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줄이면 사람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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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를 줄이면 사람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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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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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 박사의 교통안전노트

[교통신문] 최근에 정부가 보행자 보호를 위해 추진하는 두 가지 큰 축은 ‘5030’이라 불리는 도심지역 도로 속도하향 정책과 아파트 단지와 같은 도로 외 구역에서의 교통안전 확보방안이라고 본다. 이 두 개의 과제는 서로 상관이 없는 듯하지만 보행사고를 줄이기 위한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어 같이 다루어질 때 그 효과가 배가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중 보행자 비중이 40% 수준으로 매우 높다. 특히 보행자 사망사고의 52.6%가 차선 구분이 없거나 편도 1차로 이하의 폭이 좁은 도로에서 발생하고 있다. 2015년을 기준으로 OECD회원국 인구 10만 명당 보행 중 사망자수는 회원국 평균이 1.1명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3.5명으로 3배 이상 높다. 2014년 UNESCAP 보고서를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보행자 안전이 아제르바이잔이나 키르키스탄과 같은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물러 있어 안전하지 못한 국가로 인식되고 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이 왜 아직까지 반인권적이고 후진적인 사고 다발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자동차 문화를 학습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부족하여 선진국과 같이 장기간에 걸쳐 발전된 안전배려 문화와 인명존중 사상이 미흡한 원인도 있지만 보행자 안전과 관련한 제재의 수준이 미흡하거나 촘촘하지 못한 법망을 탓하기도 한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보행자에게 보․차도 미분리 도로에서 차마와 마주보는 방향의 길가장 자리로 통행하도록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반면, 불법 주․정차 등으로 차와 보행자가 혼재할 가능성이 높은 보․차도 미분리 도로에서의 보행자 보호규정은 미비한 상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면도로 또는 생활도로라고 불리는 이 공간이 보행자 안전에는 무척 취약하다. 이러한 공간에서 발생하는 보행자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30존(제한속도 30km/h 구역) 관련 법안이 정부안으로 발의하여 국회 행안위에 계류 중이다. 30존은 주거지역 또는 상업지역 안의 도로, 도로의 폭이 20m 이하로써 차로수가 2차로 이하면 일방통행, 4차로 이하인 경우에는 양방통행을 허용하고 있다. 도심지역 도로의 속도하향 5030 정책 중 생활도로의 보행자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입법적 조치라고 할 수 있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편도 2차로 이상 일반도로의 제한속도는 1998년 김영삼 정부시절 규제완화 정책의 일환으로 시속 70km에서 상향 조정한 것이다. 그 바람에 다음해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1999년보다 883명이나 증가했다. 교통전문가들은 도시부 도로의 평균차속을 10% 높이면 사망사고는 30% 늘어난다고 조언한다. 1999년에 시행한 규제완화라는 무모한 모험의 결과가 어떤 참혹한 결과를 야기했는지 알 수 있다. 시속 60km에서는 제동거리가 27m인 반면, 30km에서는 6m로 급격하게 짧아진다. 보행자에게는 충격당시 차량의 속도가 사상의 정도를 결정하므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자동차의 속도가 시속 60km에서 50km로 낮춰졌을 때 보행사고는 덴마크가 24%, 호주가 18%로 떨어진다고 발표한 바 있다.

도로교통법에는 도로에서 차와 보행자의 통행방법을 보도와 차도를 구분하여 규정하고 있다. 신호위반․안전표지를 위반하는 등 12대 중과실에 해당하는 교통사고를 도로에서 야기한 경우에는 피해자의 합의나 종합보험 가입여부와 관계없이 형사 처벌하고 있다. 반면, 도로가 아닌 곳에서는 음주․약물운전 인사사고를 제외하면 사망사고가 아닌 한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거나 피해자가 처벌불원의 의사표시를 한 경우에는 처벌할 수 없다. 특히 아파트 단지와 같은 사유지에는 외관상 법정 시설과 동일하게 차선, 중앙선, 보도, 횡단보도 등을 설치했더라도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기 때문에 그 시설에 부여된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운전자를 단속하거나 제재할 수가 없다.

최근 경찰청에서는 보행자 관련 법체계를 개선․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강구하고 있다. 만약 경찰청의 의지대로 아래와 같이 보행자를 두텁게 보호할 수 있는 규정이 생긴다면 보행사고는 대폭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먼저 도로 외 구역과 보․차도 미분리 구역에도 운전자에게 보행자와 충돌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거리를 두고 통행할 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위반 시 범칙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도로교통법을 개정할 예정이라 한다. 또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개정하여 30존뿐만 아니라 도로 외 구역, 보․차도 미분리 구역에서 발생한 보행자 사고도 피해자와 합의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아파트 단지를 보행우선구역으로 지정하여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중대법규 13개 항목으로 추가하는 방안(교통신문 2018. 3. 6. ‘아파트 단지에 보행우선구역을 지정하자’)보다 그 효용성이 훨씬 높다. 이렇게 된다면 교통사고시 인명경시 풍조를 줄일 수 있고, 피해자와 합의하지 않은 경우에만 운전자를 선별적으로 형사처벌함으로써 전과자 양산이라는 문제점도 대폭 완화할 수 있다.

정부가 교통안전 슬로건을 ‘속도를 줄이면 사람이 보입니다’로 새롭게 했다. 그러나 자동차의 속도만 낮춘다고 보행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다. 어떤 공간에서든 보행자를 지킬 수 있는 안전장치도 같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자동차 속도를 줄였을 때 사람이 보이고 보행자도 살릴 수 있다.

<객원논설위원·한국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연구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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