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부터 중고차 시장은 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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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부터 중고차 시장은 죄가 없었다
  • 김정규 기자 kjk74@gyotongn.com
  • 승인 2021.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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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도 규범이 있다. 재화를 거래하는데 있어 구속되고 준거하도록 강요되는 일종의 행동양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너졌을 때 정부는 시장에 개입을 하고 시장은 제한적으로 자율성을 잃기도 한다.

지금 이와 같은 규범이 무너졌다는 이유로 더 큰 자본에게 시장을 허락해야 한다는 논리가 적용되는 곳이 중고차 시장이다. 해를 넘기면서까지 중고차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둘러싼 논란이 합리적 결론을 내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완성차업계와 시민단체는 연일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의 당위를 규범에서 찾고 있다. 시장질서(규범)이 무너졌으니 대기업의 진입으로 이를 해결하고 소비자 피해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시장 신뢰 회복=대기업의 시장 진출’이라는 등식을 공식화하며 현안을 보는 정서를 지배하고 있다.

이제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더 이상 중고차 매매업을 생계형으로 지정하기 ‘부적합’하다는 동반성장위원회의 의견은 그간의 거래 관행이 문제이기에 구원투수는 대기업뿐이라는 논리로 귀결되며 사안의 본질을 왜곡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문제는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식 주장만 넘치는 난맥상에서 시장 신뢰, 거래 질서 확립이라는 ‘규범’의 문제가 단지 시장의 확장으로 해결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실종됐다는 데 있다. 주장과 논의에 있어 객관성과 균형 있는 비판의식이 사라진 채 정서에 호소하는 양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유독 중고차 시장은 줄곧 혼탁하고 낙후된 시장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대기업이 지배하는 여타 시장에서도 소비자 민원은 있어 왔고 불법행위도 여전하지만 중고차 시장은 그렇지 않아야 한다는 듯, 비판적 논리가 정서를 지배해 시장을 색안경 끼고 보게 하는 모습이 연출돼 왔다.

시장이라는 무형의 사회경제학적 용어 자체가 부도덕할 수 없음에도 일부 불법업자들의 부도덕한 일탈 행위가 전체 시장을 압박하면서 ‘불신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게 과연 합당한 지적일까. 지극히 감정적인 대응과 근거 없는 자본의 논리가 현안의 합리적 혜안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 되새길 필요가 있다. 자칫 시장 규범의 문제가 감정적 결말로 내달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시장은 단순한 매커니즘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손’이든 ‘조작된 손’이든 수만가지 변수의 종합이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는 곳이 시장이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데이터가 시장을 보는 눈에 스며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결국 대기업의 진출은 하나의 변수이지 해법이 아니다. 또 중고차 시장 일부의 부도덕은 규제 당국의 몫이지 자본의 몫이 아니다. 특히나 앞선 중고차 시장 정상화 정책이 종적을 감춰버린 요즘 시장 정화를 자본에 맡기려는 일각의 주장은 정부에게도 부담이다.

자신의 역할인 시장질서 회복의 책임을 대기업에게 전가할 경우 시장의 논리대로라면 자본이 원하는 대가에 대해서도 피드백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질 수 있어서다. 동시에 시장의 규범을 통제해야 할 정부가 그 직무를 자본에 넘김으로써 독점의 폐해와 기업의 이익에 관여하는 불명예를 안을 수도 있다.

시장의 규범은 자생력이 없다. 정부가 역할과 책임의 일관성을 잃은 정책을 피는 사이 중고차 현안이 샛길에서 논의되고 있다. 중고차 시장 그 자체는 과거에도 지금도 죄가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부도덕한 사람이 문제였다. 극히 일부의. 시장 규범을 회복하기 위한 정부의 냉정함과 일그러지지 않은 시각의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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