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이 사라진 중고차책임보험은 무책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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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이 사라진 중고차책임보험은 무책임했다
  • 김정규 기자 kjk74@gyotongn.com
  • 승인 2020.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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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신문 김정규 기자] 지난 6월 시행에 들어간 중고차 성능·상태점검 책임보험 가입 의무화가 여전히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현장에서 별다른 실효성을 확보하지도 못한 채 이해당사자 간 의견만 제시하며 시간만 보내는 분위기다. 혼선을 잠재울 핵심 주체인 국토교통부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중고차 거래에 있어 모든 당사자들이 손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중고차 책임보험 가입 ‘의무’를 ‘선택’으로 바꾼 개정안이 국회 계류 중이지만 이번 국회 임기 내 처리는 불가능해 당분간 논란이 지속될 것을 보는 시각이 많다. 애초 정부의 책임보험 도입 취지는 중고차 매매 과정에서 차량 성능이나 고장 여부를 놓고 빈번하게 발생하는 소비자와 판매자 간 분쟁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소비자 보호라는 대의명분이 깔려 있었던 것

하지만 현재 중고차 책임보험은 일선 어느 곳에서도 그 의미가 퇴색된 채 방황을 하고 있다. 매매업계는 ‘비현실성’과 ‘이중부담’, ‘특정업계 특혜’ 등을 주장하며 연일 반대의 목소리를 쏟아내며 단체행동을 예고하고 있고, 보험업계는 20% 보험료 인하 카드 등을 꺼내며 논란을 잠재우려 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책임보험의 핵심인 성능점검업계는 별다른 대응을 자제하며 논란 확대를 경계하는 모습이다.

결국 중고차업체의 보험료 대납 사례, 중고차 가격 상승 요인, 혜택은 성능점검업체가 보고 소비자가 보험료를 부담하는 등 편법과 부작용이 나오고 있는데도 누가 나서 소비자 보호라는 제도의 취지를 살리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이 같은 혼선은 소관부처인 국토부가 초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토부가 적극적인 개입 없이 방관하는 사이 서로의 주장만 난무하는 중고차 시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국회에 책임을 떠넘긴 모습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업계 ‘눈치’를 지나치게 살피다보니 중심을 잃은 모습이 역력하다. 제도 시행 전 충분한 의견수렴이 있었다면 업계 간 이해충돌은 어느 정도 조정이 가능했다. 반년 넘게 안착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모습을 보면 모두 자신의 이익에만 충실하다보니 ‘소비자 권익’이 실종됐다. 교통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리 주체는 당연히 국토부다. 테이블을 만들고 당사자들을 불러 모아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여기서 제도의 시행착오를 인정하는 용기는 필요충분조건이다. 지금과 같은 넝마가 된 제도를 밀어붙이는 것은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중고차 책임보험에서 ‘책임’을 지는 이가 없다는 것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책임은 결과에 대하여 지는 의무나 부담이다. 국토부는 책임을 지고 권익은 소비자를 포함한 모두가 누려야 제도가 살 수 있다. ‘골든타임’은 빠를수록 좋다. 국토부의 결단을 기대한다. 코로나 시국을 걱정하고 총선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중고차 소비자를 위한 안전장치는 그 꽃도 피지 못하고 시들 지경이다.

소비자를 보호하겠다는 제도가 실제론 성능점검업체의 책임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하고 정부는 뒷짐을 지고 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온다. 본질은 성능점검업체에게 보험료를 납부하도록 하는 것인데 의무를 임의가입으로 바꾸는 것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누구를 위한 중고차 책임보험인지 자문하며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원점으로 돌아가 관점을 달리해야 한다. 분쟁을 줄이려는 보험이 분쟁을 조장하고 있다면 보험의 존재 이유는 없다. ‘책임’이라는 글자를 쉽게 생각하면 ‘무책임’한 시장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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