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고령 택시운전자 문제의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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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고령 택시운전자 문제의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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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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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욱 박사의 대중교통 현장진단

[교통신문]얼마 전 제주공항에 내려 교통방송국에 가려고 택시를 탔다. “기사님, 제주 교통방송국 갑시다”. “어디 있습니까?”. “제주 시청 위쪽 어디라고만 들었는데 잘 몰라서요”.

여기까지는 좋았다. “택시 기사님이신데 교통방송 모르십니까?” 7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택시 기사에게 가볍게 한 마디 했다가 한참 동안 푸념 섞인 원망을 들어야 했다. “제주에 오는 육지 사람들 여기 오면 무슨 맛집 아느냐, 여기로 갑시다, 왜 저기로 가느냐…. 택시 기사가 뭐 만능입니까? 정말 짜증이 나요. 이렇게 힘들게 일해 봤자 시간당 임금이 손자뻘 아르바이트만도 못하고…손님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이젠 그만둬야지 원…. ” 거북목을 쭈뼛 내밀고 검지로 떠듬떠듬 한참 동안 검색창을 두드리는 택시 기사의 뒷모습을 보면서 미안함과 불편함이 교차했다.

서울에서 만난 35년 경력의 68세 개인택시 기사는 이젠 자식들도 다 컸고 몸도 예전 같지 않으니 무리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오랜 습관이 몸에 배어 핸들을 잡으면 슬슬 욕심이 나고 생각이 달라진다고 했다.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프고 피곤하기도 하지만 그만둬도 마땅히 할 일이 없고 하루 종일 집에 덜렁 마누라랑 있는 것도 그렇고….” 고령의 택시 기사는 건강이 허락한다면 계속할 생각이라고 한다.

70세가 되면 택시 운전면허 반납제를 도입한 일본과 달리 연령에 아무런 제한이 없는 우리나라의 고령 택시 운전자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서울에서만 70세 이상의 택시 운전자는 8900명, 심지어 90세 이상의 택시 기사도 있다. 서울시 전체 약 8만명 택시 기사 중 약 23%가 65세 이상의 고령 운전자다. 이들은 대부분이 개인택시 기사다.

고령 택시운전의 가장 큰 문제는 교통사고가 증가하면서 운전기사 본인은 물론 택시 승객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고령의 택시 기사들은 상대적으로 운행거리가 짧음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교통사고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통계자료를 보면 특히 75세를 정점으로 급격히 사고율이 높게 나타난다. 시력, 인지능력,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 등 급격한 노화에 따른 당연한 결과다.

최근 택시에 각종 플랫폼 서비스의 신기술이 도입되면서 고령의 택시 기사들이 기기 조작에 불편을 겪거나 승객과 불필요한 마찰을 빚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고령의 택시 기사들은 시력이 나빠 작은 글씨가 잘 안 보이고 기기 조작에 시간이 걸려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 역시도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신기술의 접목을 통한 택시 서비스의 개선이란 측면에서도 일정부분 한계가 있다. 그러나 80% 이상이 수 천만원 이상의 면허값을 들여 생계유지나 노후생활을 위해 영세사업에 뛰어든 개인택시 사업자의 현실이 가로놓여 있다.

택시기사의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택시를 중심으로 고령의 택시기사들이 자발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퇴로의 길을 열어줌으로써 택시 시장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수 있는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금년 2월에 도입된 고령 택시기사에 대한 자격 유지 검사 제도만으로는 효과적인 사고예방이나 자발적인 시장 퇴출을 통한 고령 택시 기사의 세대교체를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는 65세 이상 택시 운전자는 3년, 70세 이상은 1년마다 운전능력을 확인하는 ‘자격 유지 검사’를 의무화했고, 현장의 반발에 부딪치면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의료적성 검사’를 이번 9월말부터 추가로 도입하여 선택적으로 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택시보다 2년 앞서 시행한 버스 고령운전자의 경우 자격 유지 검사를 통해 운전을 포기한 운전자는 1.5%에 그치고 있다는 점만 보더라도 이 제도가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는 될지 몰라도 실질적인 고령 택시 기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사회적 논란 속에 실무기구를 통해 해법을 모색하고 있는 ‘택시·모빌리티 업계 상생방안’은 택시 감차와 연계하여 제도적 틀만 잘 짜여 진다면 고령의 택시 기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현행 택시 감차는 재원 마련도 쉽지 않고 개인택시 사업자도 굳이 감차 매입에 응할 유인책이 없다. 더구나 감차 대상도 공급과잉 지역에 한정되어 있어 현실적으로 실질적인 택시 감차는 어렵다. 이런 환경에서 정부가 택시 감차를 통한 여유분에 한정하여 신생 모빌리티 업계의 시장 진입을 허용한다는 구상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정부는 이참에 현행 택시 감차 방식을 공급과잉 지역에만 의존하지 말고 고령 개인택시 사업자를 대상으로 과감한 유인책을 만들어 시행해 봤으면 한다. 신생 모빌리티 업계와 정부가 공동으로 재원을 마련하여 세대교체를 위한 새로운 시장 진입의 기회를 만들고 고령의 택시 기사들에게는 연금이나 영업손실 보상과 같은 복지혜택을 추가하여 자발적인 시장 퇴출을 유인할 필요가 있다. 70세 또는 75세 이상의 개인택시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시적인 ‘고령 개인택시사업자 감차 구조조정 대책’을 마련하여 추진해 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넘쳐나는 택시를 줄인 다기보다는 고령 택시 기사들에 대한 복지 차원의 배려와 함께 심각성을 더해가는 고령 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럴 경우 모빌리티업계에는 시장진입의 기회가 되고, 택시 서비스도 개선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단순히 남아도는 택시를 줄이기 위해 혈세를 낭비한다는 시민들의 거부감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객원논설위원=강상욱 한국교통연구원 명예연구위원·교통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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