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가마문화와 마차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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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가마문화와 마차문화
  • 교통신문 webmaster@gyotongn.com
  • 승인 2019.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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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신문]보행은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교통수단이다. 비록 자동차 의존적 사회화(motorization)가 심화되면서 보행이 도로교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줄고 있지만, 교통수단으로서 보행이 갖는 의미는 지금도 결코 적지 않다. 유감스럽게도 자동차의 대중화는 보행자에게 매우 위협적인 일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보행자 교통사고가 줄지 않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보행자 사망사고는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39.3%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20년 전인 1998년의 37.2%보다 오히려 2% 정도 높아진 수치로서, 10위권의 경제대국에 걸맞지 않은 반인권적이고 후진적인 보행사고 다발국가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럽도 1970년대에는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중 보행자의 비율이 50∼60%에 이르렀었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비율이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10% 정도로 낮아졌고 그 비율은 현재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우리도 유럽처럼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왜 보행사고율은 줄어들지 않는 것일까? 그 원인의 하나를 유럽과 우리나라의 자동차 교통문화의 차이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유럽의 교통문화는 마차문화에서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자동차가 등장하기 전까지 마차는 중요한 교통수단이었고, 그것이 자동차로 대체되면서 그때 형성된 교통문화가 그대로 계승된 것으로 보인다. 대개 말은 사람이 도로에 서있거나 걷고 있을 때 정지하거나 알아서 피한다. 유럽은 횡단보도가 없는 교차로를 보행자가 횡단할 때 자동차가 알아서 정지하고 완전히 차도를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이유 또한 마차문화의 영향이 아닐까한다.

미국은 연방법에서 교차로에 횡단보도가 없더라도 당연히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미국 연방표준차량법은 교차로에서 보도경계석과 대지경계선을 연장한 두 선 사이에 속하는 차도인 보도연장선 부분을 횡단보도에 포함하고 있다. 버지니아 주법에서는 운행제한 속도가 35mph 이하에 해당하는 교차로 접근로에서는 보행자에게 통행우선권을 부여하고 있다. 즉 이러한 공간에서 운전자는 차도를 횡단하는 보행자에게 항상 양보해야 한다. 유럽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독일의 도로교통법은 교차로에 보행선이 표시되어 있지 않더라도 보행자가 차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여 미국법과 유사하게 보행자의 통행권을 인정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교통문화의 기원을 가마문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조선시대에 지체 높은 양반이 가마를 타고 지나갈 때면 으레 보행자는 길 옆으로 비켜주었다. 이 가마가 자동차로 대체되면서 자동차가 지나가면 보행자가 비켜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게 이어지는 문화로 형성되었을 것이다. 우리와 비슷한 문화적 유사성을 보이는 일본의 경우도 교통선진국으로서 전체 사고율은 낮지만 유난히 보행사고율이 높은 편이다.

일본의 도로교통법을 계수함으로써 우리나라는 문화적으로나 법적으로 보행자 보호에 취약한 국가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는 언제나 보행자에게 통행우선권이 부여되는데도 자동차 운전자나 보행자 모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법령에 규정돼 있음에도 자동차에게 통행우선권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보행자는 자동차가 아예 없을 때 눈치 보면서 통행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주택가 생활도로인 보차혼용도로에서 보행자는 자동차에게 길을 양보해야 한다. 도로교통법상 생활도로라 하더라도 사람보다 자동차에게 통행우선권이 있기 때문이다. 법에 규정하고 있어도 대다수 국민들이 오해를 하거나 아예 법에 규정하지 못한 가마문화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다.

교통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교통문화의 선진화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교통문화 선진화를 위해서는 법령을 보행자 중심으로 선진화해야 하고 국민들이 몸에 배도록 단속과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단속과 교육을 통해 우리에게 교통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은 성공적인 사례도 있다. 바로 안전띠 착용이다. 1990년 앞좌석 안전띠 착용을 의무화 했지만 10년 동안 한번도 착용률이 20%를 넘지 않았다. 그런데 2001년 한 해 동안 집중적인 단속과 캠페인을 펼치자 90%로 높아졌다. 놀라운 것은 단속이 없음에도 여전히 안전벨트 착용률은 90%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통문화를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는 데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단속과 강력한 법집행이 가장 효율적이고 빠르게 제고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무신호 교차로 통행이나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통행방법 등 보행자가 위협받는 대표적인 교통상황을 설정하여 대대적인 단속과 함께 캠페인을 전개한다면 우리의 의식 속에 남아있는 가마문화의 잔재도 빠르게 사라질 것이다.

<객원논설위원·강동수 한국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연구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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