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훈 박사의 도시교통] 우회전 일시정지 의무화를 통해 본 교통규제 행정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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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훈 박사의 도시교통] 우회전 일시정지 의무화를 통해 본 교통규제 행정의 현주소
  • 교통신문 webmaster@gyotongn.com
  • 승인 2023.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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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원에서 9살 초등학생이 우회전하던 시내버스에 치여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가 발생한 장소는 어린이보호구역이고 우회전 신호등도 설치돼 있었다. 올해 1월부터 경찰은 우회전 시 발생하는 보행자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우회전 일시정지 의무를 도입했고 3개월의 계도기간을 거쳐 4월부터 단속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회전 일시정지는 법 준수 방법을 운전자들이 잘 모르고 현장에서도 일정한 운전행태가 아직도 정립되고 있질 않다. 그도 그런 것이 우회전을 앞두고 운전자가 판단해야 할 상황이 전방 신호등이 녹색인지 적색인지, 또 횡단보도 신호등이 적색인지 녹색인지에 따라 8가지 에 달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제도 도입 후 오히려 우회전 교통사고가 더 늘어나고 사망자 수도 2배 증가했다는 보도도 있어 의아함을 더 하고 있다.

도시 생활에 있어 도로교통 현장은 운전자나 보행자나 피할 수 없는 공간이다. 그래서 교통문화라는 용어가 있듯이 교통법규 준수는 도시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규범이다. 교통신호를 포함한 다양한 교통규제는 남녀노소 누구나 쉽고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어야 하고 교통규제 당국은 교통안전과 교통의 원활한 소통을 목표로 제도 운영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교통규제 운영에 있어 우리나라는 너무 수동적이고 보수적인 태도로 일관해 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명박 정권 때 오랜 기간 지속돼 왔던 선행 좌회전 방식이 후행 좌회전으로 변경됐고 오랜 기간 많은 전문가들이 도입을 요구해 왔지만 외면했던 라운드어바웃 교차로가 전면 시행됐다. 이는 당시 대통령 직속 기관이었던 국가경쟁력 강화기획단이 개혁과제로 선정하고 나서야 일어난 변화였다.

횡단보도 잔여 시간을 숫자로 표시하는 등기도 도입하는 데 10여 년이 걸렸다. 비보호좌회전은 어떠한가? 하는 둥 마는 둥 어정쩡한 모습이다. 어린이보호구역도 전국적으로 도입하고 있으나 교통사고 예방에 효과가 있는지는 회의적이다.

민원에 이끌려 다니는 수동적인 교통규제로는 2천명대로 줄어든 교통사고를 더 줄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금번 우회전 일시정지 규제가 가져온 혼란은 교통규제 운영의 현실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번을 계기로 교통규제 행정을 재점검하고 미래지향적인 운영개념이 모색돼야 한다.

우선 첫째로 국제규정인 도로표지와 교통신호 협약인 일명 비엔나협약을 따르는 교통규제를 검토해야 한다. 교차로에서 좌회전 신호를 별도로 운영하는 교통신호 방식은 비효율적이고, 녹색신호 시 전 방향으로 통행할 수 있고 적색신호 시 모두 정지해야 한다는 세계 공통의 비엔나 방식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미 국제적 도시가 많고 외국 관광객이 렌터카를 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교통신호 운영을 비엔나협약에 따르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둘째로 첨단 IT 기술과 교통규제의 과감한 접목을 시도해야 한다. 바야흐로 자율주행의 시대가 열렸다. 수많은 센서를 장착한 3세대 자율주행 차량이 일반적인 차량이 되고 있다. 도로 인프라도 지능화되고 있고 교차로 주변은 첨단 IT 장비로 구축되고 있다. 횡단보도에 보행자 유무를 센서로 파악하고 접근하는 차량에 경고도 전달할 수 있다. 교통규제도 획일적 운영에서 탈피할 수 있고 운영 방법도 기존의 틀에서 과감하게 벗어날 수 있게 됐다. 교통규제 방법도 당연히 다양성이 추구돼야 한다.

끝으로 맞춤형 교통규제에 노력해야 한다. 마른 수건을 짜는 자세로 교통사고와 교통정체를 줄이기 위해서는 장소마다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교통규제를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횡단보도 위치의 결정도 교차로의 특성과 교통신호 운영 방법에 따라 차별화돼야 한다. 물론 원칙은 최대한 간단하게 정립하고 단순화된 원칙에서 교통규제를 유연하게 맞춤형으로 운영해야 한다.

안타까운 초등학생의 사고를 보면서, 또 임기응변식의 대책이 난무하는 것을 보면서 차제에 우리의 교통규제 전반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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