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도로 위 러시안룰렛 ‘민식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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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도로 위 러시안룰렛 ‘민식이법’
  • 이재인 기자 koderi@gyotongn.com
  • 승인 2020.0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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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식이법이 시행되면서 화물을 실어 나르는 운전자들 사이에서 볼멘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운전자들에 따르면 모든 문전배송 수행원을 잠재적 범죄자로 치부하는 교통안전 법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누구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운전자의 과실이 제로일 경우에만 민식이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는데, 통상적인 교통사고에서 운전자 과실이 전무한 것으로 결론 내려지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을 감안하면, 스쿨존에서 불가항력적으로 사고에 연루된 배송기사는 엄중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도착지가 학교로 돼 있는 상품을 배송하는 택배기사를 비롯, 학교에서 주문 접수된 먹거리와 교구 부자재 등을 픽업해 목적지로 인도해야 하는 배달대행 이륜차 라이더 등 차량 운전자들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달 25일부터 시행된 도로교통법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민식이법)에 따르면, 이날부터 스쿨존에서 제한속도(시속 30㎞)를 위반해 어린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보험가입에 상관없이 운전자에게 3년 이상 징역이 가해지며,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배송 건당 수수료가 급여로 책정되는 하루벌이 생계형 근로자 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발생한 안전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이 가혹한 수준을 넘어 전무후무한 ‘악법 중의 악법’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민식이법 시행을 앞두고 사방팔방 촬영이 가능한 카메라를 택배차량에 부착함과 동시에, 스쿨존 통행 및 문전배송시 안전수칙을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는 사고예방 교육이 배송기사에게 행해지고 있으나, 사고의 책임을 오로지 배송 수행원인 운전자가 감내해야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이러한 법적 조치가 현실화 되면서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공포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사고예방과 안전강화를 목적으로 마련된 법이 아니라, 사고 당사자를 처벌하는 후속조치에 무게를 둔 졸속법이라는 지적과 함께 대국민을 상대로 한 ‘러시안룰렛’을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쇄도하고 있다.

민식이법 시행에 앞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민식이법 개정을 청원합니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청원인은 “어린이 보호구역 내 어린이 사망사고 같은 과실범죄가 음주운전 사망사고와 같은 선상에서 처벌 형량을 받게 된다”면서 “이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성 원칙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운전자가 피할 수 없었음에도 모든 책임을 운전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며 청원 배경을 제시했다.

법 시행 1일차에 ‘민식이법 1호 피의자’가 발생하면서 법안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거대한 ‘희생양 찾기’ 혹은 ‘희생양 만들기’ 취지가 강하다는 민식이법의 ‘득과 실’은 무엇이며, 억울한 옥살이의 주인공은 누가될지에도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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