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이럴려고 그렇게 서둘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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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럴려고 그렇게 서둘렀나?
  • 교통신문 webmaster@gyotongn.com
  • 승인 2019.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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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욱 박사의 대중교통 현장진단

[교통신문]주 52시간 근로제 말이다. 가장 우려했던 경기지역의 버스대란이 버스요금 인상에 대한 합의와 법정근로 위반업체에 대한 정부의 처분 유예조치로 다행히 한숨은 돌렸다. 그러나 이것은 미봉책에 불과할 뿐, 노선버스 운행 현장에선 여전히 어정쩡한 편법과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저녁이 있는 삶’과 안전한 버스운행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작년 3월 국회를 통과한 주 52시간 근로제는 도입 1년이 지난 지금도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한 채 정부와 근로현장의 버스업체 모두 갈팡질팡 하는 모습이다.

한 중견 시외버스 업체의 대표는 52시간 법정 근로시간 단축에 이렇게 대응하고 있다고 실토한다. “당국의 승인을 얻어 일부 노선운행을 단축했지요. 그것도 민원이 들끓으면서 더 이상 허용이 안되고… 회사를 몇 개의 적은 업체로 쪼갰죠. 그러면 6개월쯤은 일단 법 적용 대상에서 빠질 수 있으니…소나기부터 일단 피하고 보자는 거죠, 사실상 불법, 편법을 안고 가고 있는 겁니다.”

사정이 이런 업체가 한 둘이 아니다. 버스노조는 지난 5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삭감분 보전 등 정부의 성의없는 대책을 성토하며 전국단위 파업에 나서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여건이 나은 특광역시 등 준공영제 지역의 버스노조 파업은 그런대로 넘어갔지만, 지금 한창 임금교섭 중인 여건이 열악한 비준공영제 지역의 노사 임금교섭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제2의 버스파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자체의 버스요금 인상 권고 외에 뚜렷한 해법이 없는 정부는 작년에 이어 또 한 차례 위반업체 처벌을 석 달간 유예했다. 업체의 법정근로 이행에 대한 개선계획을 제출할 경우에 한정한다는 그럴듯한 조건을 달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현장의 혼란을 수습할 마땅한 대책이 없어 버스대란 만큼은 당분간 피하고 보자는 궁여지책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특례 제외 업종에서 주 52시간제를 처음 도입하는 점을 고려해 위반 사항을 적발하기 보다는 제도가 자리잡도록 힘을 쏟겠다”고 말하지만 손에 잡히는 알맹이가 없는 언질이 어쩐지 공허할 뿐이다. 1년이 넘은 지금도 52시간 근무제가 정착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혼란을 겪는 이유는 뭘까?

대책없이 일단 저질러 놓고 보자는 식으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정치권과 정부의 무책임이 혼란을 키웠다. 근로시간 단축은 제대로 정착되기만 하면 종사원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과 안전한 버스운행,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기대할 수 있지만 부족인력 충원에 대한 비용부담과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줄어드는 임금감소 문제 등 풀어야할 선결과제는 처음부터 명확하게 예고된 문제였다. 2년 전의 국회 속기록을 보면 정치권은 밀어붙이고 일부 정부부처는 현장의 실태파악에 대한 어떠한 조사결과나 자료도 제시하지 못한 채 기습처리에 동의했다.

“우리가 근로시간 단축과 시행시기를 명문화 한다면, 그 시기에 맞춰 정부가 (후속조치 등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한정애 의원의 발언이 당시 상황을 상징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현장의 혼란을 우려해 준비를 위해 시행시기를 좀 더 유연하게 늦추자는 사업현장의 목소리는 아예 무시됐고, 버스산업 정책을 을 담당하는 부처인 국토부의 의견은 소위의 속기록에 한 줄도 찾아볼 수 없다.

후속조치를 이어가야 할 정부 당국도 아직껏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 할 만큼 소홀하긴 마찬가지다. 중요한 국정과제인데도 부처를 망라하는 컨트롤타워의 역할도 보이지 않는다. 각종 대책기구나 협의회 등을 통해 대책마련을 약속했지만 요금인상을 제외하고는 예산당국과 협의도 제대로 안된 탓에 내놓는 대책이 실속이 없고, 버스파업 등 문제가 불거지면 부랴부랴 미봉책으로 급한 불끄기에 바빴다.

명분에 집착한 나머지 획일적이고 경직된 주52시간 근로제의 운영방식도 문제다. 정부가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추진한 주 52시간 근로제는 업체현장의 버스운행 특성이나 근로자들의 임금체계 등에 대한 세부적인 검토가 부족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정치권과 함께 성급한 제도도입을 추진했던 고용노동부는 틈만 나면 탄력근로제를 전가의 보도처럼 홍보하고 있지만 허용범위가 극히 제한적일 뿐 아니라 레고게임처럼 조각난 시간과 인력을 맘대로 활용할 수 없는 노선버스 운행의 현장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무시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중국의 광저우에서 인천공항으로 출발하는 항공기가 악천후로 공항에 대기 중 승무원들의 법정 근로시간 초과로 항공기가 결항되어 수 많은 승객들이 발이 묶인 적이 있다. 중장거리 노선을 운행하는 시외버스가 교통체증에라도 맞닥뜨리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탄력근로제의 재량범위를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버스업종에 특성에 따라 최소한의 인력운용 효율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유연근로제의 도입이나 세부지침이 서둘러 마련돼야 한다.

당장의 혼란은 있더라도 주 52시간 근로제는 반드시 우리사회에 정착해야 할 과제다.

오랫동안 한국에 살고 있는 한 외국은 ‘한국은 기적을 이뤘지만 재미있는 지옥과 같다’고 했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거창한 명분은 아니더라도 국민소득에 걸맞는 장시간 근로의 과로와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명분에만 집착하고 경직된 법정 근로시간에 고집하기 보다 사업현장에 보다 유연하게 정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이 이제 부터라도 나와야 한다. 내년 초면 거의 모든 영세사업장이 주 52시간제 참여하게 된다. 또다시 지금의 상황이 변함없이 반복된다면 ‘그냥 불법을 안고 갈 수 밖에 없다’는 업계 현장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수 밖 에 없고,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 5월 전국버스 파업당시 힘 있는 여당대표까지 나서 전국 확산을 약속했던 버스준공영제는 어떻게 재원을 확보할 것이며, 비효율의 논란이 많은 현재의 준공영제의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개선할 것인지,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운전인력은 어떻게 확보할 것이며, 노동현장에서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세 사업장이 발목을 잡혀있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감소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등 명확하게 제시된 과제에 대한 책임있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마침 글로벌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는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노동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고 그 여파로 내년 경제성장률이 0.3%, 2021년에는 0.6%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근로시간이 줄어들고 줄어든 노동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추가 고용에 따른 인건비 부담이 2020년 한해 약 5조원에 이르는 부담 때문이다. 장밋빛만 보지 말고 이제라도 주 52시간 근로제가 원점에서 버스업 현장에 제대로 정착할 수 있는 근본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아예 쿨하게 시행을 유예하는 게 낫다.

<객원논설위원=한국교통연구원 명예연구위원·교통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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