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국 박사의 모빌리티 르네상스] 보행의 사회경제적 가치
상태바
[우승국 박사의 모빌리티 르네상스] 보행의 사회경제적 가치
  • 교통신문 webmaster@gyotongn.com
  • 승인 2024.03.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만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프랑스 파리 소재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파견되어 1년간 생활하면서 걸어서 출퇴근하는 값진 경험을 얻었다. 대부분의 유럽 도시에서와 같이 아파트 렌트비에 주차비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 차를 소유하는 것이 비싼 제도적 환경이 승용차 구입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1년이라는 짧은 파견 생활 동안 승용차 없이 살아보자는 의지도 있었다. 차가 없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데 집에서 회사까지 걸어가면 약 30분이 걸렸고 전철을 타도 집과 직장 위치가 역에서 다소 먼 탓으로 거의 동일한 시간이 걸렸으므로 걸어서 출퇴근하는 것을 선택했다.

매일 30분씩 출근과 퇴근 두 번 걸으면 약 4㎞~5㎞를 걷게 되는데 이렇게 멀리 매일 걷는 생활은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다. 첫 한 달을 걷고 나니 발이 욱신거리는 발병이 났다. 우리 민요에 ‘10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는 가사가 있다. 10리는 4㎞이니 민요가 꽤 과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매일 걷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데 2달 정도 지나니 살이 빠지기 시작하고 발병은 없어졌다. 1년간 걸어서 출퇴근 한 결과는 5㎏ 감량과 강해진 체력이었다.

직접 걸어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귀국 후 연구원에 보행연구팀을 만들었다. 그때부터 보행과 관련된 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기존 보행과 관련된 연구를 검토해 보면 걷기 좋은 도시 및 교통체계와 걷는 행위는 사회와 개인에게 많은 사회경제적 편익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자들에게 이 글을 통해 어떤 편익이 있는지 소개하고 싶다.

걷기 좋은 도시는 이동 형평성 수준이 높은 도시이다. 우리나라 노인 계층이 선택하는 교통 수단 중 가장 높은 비율 차지하는 것은 보행이다. 약 50% 이상의 빈도로 노인들은 걸어서 이동한다. 걷는 교통수단은 무료이기 때문에 개인의 교통비용을 절약하게 해준다. 따라서 소득이 낮은 계층에서 보행수단 또는 보행 + 대중교통 복합 수단의 점유율이 높다. 걷기 좋은 도시는 연령이나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이동의 기회를 보다 공평하게 제공하는 도시라고 말할 수 있다.

걷거나 이와 연계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승용차 통행의 빈도를 낮추고 자동차가 만드는 경제 외부효과를 줄여준다. 자동차 통행이 많은 도시는 교통 체증, 온실가스 배출, 미세먼지 배출, 소음 등의 외부효과에 시달린다. 이러한 외부효과가 줄어들면 도시가 건강해질 수 있다.

걷는 행위는 그 자체로 훌륭한 운동이 된다. 걷는 행위가 가져오는 건강효과는 심장 질환, 혈관질환, 뇌졸중, 고관절 질환, 당뇨병, 유방암 등의 발병 확률을 낮추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사망률을 낮춘다. 얼마나 걸어야 건강 효과를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견해는 학자 또는 연구들마다 조금씩 편차가 있지만 하루 최소 30분만 걸어도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일반적이다.

하루 3㎞ 정도만 걷는다면 사망 확률이 반으로 줄어든다고 알려져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직장인의 경우 최소 하루 30분은 걸을 수 있을 것이다. 대중교통 이용 만으로 건강 증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 승용차를 지속적으로 이용하여 출퇴근하면 체중조절이 어렵고 체력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따라서 운동효과를 얻기 위해 가급적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출퇴근을 선택하고 있다.

걷기 좋은 도시는 토지이용이 잘 혼합된 도시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직장, 학교, 쇼핑 등 여러 목적지에 걸어서 접근이 가능하자면 이러한 목적지들이 가까운 거리에 배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콤팩트시티라는 개발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같은 목적의 개발 개념으로 비교적 먼 거리는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고 대중교통 역에서 보행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교통 행위를 해결하는 대중교통 중심 개발(Transit Oriented Development, TOD)이 있다. 이렇게 개발된 도시에서는 평균적인 승용차 이용 거리가 줄고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하는 빈도가 높아진다. 결국 걷기 좋은 도시는 토지이용이 잘 혼합된 도시, 대중교통 중심으로 개발 밀도가 높은 도시이고 이러한 도시에서 개인적 사회적 건강 수준이 높다. 많은 사람들이 걷는 도시는 경제활동이 더 왕성하다. 필자가 공부했던 도시인 미국 아틀란타는 도시 중심이 주차장으로 채워진 기형적 도시이다. 경제활동이 왕성했던 구도심이 슬럼화되면서 소득이 높은 백인 계층은 도시 외곽으로 주거를 옮겼다. 그러나 직장은 여전히 도시 중심에 있기 때문에 그들의 편의를 위해 대단위 주차장을 도시 중심에 많이 건설했다. 도시 외곽에 거주하는 직장인들은 자동차로 출근하고 퇴근후 바로 자동차로 집에 가는 생활을 이어가기 때문에 이러한 도시 중심 주차장 건설은 식당, 상점 등 시설의 쇠퇴를 불러왔고 도시 중심의 슬럼화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결국 지금 아틀란타 구도심에서는 걷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고 많은 상점들이 폐업했다. 도시 외곽 주민들을 위한 주차장 건설이 구도심을 망가뜨린 것이다. 많은 보행자를 만날 수 있고 쇼핑과 식당 이용이 왕성한 신도심이 구도심에서 북쪽으로 7㎞ 정도 떨어진 곳에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대단위 주차장이 없다.

종합하자면 걷는 행위는 개인과 사회를 건강하고 윤택하게 만들어 준다. 따라서 많은 시민들이 걸을 수 있도록 걷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매일 그리고 장기간(적어도 한 달)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걷는 행위의 편익을 체감하기 어렵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동 수단으로 보행을 선택하고 그 편익을 체감할 수 있도록 승용차 이용을 편리하게 하는 정책들을 줄여나가고 더 걷도록 하는 유도하는 제도와 캠페인 등에 시간과 재원을 투자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