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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교통 측면에서 본 '새 주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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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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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기주 교수의 교통 View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통장 아주머니가 최근에 안내장을 하나 전해주고 갔다. 집주인이 먼 거리에 사는 경우에는 등기 우편으로도 '새 주소명'을 알린다고 한다.

안내장에는 지금 살고 있는 주소가 앞으로 '모란길'로 바뀐다는 것이다. 모란 한포기 없는 동네에 그런 이름이 생소하고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관할 관청에 전화를 걸었더니 아파트 동호수가 잘못된 것 이외에는 새로운 주소이름 그 자체에 대해서는 이의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교통에서 주소는 매우 중요하다. 화물운송의 경우, 출발지와 목적지가 모두 주소로 시작해서 주소로 마무리가 되니, 주소가 생명이다. 일반 택배나 배달 혹은 우편업무도 주소가 자산도 되고 노하우도 될 수 있다.
그리고 보행자에게는 주소가 집 찾기에 필수다. 1996년 개봉된 이란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초등학생 주인공은 친구의 공책을 전해주기 위해 주소도 없이 오직 동네 이름 하나만을 갖고 친구의 집을 찾아 헤맨다. 결국 친구의 집을 찾지 못한 주인공은 밤새워 친구 숙제까지 해준다.

우리나라가 영화 속의 이란 시골마을 수준은 아니어도 도로명이 없거나 단독주택단지의 주소가 불규칙하게 정리정돈이 안되어, 집 찾기가 매우 어려운 건 사실이다. 보행교통은 차량을 통한 이동과는 사뭇 다르다. 친구 집을 찾아가는 어린애 눈높이에서, 길 찾기 편한 주소가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새주소 체계일 것이다.  

그러나 아파트 단지는 다르다. 1970년대 이후로 발달한 아파트 문화는 어느새 우리나라의 독특한 장점이 된 부분도 분명 있다. 그 한 예로, 아파트 단지 이름과 동·호수는 체계적인 주소로서 자리 잡고 그 덕분에 집 찾기가 여간 수월해진 것이 아니다. 고층으로 올라간 우리네 아파트는 어쩌면 랜드마크(landmark)로서 지금 시행하는 새 주소 제도의 개선대상에서는 제외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도로 이름 생성을 위해 모델로 삼아야 할 기본이 되었다.

'랜드마크'란 원래 탐험가나 여행자 등이 특정 지역을 돌아다니던 중에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올 수 있도록 표식을 해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행자에게 이 같은 표식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 뜻이 확장돼 건물이나 상징물, 조형물 등이 어떤 곳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의미를 띨 때 랜드마크라 부른다. 서울 시내에 들어섰을 때 남산 타워나 역사성이 있는 광화문, 여의도에서는 고층빌딩인 63빌딩, 강남에서는 한국종합무역센터빌딩 등이 훌륭한 랜드마크다.

유럽에서 길을 걷다보면 성당의 첨탑, 시계탑이 경계표가 된다. 우리나라에도 전국 기차역주변에 있는 급수탑이 '마루지'였다. 과거 증기기관차가 다니던 시절에 증기기관에 물을 공급해 주던 급수시설인 데, 증기기관차가 하나 둘 사라지면서 대부분 철거되고 이제는 전국에 22개 급수탑이 남아 있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재이기도 한, 급수탑이 아직도 보행자들에게는 역의 위치를 알려주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이것이 이른바 랜드마크인 것이다.

우리에게 아파트 단지는 많은 장점과 또 그만큼 많은 단점을 안겨주고 있다. 낮은 단독주택단지 속에서 성냥갑처럼 불뚝 솟은 고층의 아파트 단지가 그리 아름답지는 않지만, 우리네 대단지 아파트는 세계 유례없는 이미 훌륭한 수학적 주소명칭이자 랜드마크인 데, 새 주소라는 하나의 잣대로 이를 또 다시 생경한 이름으로 바꾼다는 것은 납득이 가질 않는다.

정책추진이 무조건 돌격 앞으로가 좋은 건 아니라 본다. 옆방으로 가고 싶을 때, 벽을 허물고 곧장 가는 것보다 방문을 나와 다시 옆 방문을 통해 들어가는 것이 훨씬 부작용이 덜하지 않은가? 때론 직진보다는 돌아갈 줄 아는 게, 부작용을 없애주고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줄 지도 모른다.

아무쪼록 전 국토를 아우르는 '새 주소체계'가 철저한 준비와 공감대 형성을 이루기를 바란다. 그리고 불편, 불합리를 최소화하고 첨단의 GPS나 LBS와의 공존과 조화도 고려해 철저하게 추진하기를 소망한다.
<객원논설위원·관동대 교통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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