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자동차 정비서비스 현장에 워라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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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자동차 정비서비스 현장에 워라밸은 없다
  • 김정규 기자 kjk74@gyotongn.com
  • 승인 2019.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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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신문 김정규 기자] 최저임금 심의 법정시한 하루를 앞둔 지난달 26일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에 업종별 차등 적용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자 정비업계 내에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동안 이들은 2020년도 최저임금 동결과 함께 업종별 차등 적용, 지불 능력을 감안한 최저임금 책정 등을 요구해왔지만 이번에도 외침은 묻혔기 때문이다.

자동차정비, 도금, 금형 등 자동차 영세 업종 대표들은 지난달 27일 `중소기업 리더스포럼`이 열린 제주 롯데호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최저임금위의 결정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이들을 대표해 "업종별 구분 적용은 굉장히 현실적인 요구 사항인데 이를 부결한 것은 현장을 무시한 처사라고밖에 할 수 없다"며 "만성적인 경영난으로 지불 능력도 없는 영세 소상공인에게 최저임금을 주라고 하는 것은 대안 없이 그냥 범죄자가 되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소상공인연합회도 이날 성명을 내고 유감을 나타냈다. 성명서에선 "규모별 차등 적용 등 최소한의 당연한 요구도 위원회가 외면한 것에 대해 소상공인들이 분노하고 있다"며 날을 세웠다.

정비업을 포함한 자동차관리 서비스업계는 최저임금위가 최저임금 업종별 구분 적용을 부결한 이상 정부가 정확한 최저임금 실태조사부터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영세 소상공인을 법적 테두리 밖에 방치하지 말고 정부가 업종별 실태조사를 해달라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정비업종의 고용난을 부추기고 있다는 주장도 여기서 나온다. 정비업계 자체적으로 특성화고 등을 통해 전문 인력을 양성, 고질적인 고용난을 해결하려 해도 이제는 이들을 채용하려는 업체가 사리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임금인상에 따른 부담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최저임금 인상이 주 52시간 시행과 묶여 노동자의 삶의 질(워라밸)을 당장이라도 올려줄 것처럼 여기저기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소외된 영세 사업장에선 여전히 ‘눈먼 사회정책’으로 서로 제 살을 깎는 잔인한 게임이 진행 중이다. 상대적으로 만성적 경영난에 허덕이는 영세 사업자인 ‘을’과 연일 초과 노동에 시달리는 소속 노동자인 또 다른 ‘을’의 갈등만 양산하며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워라밸’이라는 뜬구름이 우리 내 일상의 잔인한 ‘체험 삶의 현장’에도 내려앉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동네 허름한 공장에서 벌어지는 ‘워라밸’은 ‘한 여름 밤의 꿈’처럼 비현실적이다. 이제라도 최저임금 일괄 적용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최소한의 형평성을 위해서 객관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냉철한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섣부른 명분이 대상을 가리지 않는 일반화라는 형식을 뒤집어쓰면 영세 사각지대에 대한 고려는 묻히기 마련이다. 특정 계층, 특정 업종만을 위한 ‘워라밸’이라면 그것은 헛된 수사일 뿐 실현 가능한 가치로 삼을 이유가 전혀 없다. 모두를 만족할 제도는 없지만 모두를 위한 고민은 언제나 헛되지 않는다. 제도의 사각지대에 언제나 내가 있을 수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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