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국 박사의 모빌리티 르네상스] 노인의 안전하고 편리한 이동성 보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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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국 박사의 모빌리티 르네상스] 노인의 안전하고 편리한 이동성 보장하자
  • 교통신문 webmaster@gyotongn.com
  • 승인 2023.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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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개발도상국의 무역과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인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2021년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분류했다. 이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이 기구의 설립 이후 개도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한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빠른 경제 성장이 낳은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한다. 경제 성장에 젊음을 바친 노인 세대와 그 나머지 세대 간 소득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 것이다. 보통 빈곤선(poverty line), 즉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은 중위 소득의 50%로 정의된다. 우리나라 노인의 빈곤선 이하 비율은 약 40%로 경제개발협력기구 회원국 중 최하위이다. 차별 없는 포용 정책 차원에서 본다면 우리나라 노인 세대는 연령과 소득 모두에서 포용의 대상이지만 교통 측면에서 노인은 포용되지 못하고 소외되고 있는 실정이다.

안전한 이동성 측면에서 노인 이동성 문제를 살펴보자. 노인의 주된 교통수단은 보행이며 약 60%의 이동이 보행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행 안전은 곧 이동성 안전을 의미하는데 우리나라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의 약 60%가 노인인 것을 보면 정부와 지자체의 노인 교통안전 정책이 얼마나 미흡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보행을 주 이동 수단으로 삼는 어린이와 노인에 대한 안전 정책을 비교해보자. 어린이 안전을 위해 어린이가 자주 통행하는 학교 주변의 자동차 속도를 낮추고 안전시설을 설치 사업이 어린이보호구역이다. 최근 통계를 보면 어린이보호구역은 전국적으로 약 1만7000개소가 지정돼 있다. 어린이보호구역은 1995년 법제화됐고 2003년부터 중앙정부가 지자체에 사업비를 지원했다.

어린이보호구역에 해당하는 노인을 위한 보행안전 사업이 노인보호구역이다. 노인보호구역은 현재 약 2000개소 지정돼 있다. 2007년 법제화됐고 중앙정부 지원은 그나마 최근 시작됐다. 2021년 기준 정부의 어린이보호구역 지원 예산은 약 2000억원인 반면 노인보호구역 예산은 약 70억원에 불과했다. 관련 법안의 개정 시점, 지정 개소수, 지원 예산 등의 차이는 어린이 교통안전에 대한 정책 관심에 비해 노인 교통안전에 대한 관심이 크게 낮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차이가 교통사고 통계에서도 잘 나타난다. 최근의 연령별 보행사고 사망자 통계를 보면 어린이가 연간 10명, 65세 이상 노인이 601명이다. 이 비율 추세는 과거에도 변화가 없었다. 노인 인구가 더 많으니 이런 패턴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인구를 고려한 비율을 본다면 예상이 틀렸음을 알게 된다. 어린이 인구 100만 명당 보행사고 사망자수는 약 2명인 반면 노인 인구 100만 명당 보행사고 사망자수는 약 70명이다.

60㎞/h로 달리는 자동차가 보행사고를 일으키면 사망확률이 20%이다. 50㎞/h인 경우 이 확률이 10%로 낮아진다. 이러한 도로의 속도관리 측면에서 노인 이동성 안전을 살펴보자.

도시부의 보행안전은 제한속도를 50㎞/h 이하로 낮추는 소위 안전속도5030 정책에 힘입어 상당히 개선됐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노인 인구 비율이 높은 지방부 마을을 통과하는 도로의 보행 안전은 아직도 정책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10만 명당 보행사고 사망자수를 동지역과 읍면지역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이 차이가 잘 드러난다. 도시부 동지역의 60대와 70대 노인의 인구 10만 명당 보행사고 사망자수는 각각 3.7, 7.8명이다. 지방부 읍면지역에는 6.5, 12.7명이다.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추측된다. 시골 마을 노인 인구 비율이 매우 높은 데다 마을 통과도로의 자동차 속도가 도시부에 비해 높기 때문이다. 지방부의 노인 이동성 안전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노인 이동성 편의 측면 사례를 들어보자. 현 정부 들어 지하철 노인 무임 승차 정책의 개선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무임 승차 연령을 높이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우리나라 노인의 소득 수준이 타 연령층에 비해 매우 낮기 때문에 이러한 연령 조정은 노인 이동성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빨리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소득 수준이 낮은 우리나라 노인 계층에게 대중교통은 매우 중요한 이동 수단임을 정책가들이 인식해야 한다.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약 20%의 노인들이 이동수단으로 승용차를 선호한다. 이 비율은 90년대 이후 급격한 자동차 보급 시대를 겪은 노인 인구의 증가에 따라 앞으로 급격하게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대중교통수단 이용에서 노인들이 가장 불편해하는 것은 계단이다. 경제적 이유로 현재 노인층이 대중교통수단을 많이 이용하고 있으나 신체적 불편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경제력을 가진 노인들은 승용차를 더 많이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 맥락에서 지난 몇년 간 교통안전정책으로 논의돼온 노인 대상 운전면허 반납 유도 정책은 이동성을 제한하는 정책이다.

노인 대상 운전면허 반납의 근거로 노인 운전자 사고 증가를 꼽는다. 이는 사실이나 20세 이하 운전자에게도 같은 문제가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인 면허 소지자 10만 명당 가해 사고 사망자수는 18명이다. 20세 이하의 경우 15명이고 그 외 성인의 경우 7명이다. 일반 성인의 운전 위험성에 비해 노인과 20세 이하 운전자의 위험성이 매우 크다. 노인의 경우 고령화에 따른 원인일 것이고 20세 이하인 경우 운전 경험이 짧은 원인일 것이나 결과적으로 사고가 기타 연령대보다 높은 것은 공통적이다. 이러한 결과를 감안하면 20세 이하 운전자에게도 면허 반납을 권유해야 하는가? 노인의 운전면허 반납을 유도하는 정책을 펴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 일본은 60년째 같은 당이 집권하고 있는 전체주의 국가에 가까운 나라이다. 이 나라에서만 채택되는 정책을 우리가 왜 따라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젊은 시절 국가 발전을 위해 헌신하신 노인들에게 충분한 교통 서비스와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국가와 지자체의 의무이다. 노인의 안전한 이동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노인을 위한 보행안전 정책에 투자해야 한다. 노인보호구역에 예산을 지원하고 지방부 마을주민보호구간 사업 등을 확대해야 한다. 노인의 편리한 이동을 위해 대중교통 무임승차와 같은 정책을 발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연령을 높이기보다 출퇴근 시간대만 제한하는 등의 지혜가 필요하다. 신체적 한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승용차 수단을 이용하고자 하는 노인의 선택도 존중돼야 한다. 운전면허 반납과 같은 정책은 지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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