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국 박사의 모빌리티 르네상스] ‘마을주민보호구간’ 법제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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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국 박사의 모빌리티 르네상스] ‘마을주민보호구간’ 법제화 필요하다
  • 교통신문 webmaster@gyotongn.com
  • 승인 202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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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는 마을 주변을 국도가 통과할 때 보행자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일정 구간을 마을주민보호구간으로 설정하고 교통안전시설 설치 및 제한속도를 낮추는 사업을 2015년부터 시행해오고 있다. 사업 시행 이후 사고건수와 사상자수가 약 30% 이상 감소했으며 특히 사망자수가 60% 이상 감소해 사업의 탁월한 효과가 증명됐다. 이를 바탕으로 국도 마을주민보호구간 사업은 매년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마을주민보호구간 사업은 도시부의 안전속도 5030 정책을 지방부 간선도로가 마을을 통과하는 구간에 확장한 개념이다. 안전속도 5030 사업은 개발밀도가 높은 도시부에서 자동차 운영속도를 50㎞/h 이하로 낮추어 보행사고를 줄이는 정책이다. 이는 교통안전 선진국에서 이미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시행된 정책이지만 우리나라에는 그 도입이 늦어져 2021년에야 시행됐다.

최근 일률적인 속도 제한이라는 비판으로 일부 시간대 또는 일부 구간의 속도가 상향되기도 했으나 보행자가 존재하는 곳의 자동차 속도를 줄여야 교통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는 정책 철학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 도시부에서 선진국과 같은 속도관리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지방부 도로는 주로 이동성에 그 기능이 맞추어져 있어 제한속도가 60㎞/h 이상으로 설정된다. 그러나 교차로 입체화가 되지 않은 일부 국도와 지방도, 시군도 등은 소규모 마을을 통과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 경우 마을 주민의 보행안전이 위협받게 돼 일부 구간에 한해 제한속도를 낮추고 교통안전시설을 보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보행사고 건수를 도시지역인 동지역과 비도시지역인 읍면지역으로 구분해 비교한다면 동지역 발생건수가 높다. 도시 인구 비율이 높은 특성상 이는 자연스럽다. 그러나 사고 심각도를 도시지역과 비도시지역으로 나누어 보면 비도시지역의 심각도가 월등히 높다. 동지역 인구 10만 명당 보행 중 사망자수는 약 1.9명이나 읍면지역의 같은 통계는 약 4.6명으로 2배를 상회한다.

흔히 지방 지역의 인구 감소를 지방 소멸로 표현한다. 생산시설과 문화시설이 도시에 집중돼있어 지방부는 인구를 지속적으로 빼앗기고 있다. 또한 남아있는 주민들 중 노인 인구 비율이 높아 교통안전 문제에 더 취약하다. 도시부에서는 어린이보호구역과 같은 각종 보호구역 사업, 보행환경 개선사업, 그리고 안전속도 5030 정책의 실행으로 선진국 보행안전 정책을 거의 따라잡았다. 그러나 비도시지역인 지방부 읍면 지역은 아직도 보행안전 정책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경제·문화적인 측면 외에 교통안전 측면에서도 지방 지역이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국도에 비해 그 연장이 월등하게 길고 입체교차로가 거의 없는 지방도, 시군도 등 지자체 관리도로는 마을을 통과하는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마을주민보호구간 사업이 더 적극적으로 시행될 필요가 있다. 이를 인식하고 어린이보호구역 사업을 추진한 경험이 있는 행정안전부가 몇 해 전부터 계획을 수립하고 시범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는데 두 가지 필수적 뒷받침이 필요한 상황이다.

첫째 뒷받침은 사업을 정의하고 당위성을 보여주는 법률적 근거이다. 안전속도 5030, 어린이보호구역 등 사업의 원활한 시행을 위해 도로교통법이 안전시설 설치, 제한속도 하향 설정 등을 규정하고 있다. 마을주민보호구간 사업의 경우 이러한 법률적 근거가 없으므로 해당 지역 경찰의 판단에 따라 시설 설치와 속도 규제의 정도가 정해진다. 우리나라 경찰의 교통안전 의식 수준은 매우 높다. 최근 도시부 교통안전 정책의 획기적 변화는 경찰의 안전 역량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러나 법적 뒷받침이 있어야 마을주민보호구간 사업을 추진하려는 도로관리청과 지역 경찰의 협의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어 사업의 확대가 획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법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어린이보호구역 표지판과 같은 시인성이 높은 표지판 및 노면표시를 사용할 근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도로의 안전표지와 노면표시는 도로교통법과 도로법을 근거로 설치된다. 현재 법적 근거가 부재하기 때문에 마을주민보호구간을 알리는 방법은 속도 규제 표지 아래 보조표지를 통한 방법이다. 이는 노란색 넓은 공간에 보호구역 이름과 제한속도 표지를 담은 어린이보호구역 표지판에 비해 그 시인성이 매우 떨어지는 수단이다.

마을주민보호구간 사업을 뒷받침하는 두 번째 중요한 요소는 예산이다. 예산 없이 사업을 추진할 수 없으니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자체의 사업을 관리·평가하고 적재적소에 예산을 뿌려줄 수 있는 행정안전부와 같은 중앙정부부처가 중앙-지방 매칭 형태로 예산 집행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지방자치제에 역행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으나 신규 안전 사업에 한해 반드시 필요하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이 되는 분야에 역량을 집중한다. 따라서 지방정부가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도록 장려하기 위해 중앙부처가 예산 매칭을 전제로 사업을 지원해야 한다.

중앙정부부처가 사업을 주도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보행 안전 사업은 그 역사가 길지 않아서 전문지식을 가진 공무원과 설계전문가가 지방지역에 매우 부족하다. 도로의 품질을 높이는 개선 사업을 진행할 때 예산과 인력이 있어도 관련 경험이 없으면 자동차 속도 위주의 개선 사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행정안전부는 보행안전사업을 20여 년간 주도해 오면서 보행 전문가 자문 풀을 보유하고 있다. 사업의 설계 품질을 높이기 위해 이러한 전문가 집단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마을주민보호구간 사업을 지원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도로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들 법안이 개정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여론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께서 마을주민보호구간 사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널리 알려 사업 확대에 반드시 필요한 법개정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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