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순정주의’ 프레임에 갇힌 대체부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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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순정주의’ 프레임에 갇힌 대체부품
  • 김정규 기자 kjk74@gyotongn.com
  • 승인 2019.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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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신문 김정규 기자] 자동차 순정부품과 성능은 유사하지만 가격은 절반대인 대체부품이 다시금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15년 자동차관리법을 개정해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하고 수리비 절감 효과를 노렸던 대체부품인증제를 시행한지 4면 만이다.

그동안 인증제는 시행 초기부터 실효성 논란에 직면하며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국내 완성차의 디자인권, 정비 수리 시장의 외면 등이 이유로 지목되며 간신히 제도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달 대체부품 사용 활성화를 위해 민·관·정이 손을 맞잡으며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여당이 주도한 협약서에는 ‘순정품’이라는 부품용어 개선, 보험약관 개정 노력부터 국내 부품제조사들의 생산 및 유통을 지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러자 시민단체들도 일어났다. 지난 5일 참여연대와 녹색소비자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현대·기아자동차와 현대모비스를 '순정부품' 표시광고행위 위반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고, 가격 차이가 최대 5배에 달하는 등 완성차 등 주요 부품사가 지나치게 ‘폭리’를 취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움직임에는 정부와 업계, 시민단체의 애타는 마음이 담겨 있다. 부풀대로 부푼 부품 수리비를 낮추고 중소부품업계를 살리려던 애초 계획이 보기 좋게 빗나간데 따른 절박함이 묻어 있는 것이다. 인증제 시행 초기 지금의 모습을 예상한 업계의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다. 궁여지책으로 금융당국이 순정부품 가격의 25%를 돌려주는 특약상품을 판매하면서 돌파구를 마련했지만, 그 실적이 낙제점에 가까운 점도 정부의 처지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최근 사고범위·환급금 확대를 재검토한다고 밝혔지만 이마저도 해법이 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무엇이 문제일까. 정부 쏟아낸 혜택 덕에 쓰기만 한다면 내 주머니를 아낄 수 있지만 아무에게도 관심 없는 ‘대체부품’. 여기에는 일종의 무의식 프레임이 작용하고 있다. 소비자와 시장 모두에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 ‘순정주의’가 모든 활로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현재 완성차와 주요 부품사는 자사의 부품만이 ‘순정(純正)’이라고 말하며 연일 광고를 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순수하고 올바른 제품이라는 표현은, 그 외 부품을 단숨에 순수하지 않고 바르지 않은 제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마법을 발휘한다. 광고의 저변에는 대기업의 ‘순정주의 카르텔’이 깔려 있다. 이것은 높은 이익을 담보하는 방어기제이기 때문에 그들이 모든 것을 걸고 사수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순정주의 프레임은 소비자들에게서도 나타난다. 대체부품을 중고부품 정도로 여기며 선뜻 선택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품(순정품)이지’라는 의식은 너무도 견고해 경제적 선택을 불가능하게 한다.

단지 말에 불과한 ‘용어 개선’이 시급하다고 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대체부품이 시장에서 고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도 원치 않아서다. 결국 소비자도 외면하고 현장도 외면한 대체부품에 대한 정부의 정책 의도는 경제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너무도 순수한 ‘순정(純情)’이 됐다. 시장을 순진하게 봤다는 말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안의 순정주의를 깨지 않고서는 대체부품에 미래는 없다. 소비자의 경제적 선택을 막는 의식의 프레임을 깰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합리적 판단 아래 대체부품을 선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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