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 조건부 운전면허’ 비판할 사안이냐 아니냐
상태바
‘고령자 조건부 운전면허’ 비판할 사안이냐 아니냐
  • 박종욱 기자 pjw2cj@gyotongn.com
  • 승인 2024.05.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문가들 “반발 여론 있으나 가야할 길”

 

고령 운전자에 대한 정부의 ‘조건부 운전면허 제한’ 방침이 발표됐으나 정치권이 가세하면서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br>
고령 운전자에 대한 정부의 ‘조건부 운전면허 제한’ 방침이 발표됐으나 정치권이 가세하면서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경찰은 발표 하루 만에 수정…“특정연령 대상 아냐”

고령 면허자 수·사고 위험 감안하면 더는 방치 안돼

 

정부가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 고령자에 대한 '조건부 운전면허' 도입을 검토한다는 대책을 내놓은 지 하루 만에 '특정 연령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며 발표 내용을 수정했다.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을 의식한 것으로 보이는데, 찬반이 대립해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요한 사안에 설익은 대책 발표로 또다시 혼란을 야기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관계부처에 따르면 지난 20일 국토교통부·경찰청이 공동으로 내놓은 '2024년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대책'에는 '고령 운전자 운전자격 관리, 운전능력 평가를 통한 조건부 면허제 도입 검토'란 내용이 포함됐다.

정부는 보도자료에서 "고령자의 이동권을 보장하면서도 보행자 등의 교통안전을 현저하게 위협하는 경우에 한해 고령자 운전자격을 제한적으로 관리할 방침"이라며 조건부 면허제 도입 배경을 밝혔다.

조건부 면허제는 야간운전 금지, 고속도로 운전 금지, 속도제한 등을 조건으로 면허를 허용하는 방식이다.

소관 부처인 경찰청이 2022년 4월부터 올해 12월까지 총 36억원을 들여 서울대 컨소시엄을 통해 관련 연구개발(R&D)을 진행 중이다. 대상별 조건 부여 기준 마련과 조건에 따른 운전능력 평가시스템 개발이 주요 연구과제다.

조건부 면허제 도입은 인구 고령화에 따라 빠르게 늘고 있는 고령운전자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여겨졌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운전자가 가해자인 교통사고는 3만9614건으로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 교통사고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0.0%로 1년 전(17.6%)보다 늘었다.

 

지난해 3월 부산에서 고령 운전자가 운전한 차량이 행인을 들이받은 뒤 식당으로 돌진해 7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고 현장.

◇부정적 평가와 정치적 반응 : 이 같은 대책을 두고 '고령화 시대에 필요한 제도'란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지만, 교통약자인 어르신들의 이동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게 아니냐는 부정적인 반응도 나왔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라 할 수 있다.

관련 기사에는 "65세가 90대 부모님을 병원에 모시고 다니는 100세 시대인데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라는 것인가", "버스도, 택시도 안 들어오는 시골 어르신들은 무엇을 타고 다녀야 하나", "택시·트럭 등 생계형 고령 운전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조건부 운전면허제 도입에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다.

한 전 위원장은 해당 글에서 "불가피하게 시민의 선택권을 제한할 때는 최소한도 내에서, 정교해야 하고,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며 "오늘 보도에 나온 고연령 시민들에 대한 운전면허 제한 같은 이슈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청은 다음 날인 21일 참고자료를 내고 "조건부 운전면허는 이동권을 보장하고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이며 특정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가 아니다"라고 진화에 나섰다.

경찰청은 "조건부 운전면허는 의료적·객관적으로 운전자의 운전 능력을 평가한 뒤 나이와 상관없이 신체·인지 능력이 현저히 저하돼 교통사고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 운전자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해명했다.

이어 "올해 말까지 고위험 운전자의 운전능력 평가 방법 및 조건 부여 등에 관한 기술개발 연구가 진행될 예정이며, 내년부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충분한 여론 수렴과 공청회 등을 거쳐 세부 검토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교통계 반응 : 이번 ‘고령자 조건부 면허’ 방안은 정부나 교통계에서 오래 전부터 고민을 거듭해 왔으며, 사회 각계각층의 여론을 확인해온 것이라는 점에서 흐지부지할 일이 아니라는 반응이다. 그러나 정치권까지 가세한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전문가 그룹에서도 조심스럽게 사안을 지켜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통전문가는 “거의 10년의 논의 끝에 만들어진 추진방안”이라며 “관련 당국이 당당하게 그간의 연구와 논의 경과를 바탕으로 결과를 만들어내어 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에 나온 정치권의 지적 역시 그동안 논의과정 때마다 제기돼온 반대 논리의 하나다. 차이가 있다면, 좀더 신중하고 세밀하게 추진돼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 것이다. 이를 제도 운영에 관한 행정부와 정치권 간의 시각 차이로 보는 시각이 많다.

실제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고연령 사업용자동차 운전자의 면허 제한과 관련된 생계 문제 또한 몇몇 대책이 검토선 상에 올라와 있지만, 정부 발표에서는 ‘면허 제한’은 보이고 나머지는 없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에 의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고령자 및 고령자 사고 통계 : 사회 고령화에 따라 고연령 운전자 숫자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고, 이에 따른 교통사고 발생 위험과 사고 피해는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늘어난다.

2019년 우리나라에서 운전면허증을 보유한 3264만9584명 중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333만7165명(10.2%), 75세 이상 운전자는 79만4285명(2.4%)로 나타났다.

또 2020년 기준 전체 운전면허 소지자 3319만565명 중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368만 2032명(11%), 75세 이상은 82만7054명(2.5%)로 나타났다. 해를 거듭할수록 고령 운전자 비중이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같은 추세로 미뤄볼 때 향후 5년 후인 2028년에는 운전면허를 소지한 65세 이상 고연령자 숫자는 약 800만명, 10년 뒤인 2038년에는 약 134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고령자 운전에 따른 사고의 심각성에 관한 자료는 무수히 많다. 지난 2021년 삼성화재 부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2019년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가해자인 교통사고는 3만3239건으로, 2015년에 비해 44%가 증가했다.

이 기간의 비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100건당 사망자수, 즉 치사율은 1.7명인데 비해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치사율은 2.9명으로 80% 가량 더 높았다.

또 교통안전공단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교통사고 건수는 2020년 20만9654건에서 2022년 19만6836건으로 줄어든 반면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건수는 2020년 3만1072건에서 2022년 3만4652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경찰청 자료에서는 2018~2022년 5년동안 고령운전자가 야기한 교통사고 건수는 16만816건으로 전체 교통사고의 15.2%를 차지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