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혀요"…졸속 사업추진, '지옥철'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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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혀요"…졸속 사업추진, '지옥철'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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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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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측 실패로 대부분 경전철 사업 '파행'

 

김포골드라인 승강장. 용량을 훨씬 뛰어넘는 이용객들로 언제나 만원이다.

대구·인천·부산 지하철은 적자 눈덩이

"중앙·지방정부 합심해 대책 수립해야"

 

"사람 다쳐요. 밀지 마세요."

지난 20일 오후 6시 30분 김포골드라인 김포공항역 승강장은 퇴근길 승객들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안전요원과 철도 경찰이 밀려드는 승객들을 줄 세우느라 진땀을 뺐지만, 열차가 도착하자 서로 몸이 부딪히는 승객들 사이에서 고함이 터져 나오며 아수라장이 됐다.

간신히 전동차에 몸을 실은 한 승객은 기자에게 "전철을 이렇게 2량짜리로 작게 만든 사람을 찾아내 꼭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포골드라인에서 열차·승강장 혼잡으로 호흡곤란 증세를 호소하는 승객이 잇따라 발생하자, 소방당국은 출근 시간대에 구급차를 전철역에 배치하는 대책까지 내놨다.

대학생 이모(20) 씨는 "열차에 사람이 너무 많아 내릴 때까지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고 숨이 막힌다"며 "버스는 제때 안 오고 도착시간도 예상이 어려워 위험해도 전철을 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요 도시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 개편을 놓고 열린 정책토론회.

 

◇인구 50만 도시에 2량짜리 경전철 : 2019년 개통한 김포골드라인이 넘쳐나는 승객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2량짜리 '꼬마 열차'로 만들어진 배경으로는 잘못된 수요예측과 무리한 사업 추진이 꼽힌다.

김포시는 애초 김포골드라인을 경전철(차량편성 2∼6량)이 아니라, 중전철(6∼10량)인 서울 9호선을 김포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막대한 건설비 부담으로 인해 경전철로 사업 방향을 틀었고, 사업 추진을 서두르기 위해 국비 지원 절차도 밟지 않았다.

결국 김포골드라인은 총사업비 1조5천억원을 한강신도시 입주민들이 낸 교통분담금 1조2천억원과 김포시 예산 3천억원으로 충당했다.

김포골드라인은 국비 지원이나 지방채 발행 없이 도시철도를 건설한 국내 첫 사례가 됐지만, 예산 부담 때문에 차량 편성을 애초 계획한 4량에서 2량으로 줄이는 악수를 뒀다.

전철역 승강장도 2량 규모(33m)로 건설한 탓에 이제 와서 차량편성을 늘릴 수도 없는 구조다.

김포골드라인을 계획한 시점에는 김포시 인구가 25만명이었다. 하지만 신도시 개발로 인구가 50만명으로 늘어날 예정이었던 만큼, 당연히 중전철로 건설했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한편에선 승객 없어 파산하기도 : 잘못된 수요 예측과 무리한 사업 추진으로 인한 경전철 파행 사례는 다른 지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12년 개통한 의정부경전철은 김포골드라인과 정반대다. 실제 승객 수가 예상 수요의 40%를 넘지 못해 3600억원 누적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4년 10개월 만에 사업자가 파산했다.

2019년부터 새로운 사업자가 운영하고 있지만, 의정부시는 최소운영비보전(MCC) 협약에 따라 지난해에만 225억원을 보전해줬다.

2011년 개통한 부산김해경전철은 올해 하루 평균 이용자가 4만명대에 머물고 있어, 김해시가 매년 500억원가량의 비용을 지원해야 해 시 재정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용인경전철도 수요예측 실패로 막대한 세금을 낭비한 사례로 꼽힌다.

용인경전철은 2010년 6월 완공됐지만, 용인시와 시행사가 최소수입보장비율(MRG) 등을 놓고 다툼을 벌인 탓에 2013년 4월에야 개통했다.

용인시는 시행사와 벌인 국제중재재판에서 패소해 이자를 포함해 8500억여 원을 물어줬다.

현재도 하루 평균 이용자가 3만5천명가량인 용인경전철에 연간 300억원가량의 운영비와 함께 경전철 건설 당시 투입된 자금에 대한 원리금 160억원을 부담하고 있다.

용인시 관계자는 "연간 460억원에 달하는 비용이 경전철에 투입되고 있지만, 대중교통이라는 공적인 의미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도시 지하철도 적자 '눈덩이' : 경전철 사업뿐 아니라 대도시 도시철도의 적자도 지방재정에 커다란 짐이 되고 있다.

인천도시철도의 경우 연간 운영적자가 2020년 1591억원, 2021년 1782억원, 지난해 1736억원에 달한다.

대구도시철도를 운영하는 대구교통공사도 매년 2천억원 안팎의 순손실을 기록 중이다.

대구도시철도는 2016년 요금 인상 이후 지금까지 요금을 동결한 탓에 수송원가(3615원) 대비 운임(688원)이 19%에 불과해 큰 폭의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도시철도가 지방자치단체 재정에 큰 부담이 되자, 복지정책으로 볼 수 있는 '65세 이상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분을 정부가 보전해달라는 요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부산시는 지난 2월 정부에 이 같은 요구를 하면서 지난해 부산도시철도 누적 적자 3449억원 가운데 무임수송 비용이 1234억원에 이른다는 점을 강조했다.

도시철도 무임수송은 법령으로 시행하는 보편적 복지정책이어서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는 게 지자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공익서비스손실보전(PSO) 문제는 정부와 지자체 간 역할 분담이라는 원칙에 따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구교통공사 관계자는 "만성적인 적자 구조로 인해 도시철도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며 "지자체 혼자서는 해결이 힘든 만큼,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합심해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병설 인하대 정책대학원장은 "전국의 동시다발적인 신도시 개발사업 등으로 정확한 교통수요 예측을 기반으로 한 교통 인프라 확충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며 "도시철도는 건설과 운영에서 지자체의 재정 부담이 큰 만큼, 중앙정부의 전향적인 지원 확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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