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창간기획] “주52시간제 안착 중이지만 … 보완책은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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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창간기획] “주52시간제 안착 중이지만 … 보완책은 절실”
  • 이승한 기자 nyus449@gyotongn.com
  • 승인 201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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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인↑ 업체 이어 내년 1월 200인↑ 확대
큰 저항 없이 시행 … 곳곳서 문제점 노출
“피할 순 없지만 업계 피해 방지 노력 필요”
“생산성과 업무 효율 높일 방안 마련도 시급”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생산라인. 사진은 본문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생산라인. 사진은 본문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현대자동차]

[교통신문 이승한 기자] 지난 7일 경북 경산에 있는 진량산업단지 내 한 자동차 부품 업체. 오후 4시 30분이 되자 공장 곳곳에서 작업하던 근로자들이 하나 둘 주변을 정리하고 퇴근 준비에 나서기 시작했다. 다른 회사라면 한창 일할 시간이다. 회사는 300인 이상 사업장으로 지난해 7월부터 주52시간제가 적용되고 있다. 시행 1년, 회사 근로자들은 퇴근 이후 시간이 보다 여유로워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아직 생각한 것만큼 삶의 여유를 찾았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 좋다고 했다.

한 근로자는 “6시나 7시에 작업이 끝나면 경산에서 집이 있는 대구까지 이동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양 도시를 잇는 고속도로 정체가 심해서 퇴근이 힘들었는데, 일찍 출근해 일찍 퇴근하면서 이동 시간을 많이 줄이게 됐고, 퇴근 이후 활용할 시간도 늘었다”고 했다.

같은 날 같은 산업단지 내 또 다른 업체. 이곳은 직원이 230여명으로 아직 주52시간제가 적용되지 않고 있었다. 2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내년 1월부터 법이 적용된다. 법 시행 석 달을 앞두고 회사 차원 대응 준비에 한창이었다. 이곳 관리직 직원은 “보안업체와 연계한 근태시스템 도입은 물론 생산성 유지를 위한 급여아웃소싱 등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어떤 것이 회사에 최적 방안인지 임직원 모두 고민 중”이라고 했다.

‘주52시간제’에 대한 각계 우려에도 불구하고 시행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자동차 산업 내부적으로 큰 혼란이나 혼선은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제도 시행으로 적지 않은 부담을 감내할 업체는 여전히 경쟁력 저하와 비용 등을 이유로 후속 지원이나 유예 방안 등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제도 시행을 코앞에 둔 중소업체 근로자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 이들 대부분이 낮은 기본급을 잔업과 특근으로 보충하는 만큼, 이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시장 일각에서 나왔다.

◆대기업은 제도 안착 중

국내 주요 완성차 업체의 경우 법 시행 이전 관련 제도를 정비해 새로운 기준에 어느 정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2013년 공장 생산직에 주 40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평일 2교대 근무조 대부분이 8시간 정도를 일하고 있어 토요일 특근에 참여하더라도 52시간을 넘지 않는다. 다만 일부 신차 생산 투입 근로자와 특수 업무 종사자는 52시간을 초과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 외주 보다는 충원을 주장하는 쪽과 작업자 업무능률을 극대화한 후에 필요 시 충원하자는 주장이 엇갈려 있다. 쌍용자동차는 지난해부터 주야 2교대를 주간 연속 2교대로 바꿔 밤샘 작업을 없앴다. 기존에는 일주일 단위로 낮밤 조를 나눴다.

주52시간제가 도입되면서 근로자 생활도 바뀌었다. 우선 퇴근 이후 함께 여가 활동에 나서는 사내 모임이 여러 곳에서 생겨났다. 진량산업단지 내 한 자동차 부품 업체의 경우 지난해 생긴 사내 동호회를 지원하기 위해 올해 수억 원에 이르는 예산을 책정했다. 이 회사 한 동호회 소속 근로자는 “지난해 자전거동호회를 결성해 현재 2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회사에서 주는 지원금 덕분에 매주 주말 낙동강 등을 따라 놓여 있는 자전거 길을 달리며 단결을 도모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자기 계발에 힘을 쏟는 직원도 늘었다. 진량산업단지 또 다른 자동차 부품 업체 관계자는 “퇴근 이후나 출근 전 새벽 시간을 활용해 외국어나 자격증을 따려고 준비하는 직원이 꽤나 늘었다. 관련해 대구 지역 학원가에서 이런 직장인 대상 프로그램을 많이 내놓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협력업체 “여전히 준비 안 돼”

완성차 협력업체들도 살아남으려는 노력에 분주하다. 상당수 업체가 조직 체계를 정비하고 근로시스템을 바꾸고 있다. 관련 회사 내규도 개정해 변화된 근로환경에 적응 중이다. 물론 협력업체에 따라 제도를 받아들이는 온도 차이가 크다. 일부 업체를 제외하고 여전히 상당수 업체가 주52시간제 도입에 곤란을 겪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업계는 영세 업체가 법에 상응하는 시스템 구축과 법을 준수할 수 있을 만큼 여력이 충분치 않다고 하소연한다.

인천 지역 한 자동차 업체 관계자는 “(대부분 부품 업체가)대기업 하청 구조라 납기일 맞추는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 주52시간제가 강제되면 경영에 어려움이 커질 가능성이 크다. 재하청을 주는 등의 방안을 고려하고도 있지만, 이는 제대로 된 해결 방안이 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자동차 부품 업계 대상 설문조사 결과 1차 협력업체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에 대비해 작업시간을 조정하고 있지만, 2~3차 협력업체는 대응 준비가 안 된 곳이 절반 이상이나 된다. 추가 인력 고용으로 인건비가 더해지고, 원청업체 주문 물량 확대 시 납기지연이 발생할 것을 우려한 업체도 있다. 연구개발 인력 등 직종에 따라 주52시간제 적용이 어려운 근로자가 있는데, 이를 해결할 수 없는 점도 문제로 거론됐다.

고용노동부가 중소기업 13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10곳 중 4곳(39%)이 주52시간제 도입에 대응 체계를 갖추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야별로는 제조업(33.4%), 숙박음식점(24.9%), 수도·하수·폐기물 처리업(16.2%), 정보통신업(16.2%) 순이다. 관련해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중소기업 절반이 주52시간제에 대응할 준비가 안 됐다. 노동부 조사와 차이가 있는 만큼 제도 시행 확대와 관련해 보완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주52시간제 도입을 통해 고용을 증대하겠다는 게 정부 생각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우리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취업자는 전년 대비 월 평균 27만6000명 증가해 2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폭을 보인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외국인 관광객 증가 등으로 서비스업 고용이 늘어났기 때문. 반면 산업경기 부진으로 제조업 고용은 감소폭이 다시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자동차 제조업의 경우 고용인원이 3년째 감소했다. 고용부 고용노동통계에 따르면 2017년 35만7641명이던 것이 2019년 1분기에 34만6399명으로 1만명 이상 줄었다. 자동차 제조업 가동률 또한 2015년(100%) 대비 지난해(2018년) 90.2%에 머물렀다. 특히 중소업체 위주 부품 제조업 가동률은 87.0%에 그쳤다.

◆제도 시행에 따른 부작용도 많아

생산직과 달리 사무직은 기업과 직군마다 상황이 달라 일률적으로 제도를 적용하기 어렵다. 처지가 제각각인 만큼 업체 대응도 천차만별이다. 현대차는 일부 직원 대상 유연근무제를 시행 중이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반드시 근무하되 나머지 시간은 개인적 상황에 따라 출퇴근 할 수 있다. 대부분 대기업은 사무직 근무방법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지만, 적지 않은 중소기업은 근무 방법 등을 정하지 못한 채 고민 중이다.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컴퓨터 온·오프제를 시행하는 곳도 있다. 정해진 근무시간에만 컴퓨터 사용이 가능하고 해당 시간이 넘으면 자동적으로 컴퓨터 사용이 불가능하다. 미리 연장 신청을 해두면 제한시간 이후에도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다. 이 경우 추가근무 시간이 자동으로 기록에 남는다. 주52시간 초과 근무를 막는 효율적인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작용도 크다. 일부 사무직은 회사가 근무시간을 강제해도 담당 업무가 줄지 않아 회사 밖에서 일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한 자동차 회사 직원은 “전에는 야근하며 처리했던 일을 줄어든 시간 내에 해야 하니 매번 시간에 쫓기게 된다. 다른 동료와 일을 나눌 수도 없어 결국 회사 인근 카페에서 잔무를 처리하거나 집에서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퇴근 후 시간을 벌어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의미를 담은 영문 ‘Work-life balance’ 준말)이 실현될 것이라 여겼는데, 상황이 변하지 않아 뒷맛이 개운치 못하다”고 했다.

강한 노조가 있어 성과급 등 다른 경로로 줄어든 임금을 대체할 수 있는 대기업은 상관없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주52시간제 시행으로 ‘임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생산직 근로자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상당수 업체가 기본급을 낮추고 수당 등으로 보충하는 급여 지급 방법을 관행처럼 활용했기에, 이를 둘러싼 노사 갈등이 언제든 폭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확인된 몇몇 업체는 내년 제도 시행을 앞두고 노조와 회사가 논의에 나섰지만 이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몇 차례 협상이 결렬되면서 노사가 갈등하는 곳도 있다.

◆기업의 ‘탈 한국화’도 문제로 대두

‘고용 조건이 기업에 불리해졌다’며 아예 한국을 벗어나려는 업체도 있다. 올 1분기(1~3월) 중소기업 해외직접투자(ODI)는 35억3500만 달러(약 4조1900억원)로 전체 ODI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기존 최대치를 기록했던 지난해 3분기(28억3400만 달러)를 넘어섰다. 같은 1분기(18억1100만 달러)와 비교해도 2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대기업 ODI 규모도 102억 달러(약 11조8000억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제조업 ODI(57억9000만 달러)는 전년 동기 대비 140.2% 늘었다. 반면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올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35.7%(31억7400만 달러) 줄었다.

100억원대 매출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던 자동차 전장업체 A사의 경우 지난해부터 동남아 진출을 타진 중이다. 고용과 물류 등에 들어가는 비용이 상승하면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 주된 원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가격 우위를 위해 좀 더 비용이 덜 드는 지역으로 옮기는 것은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탈 한국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점은 우려할 수준”이라고 했다.

◆“정부가 근로 유연성 제고해 줘야”

자동차 업계는 정부가 산업 생태계 고사를 막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은 자동차 산업이 침체기라 다행히 외부 요인으로 생산량이 줄고 있어 주52시간제가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모양새다. 있던 일까지 줄이는 판국이니 잔업이나 특근 등도 불필요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장이 다시 활기를 되찾는다면 산업계에 끼칠 부작용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업계는 글로벌 표준에 맞춰 관련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근로 환경은 물론 노사관계가 모두 망라돼 있다. 파견제 허용과 기간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1년으로 늘리고, 개별 근로자가 동의하면 도입할 수 있도록 완화시켜줘야 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또한 연구직, 영업직, 설비분야 운영인력, 수출 또는 계절적 수요 대응 업종의 경우 근로시간 특례를 인정해줘 업무 연속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준규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조사연구실장은 “현재는 근로 유연성이 없는 생산체제라 기업이 시장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따라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근로 유연성을 제고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근무시간 단축에만 초점 맞추지 말고 ‘생산성 증대’ 차원에서 제도 개선을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무조건적인 예외 규정을 둘 게 아닌 주52시간제에 맞춰 업무 생산성을 증대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계 전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는 만큼 도전 과제가 많을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업무시간을 줄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과거처럼 양적 근로 행태로는 더 이상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업체와 근로자 모두 공감해야 한다. 장시간 근로에 따른 업무 효율성 저하와 산재 위험을 줄이면서 기업 수익은 늘릴 수 있는 구조가 정착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업무시간을 줄이는데 따른 생산성과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 마련에 모두가 골몰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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