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타고 가는 고속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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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타고 가는 고속버스
  • 교통신문 webmaster@gyotongn.com
  • 승인 2019.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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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강상욱 박사의 대중교통 현장진단

[교통신문] 지난 1월 어느 날 오전,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세종시에 위치한 국책연구단지를 운행하는 고속버스에 탑승한 승객은 나 혼자였다.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종종 서너 명이 타고 가는 시외버스를 만나기도 했지만 ‘나 홀로’의 고속버스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래서일까, 여유롭고 한가한 기분도 잠시 뿐. 텅 빈 고속버스에 혼자 타고 가는 기분이 참 묘했다. 이따금 운전석 상단의 거울로 마주치는 운전기사의 시선이 어색하고 불편하기도 했다. 운행하지 않아도 될 버스인데 괜히 나 혼자 때문에 운행하는 것 같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종업원들만 있는 텅 빈 식당에서 혼자 식사할 때의 기분이 딱 이럴 듯 싶다.

서울 강남에서 세종시 국책연구단지를 운행하는 고속버스는 8개 버스업체가 공동으로 하루 1대씩 한 시간 간격으로 하루 17회 운행하고 있다. 세종시에는 버스터미널에서 세종 정부청사를 경유해 서울 강남 터미널까지 운행하는 고속버스가 있으나, 3000여명이 근무하는 세종시 국책연구단지 이용객들의 교통편의를 위해 당국의 협조요청에 따라 정부청사 대신 국책 연구단지를 경유하는 우등 고속버스가 추가로 운행되고 있다.

이 노선의 개통으로 연구단지 직원들과 방문객들은 이전까지 고속버스를 이용하기 위해 정부청사나 터미널까지 10분 넘게 버스나 승용차로 이동해야 하는 불편을 덜게 됐다. 버스운행 업체들 에게도 증가하는 현지 이용객들을 대상으로 KTX와 경쟁우위를 확보한다는 의미도 있다.

이 버스노선은 지난 12월 개통이후 1회 운행에 평균 7명이 탑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말에 반짝 승객이 몰리는 경우를 제외하면 28인승 고속버스가 평일에는 겨우 서너 명을 태우고 다니고 있다. 업계 관계자에 의하면 28인승 고속버스의 운행에 따른 손익 분기점은 15명 정도라고 하니, 손익 분기점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적자로 운행되고 있다는 말이다.

“여러 업체가 나누어서 운행하니까 그렇지 손님이 이렇게 적은데 글쎄, 어느 한 업체보고 운행하라면 하겠어요?” 버스 운전기사의 말이다.

세종시에서 서울로 출퇴근과 출장이 잦아 이 노선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는 필자에게는 어느 날 노선이 없어지거나 감축 운행되는 건 아닌지 조바심이 난다. 필자의 생각에도 예상보다 이용객이 적어 보인다. 국책연구단지와 수도권의 여러 도시를 운행하는 출퇴근 버스와 중복되고, 방문객들에게 홍보가 제대로 안돼 이용객이 적을 듯싶다. 아쉬운 점은 텅 빈 고속버스가 세종시 청사나 정부청사 후문의 아파트 밀집지역을 지나고 있어 어느 곳 하나라도 잠시 정차할 경우 고속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승객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점이다.

현행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은 고속버스에 대해 기종점이 있는 단일 행정구역 내의 1개 정류소에만 중간 정차를 허용하고 있다. 중간 정차를 추가로 허용할 경우 고속버스의 기종점간 논스톱 운행원칙에 배치될 뿐 아니라 일반시외버스 등 타 업종과의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고속버스의 ‘단일 행정구역내 1개소 정차허용’ 규제는 점점 확대되고 있는 도시 생활권과 괴리될 뿐만 아니라 소규모의 도시지역이라 하더라도 세종시처럼 환상형 도로체계로 분산된 도시구조 특성과 같은 지역의 특수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추가로 1개 정류소에 정차하는데 2~3분이면 충분해 직행운행에 지장이 없고 다른 버스업종과 특별한 이해상충이 없는 범위내에서 현지사정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행할 수 있어야 한다. 중간 정차지 추가에 따른 판단에 어려움이 있다면 이해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협의회를 통해 결정하면 된다.

일본은 2002년 버스운송사업의 대대적인 규제완화를 통해 안전문제는 강화하되 버스운행 형태는 대폭 자율화하여 지역 간을 운행하는 노선버스의 중간정차를 얼마든지 허용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버스운송업은 최근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경영난이 가중되고 당국에선 버스요금 인상과 불요불급한 적자노선의 폐지나 감축운행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의 부담이나 불편이 따르는 요금인상이나 노선운행 감축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버스운행 사업제도 전반의 규제개선을 통해 해법을 찾는 방안도 검토됐으면 한다.

<객원논설위원=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교통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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