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택시 운전기사 1호 추용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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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택시 운전기사 1호 추용수씨
  • 박종욱 Pjw2cj@gyotongn.com
  • 승인 2010.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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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택시운전은 욕심을 버리는 것"

1968년 첫 면허…42년 외길 '영원한 현역’
1960년대 택시안에서 애낳는 사람도 많아

승차거부, 택시운전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
"조합원은 힘든데 조합은 비대해져" 문제



추용수씨는 올해로 만 70세다. 1968년 개인택시 면허를 받았기 때문에 올해로 42년 동안 운전을 한다. 그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개인택시 운전을 하면서 현장에서 보낸 개인택시 업계의 산증인이다. 이 뿐 만 아니라 약 70여명인 서울개인택시조합 창립 원로회의 회장을 20여년 동안 맡고 있는 서울개인택시업계의 원로 중 원로다.
그러나 그는 다른 원로들과 달리 야성(野性)기질이 있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경우’에 맞지 않으면 육두문자까지 동원하고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점잖은 충고를 하는 다른 원로들과 달리 이같은 성격 때문에 뒷말이 따르기도 한다. 이같은 야성 기질은 대학때도 발휘됐다. 한양대 공대를 다니는 동안 과대표와 공대 학생회장을 지냈고 4.19 데모 때문에 쫓겨다니다가 대학을 수료로 마친 전력이 있다.
그는 이러한 성격 탓에 한번 선택한 길은 그것이 낭떠러지일지언정 좌우를 돌아보지 않고 내달리고, 이 때문에 중간에 다른 기회가 여러번 있었지만 개인택시 운전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 나이로 일흔이 넘은 어르신에 속하지만 오전 5시에 아침식사하고 5시20분에 나와서 저녁 9시나 10시까지 하루 11시간에서 12시간을 꼬박 일하는 ‘영원한 현역’이다. 또한 하루 10만원을 수입을 맞추지 않으면 10시 넘어서까지 일하는 ‘영원한 현역’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개인택시 면허라고 하셨는데 언제 면허를 받았습니까?
▲ 1968년에 받았습니다. 30세 이상에게 개인택시 면허자격이 주어졌기 때문에 서른살 쯤으로 기억됩니다. 첫 개인택시 면허는 1967년 서울에서 4대가 나왔고 이듬해 20대가 나온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받은 분들은 다 작고하시거나 그만두시고 나 혼자만 남았습니다.

-1960년대의 개인택시는 운행은 어땠고 이용하는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그땐 개인택시가 20대 밖에 안됐기 때문에 서울내에서 개인택시를 만나면 이산가족을 상봉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만나면 너무들 반가워했죠. 도로에는 신호등이 없어 경찰의 수신호가 있었고 차량에는 깜박이 같은 것도 없어 개인택시 운전석에서 방향을 수신호로 표시하고 운전했습니다. 오른손을 왼쪽가슴으로 대면 좌회전한다는 표시고 또 오른손을 들면 직진으로 간다는 신호입니다. 이용하는 사람들은 결혼식을 하거나 애를 낳거나 아니면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이용했습니다.

-개인택시 안에서 애를 낳는 경우도 있었습니까?
▲ 그땐 임산부들이 배가 아파야 병원을 갔기 때문에 가는 도중 애를 낳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그래서 차비도 못받고 차안이 피투성이기 되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도 정(情)이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차비를 못받아도 미역을 사서 다시 병원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지금 같아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요. 또 그당시에 서울역에 내린 10명 중 대여섯명은 택시를 탔는데 대부분 시골에서 올라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신발을 벗고 택시를 타는 경우도 있었죠. 타는 분에게 신발을 안벗어도 된다고 하면 오히려 정색을 하며 “방안에 들어가는데 어떻게 신발을 신고 들어갈 수 있느냐”고 되묻기도 했습니다. 추억의 한 장면이지요.

-택시운전에 평생을 받쳤는데 택시의 전성기는 언제였습니까?
▲1988년 올림픽 전후시기로 생각됩니다. 물론 그 이전에 좋았지만 1985년경부터 1990년경이 좋았던 걸로 기억됩니다. 그땐 합승이 심하던 시기였습니다. 아마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땐 수입이 괜찮아서 택시운전하는 사람도 중류층에 속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수입이 너무 떨어졌습니다. 아시다시피 택시가 너무 많고 자가용 보급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또 대중교통이 발달하고 대리운전같은 것이 생겨서 그런 것 같습니다.

-요즘 서울시내 도로에서 택시를 운전하다보면 불편한 점은 무엇입니까?
▲ 대부분 택시는 급해서 타는데 이것을 가로막는 요인이 너무 많습니다. 시내도로 속도도 40-60km가 다수여서 비현실적일때가 많고 조금만 대기하다보면 CC TV가 단속합니다. 한가지를 예로든다면 ‘서울의 숲’ 앞에 차를 잠깐 세워놓으면 그냥 찍혀버립니다. 시내 어디를 봐도 잠시 세워둘때가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버스전용차로가 곳곳에 생겨 차가 밀릴때는 택시가 오히려 버스보다 늦는 것입니다. 누가 비싼 요금을 내고 버스보다 늦게 가는 택시를 타겠습니까? 다수가 타는 버스가 전용차로를 이용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텅텅비어 있을때도 전용차로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 가 없습니다.

-택시의 신속성을 회복하다보면 안전문제가 동전의 앞뒷면처럼 따릅니다. 지금까지 40여년동안 무사고로 운전 하셨다고 했는데 택시운전하는 다른 분들에게 하고 도움을 드릴 말씀이 있다면 어떤말이 떠오르십니까?
▲돈은 승객을 제대로 모시고 열심히 한뒤 따라오는 것입니다. 무슨 선문답 같지만 돈벌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진정한 택시운전은 그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운전에 익숙한 사람들이 도로에서 베풀어야 합니다. 기를 쓰고 끼어들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정이 있는가 보다’하고 양보해줘야 한다.
또 급하게 운전하느라 양보를 받으면 반드시 인사를 해야 합니다. 운전은 기술이 아닙니다. 도로에서 덕을 쌓으면서 운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오랫동안 무사고 운전을 할 수 있고 길게 운전할 수 있습니다. 성급해서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남들보다 덜 벌지도 않습니다. 이 나이에 야간을 뛰지 않고도 남들 못지않습니다.

-연말이면 야간에 일시적 초과수요 때문에 승차거부가 많이 발생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래서는 안되는 겁니까?
▲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고객은 우리가 있게 하는 근본이유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거부한다는 건 자기존재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승차를 거부하고 손님과 언쟁하는 사람은 택시업계를 떠나야 합니다. 그들 때문에 열심히 운전하는 많은 택시기사들이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승객이 떠나간 이유 중 하나는 제도적인 문제 뿐 아니라 우리 택시운전하는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술먹은뒤 승객의 막무가내식 언행이 우리 운전기사들을 괴롭히기도 하지만 그것에 대응하는 것도 요령이 있으면 덜 피해를 입습니다. 그리고 승객의 승차매너도 전보다는 많이 나아진 것입니다.

-얼마전 서울개인택시조합 핵심임원이 구속되는 등 안팎으로 서울개인택시 대표기구인 조합이 시련을 맞고 있습니다. 조합은 무엇이 문제이고 문제가 있다면 앞으로 떻게 변화해야 합니까?
▲ 우선 조합내 견제기능이 너무 약합니다. 또 이사장에게 직언을 하는 사람이 내부에 없고 또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 조합원들은 여러 가지 여건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합은 어려움을 겪는 조합원을 위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바가 너무 심해졌고 기구도 너무 커져버렸습니다.
따라서 조합원의 부담을 덜도록 조합기구와 예산을 줄이고 이사장을 바라보기보다는 조합원이 참여 선택하도록 지부장 직선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감독기관인 서울시도 문제입니다. 조합이 이처럼 어려운 지경에 이른 것은 서울시의 직무유기 탓이 큽니다.
이상택기자 st0582@gyotong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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