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로 사라진다' 표시 안 된 도로에서 발생한 사고 책임은 국가···배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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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사라진다' 표시 안 된 도로에서 발생한 사고 책임은 국가···배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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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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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원고 승소 판결

[교통신문] 합류 도로의 '가속 차로'가 곧 사라진다는 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에 사고가 발생했다면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25단독 이형주 부장판사는 최근 한 손해보험사가 국가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이 소송은 2017년 12월 28일 저녁 전남 나주시의 편도 1차로 국도에서 발생한 사고와 관련해 제기됐다. 이날 A씨는 다른 도로에서 이 도로로 합류해 2차로를 주행하다가 연석을 들이받고는 그 충격으로 중앙선을 침범해 B씨의 차량과 충돌했다.

A씨의 보험사는 이 사고로 5억여원의 보험금을 지출한 뒤 국가를 상대로 구상금을 청구했다. 당시 A씨가 주행하던 2차로는 주행을 위한 차로가 아닌 '가속 차로'였다. 가속 차로란 기존 주행 차로의 진행을 방해하지 않고 안전하게 진입하도록 적정한 속도를 내기 위해 일시적으로 사용되는 차로다. 진입하는 데 필요한 적정 거리가 지나면 사라진다.

그런데 A씨가 진입한 가속 차로에는 '우측 차로가 없어진다'는 교통 표지판도, 바닥에 '안쪽으로 차로를 변경하라'는 지시 화살표도 없었다. 심지어 가속차로와 1차로의 경계는 처음에는 점선으로 표시되다가 3분의 2 구간이 지난 뒤에는 차로 변경을 금지한다는 의미의 실선으로 바뀌기까지 했다. 그 결과 차로가 사라진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A씨는 막다른 곳에서 연석에 부딪히고 말았다.

재판부는 "2차로가 가속차로임을 알리는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도로 설치상의 중대한 흠결인데, 나아가 마지막 3분의 1 구간은 실선으로 차선을 표시했다"며 "사고가 야간에 발생했다는 점까지 더하면 초행인 운전자가 보통의 주행차로라고 착오할 여지가 크다"고 밝혔다.

이어 "이 도로는 '신뢰의 원칙'이 적용될 수 없는 상황을 설치 주체가 초래한 흠결이 중대하고도 명백하다"고 판시했다. 신뢰의 원칙이란 교통 규칙에 맞춰 행동하는 자는 타인도 교통규칙을 지키리라 신뢰해도 좋다는 법리다. 재판부는 앞서 A씨가 이 사고로 금고형의 집행유예를 받은 것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재판부는 "도로 설치의 하자를 주장했어야 하나, 중앙선 침범 사고라는 이유로 당연히 했어야 할 변론을 포기한 것으로 의심된다"며 "이 사건에서 중앙선 침범은 고의가 아니므로 무죄 등을 주장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죄 편향의 검찰과 문제의식 없는 변론, 공판이 빚은 결과"라고 꼬집었다. 결론적으로 재판부는 A씨가 형사처벌을 받았음에도 과실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다만 보험사가 50%의 책임을 주장한 만큼, 이를 모두 받아들여 국가가 보험금의 절반인 2억5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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