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송현이 길 따라 걷는 가야 문명 500년
상태바
창녕 송현이 길 따라 걷는 가야 문명 500년
  • 교통신문 webmaster@gyotongn.com
  • 승인 2024.03.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헌 기록 부재…삼국유사에 몇 줄 소개
봉분 120여 기 포함 총 고분 수 300여 기
통 배, 6천여 년 전 제작 추정…일본 앞서
교동 고분군 1지구

한반도의 고대는 과연 고구려, 백제, 신라가 지배한 '3국 시대'였을까.

최전성기에 낙동강 동부, 경북 상주, 호남 동부까지 영토를 넓혔던 가야는 기원 전후부터 서기 562년까지 500년 이상 건재했다. 가야를 빼고는 한반도 고대사를 온전히 구성할 수 없으므로 고대 한반도는 삼국시대가 아니라 '4국 시대'라고 규정해야 옳다는 학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삼국시대란 가야가 신라에 복속된 562년부터 백제가 멸망한 660년까지 98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제4의 왕국·찬란한 문명 : 유네스코가 지난해 9월 가야 고분군 7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린 것은 '제4의 왕국'으로서 가야의 무게를 더했다.

찬란한 가야 문명을 국제적으로 공인한 셈이 됐다. 고분군은 연맹이라는 독특한 정치체계를 유지하면서 주변의 중앙집권 국가와 병존했던 가야를 실증하는 독보적 증거이며,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한 유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녔다는 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평가였다.

가야가 후세에 잊혀 '역사의 미아'가 될 뻔한 것은 문헌 기록의 부재 때문이다. 가야가 국내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멸망 후 500년 이상 지난 뒤 편찬된 '삼국유사'에서이다. 그나마 몇 줄에 그친다.

'철의 나라' '토기의 나라'라고 불리는 가야는 해상을 통해 품질 좋은 철을 중국과 일본, 한반도 동북부 지역에 수출했다. 쉽게 부서지지 않는 토기 제작술을 일본에 전수했다.

가야가 종국에 신라에 병합된 것은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이룩하지 못하고 소국가 연맹에 머물렀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가야 고분군 7곳에는 경남 창녕군 송현동과 교동 고분군이 포함돼 있다. 나머지 6곳은 김해 대성동 고분군, 함안 말이산 고분군, 고성 송학동 고분군, 합천 옥전 고분군,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 전북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이다.

가야를 구성하는 소국은 김해의 금관가야, 고령의 대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고성의 소가야, 창녕의 비화가야, 성주의 성산가야, 상주의 고령가야 등이다.

 

◇송현동-교동 이은 길 : 비사벌이라고 일컬어졌던 비화가야 지역인 창녕에는 송현동 고분군과 교동 고분군을 이은 걷기 길이 있다. '송현이 길'이다. 낙동강 동부에서 신라와 국경을 맞대고 거대한 세력을 형성했던 비화가야의 옛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산책할 수 있는 길이다.

송현이 길은 창녕박물관에서 시작해 송현동 고분군∼송현동 마애여래좌상∼진흥왕 척경비(만옥정 공원)∼창녕 석빙고∼창녕 향교∼명덕수변생태공원∼교동 고분군을 거쳐 창녕박물관으로 원점 회귀한다.

창녕 중심지인 송현동과 교동의 고분군은 비화가야 왕과 지배층의 무덤들이다. 고분들은 가을이면 정상의 은빛 억새밭이 매혹적인 화왕산을 머리 위로 이고, 발밑으로는 평화로운 시가지와 너른 벌판을 내려다보고 있다.

구릉 위에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앉은 고분 무리는 눈부시게 빛났던 옛 문명을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송현동·교동 고분은 봉분이 남아 있는 것이 120여 기이다. 봉분이 남아 있지 않은 180여 기까지 합하면 이곳 고분은 300여 기에 이른다.

1500여 년 전의 고분이 이처럼 많이 남아 있다는 게 쉽게 믿기지 않는다. 이집트 피라미드나 잉카의 마추픽추, 신라와 백제의 고분과 견줄 때 현존하는 가야 고분의 가치는 작지 않을 듯하다.

 

◇가장 오래된 통 배 : 지금까지 발견된 선사 시대 배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어디서 출토됐을까. 하고 많은 해안가나 해양 국가가 아니라 한반도 내륙인 창녕이다.

낙동강 하구부에서 상류 쪽으로 70㎞ 정도 떨어진 창녕 부곡면 비봉리 패총에서 2005년 한국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선이 발견됐다. 이 배는 6천여 년 전 신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200년 이상 된 굵은 소나무 기둥 중간에 숯불을 얹어 속을 태운 뒤 파내는 방법으로 만든 통 배이다. 현재 국립김해박물관에 보관된 이 목선의 잔해는 습지 깊숙이 묻혀 산소와 접촉이 차단됨으로써 썩지 않았다.

이 배는 제작 시기가 일본이나 이집트에서 발견된 고대 목선보다 수천 년 앞선다.

 

창녕에서 발굴된 최고(崔古) 목선 모형.

◇창녕은 '제2의 경주' : 창녕은 '제2의 경주'라고 불릴 만큼 문화재가 많다. 선사시대 유물만 해도 최고(崔古) 목선뿐 아니라,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망태기, 똥 화석 등이 발견됐다. 한반도에서 똥 화석이 나온 것은 창녕에서가 처음이다.

장마면에 있는 지석묘는 북두칠성 형으로 배치된 칠성바위 중 하나였다. 칠성을 구성하는 7개 지석묘 중 나머지 6기는 일제 강점기에 도로공사 자재 등의 용도로 파괴됐다.

기원전 5세기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지석묘는 다른 고인돌처럼 구릉 밑이나 평지에 있지 않고 구릉의 정상부에 있다.

창녕박물관은 지방 박물관이지만 석기, 철기, 토기 등 전시 유물의 대부분이 복제품 아니라 지역에서 발굴된 진품이다. 전시 문화재의 역사성, 진실성이 크게 다가온다.

순수비의 일종으로, 새 점령지를 다스리는 내용을 담은 신라 진흥왕 척경비는 화왕산을 뒷배로 만옥정 공원에 당당하게 서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