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시론=선무당이 교통 잡는다
상태바
교통시론=선무당이 교통 잡는다
  • 관리 webmaster@gyotongn.com
  • 승인 2010.03.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객원논설위원·홍창의 관동대 교통공학과 교수

최근 들어 대한민국의 교통 헤게머니는 모 위원회가 꽉 틀어쥐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우측보행', '회전교차로', '교차로 꼬리 물기 근절' 등 경찰청에서 행하는 각종 시책의 원동력이 모 위원회에서 나오고 있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동안 교통학자들이 주장했으나 중앙정부가 해결해주지 않았던 숙원과제들이다. 한꺼번에 해결되니 체증이 내려가듯 시원하기까지 하다는 분도 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신호 체계를 대대적으로 '직진 후 좌회전'으로 전환하는 지금의 세태에는 쓴 소리를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나 싶다. '보이지 않는 힘'과 '비교통 외인부대'에 의해 움직이는 교통정책이 아무런 제지 없이 달리다가 나중에 잘못되면 뒷수습은 누가 하게 될까 걱정이 앞선다. '신호'문제는 보행자 '우측통행'이나 '꼬리 물기' 단속과는 차원이 다르고 매우 복잡한 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직·좌 동시신호' 일색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대부분의 교차로가 직진이 좌회전보다 더 많은 데, 천편일률적으로 직진과 좌회전을 등가(等價)로 취급한 것 자체가 비합리적이라는 지적이었다. 본래 신호기를 처음 설치할 때부터 전문가가 개입하여 적절한 신호체계를 구사해야 하는 데, 요즘 들어 가로등 업체가 자기 편의대로 시공하면은 그만이었다. 결국 행정편의상 '동시신호'가 많아졌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분리신호'의 비중을 높이자는 빌미를 준 것이었다.
그런데 부분으로 전체인양 말하면 민망하다. '추진력'을 갖기 위해 그런 건지는 몰라도 우리의 신호등이 모두 '직ㆍ좌 동시신호' 일색인양 몰아치는 것은 곤란하다. 대대적으로 전환하기 전까지 전국의 신호교차로는 2만 6152개소로 '동시신호'가 1만 565개소(40.4%), '선행 좌회전' 7610곳(29%), '선행 직진' 2,537개소(9.7%), '직·좌 후 직진'이나 '직진 후 직·좌' 등 기타 5440개소(20.8%) 등이었다. 그러므로 '동시신호'는 전체의 과반수가 되지 않고 '선행 좌회전'은 전체 중 30% 미만이라는 사실이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면서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선행 직진이냐 선행 좌회전이냐는 정책결정의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신호현시의 구성과 현시우선순위는 교차로의 방향별 교통량, 중차량 혼재비율, 횡단보도, 인접교차로와의 연동화 구조는 물론이고 도로의 기하구조와 노면표시 및 교통섬과 도류화와 같은 차로의 방향공유의 유무 등 복잡다단한 공학적 결정구조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치 여론몰이 하듯이 "직진 후 좌회전 신호 체계는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하는 자체가 무식한 주장인 셈이다. 
지금 전국은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다. 운전자들은 신호체계가 하루아침에 바뀌자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뒤늦게 현수막을 걸어 놓고 '예측출발'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지만, 교통선진화라는 미명아래 변경된 신호체계가 너무 생소해, 사고 위험이 더 높아졌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좌회전 교통류가 더 중요한 곳까지 직진우선 신호체계로 바뀌어 혼란을 초래하는 곳도 있고 시간대별로 양방향 중 한쪽 방향만 연동화로 교통량을 빨리 빼야 하는 경우에도 '직ㆍ좌 동시 신호'를 직진 후 좌회전으로 바꿔 놓으니 양방향 직진이 되어 전략적 소통이 전혀 들어먹지를 않고 있다. 즉 일률적 전환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조정해 놓은 교차로까지 원점으로 되돌리고 있는 격이다.  
교차로의 현시체계는 '소통'보다 '안전'이 우선이다. 현시의 순서는 사고가 가장 적게 발생하는 방향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집에서 출발하여 목적지까지 이르는 동안 직진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경로 중 여러 번 회전도 해야 한다. 어떤 곳은 회전하는 차량이 많은 경우도 있다. 한 가지 잣대로 모든 교차로를 재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동시신호'든 '좌회전 후 직진'이든 살릴 곳은 살려야 한다. 마녀사냥 식으로 획일화하는 것은 곤란하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전문가와 상의하면서 겸손하게 교통을 다뤘으면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