우가 많으나 유럽과 마찬가지로 노면에 어떤 종류의 선도 없다. 이면도로 교차로에는 언제나 일시정지 표시가 위치하여 방향별 우선권을 표시한다.

도로를 따라 그려진 차선과 측대 선 등은 우리 인식 체계가 해당 도로를 고속 주행에 적합한 간선도로로 인식하도록 작용한다. 운전자 인식 체계가 간선도로가 아님을 무의식 중에 판단하도록 하려면 도로를 따라 그려진 차선, 측대 선, 길가장자리구역 표시선 등을 제거해야 한다. 비교적 넓은 이면도로의 경우 노상주차장 또는 식재 등을 지그재그로 설치하여 더 좁아 보이도록 해야 한다. 스탬프 포장 등 기법을 사용하여 자동차 위주 도로와 다르게 보이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보행자 공간인 길가장자리구역이 없어진다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도로교통법이 개정되어 유럽에서와 같이 이면도로에서 보행자는 전폭을 다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 길가장자리구역 표시선은 필요 없다. 도로를 따라 그려진 선을 없애는 것이 이면도로를 간선도로와 달리 보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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