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소풍길에서 폐허로, 다시 평화의 관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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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소풍길에서 폐허로, 다시 평화의 관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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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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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군 서화마을, 전쟁통에 희로애락 보따리
70년 만에 DMZ 노선 개방·마을 현대화 박차

전쟁에 울고, 아픔을 거름 삼아 공동체를 이룬 소박한 마을이 이제는 아픔을 딛고 평화의 중심지로 나아가려는 힘찬 날갯짓으로 떠들썩하다.

상서로울 서(瑞)에 화할 화(和)로 이뤄진 강원 인제군 서화마을.

전국 방방곡곡 크고 작은 마을 모두 저마다 이야기 한 보따리쯤 갖고 있겠지만, 총성과 포성이 끊이지 않았던 서화마을은 그 이야기가 몇곱절은 된다.

 

굽이치는 강을 따라 조성된 현대의 서화면 원경.<br>
굽이치는 강을 따라 조성된 현대의 서화면 원경.

서화면은 6·25 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큰 마을이 있는 지역이었다.

제법 큰 땅을 갖고 농사를 짓는 이가 적지 않았고, 인근에서 가장 큰 오일장이 열릴 정도로 번화했다.

새벽에 집을 떠나 저녁을 먹을 때쯤이면 금강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하니, 그 굽이진 소풍길에 아로새긴 추억도 꽤 된다.

인제의 대표 특산물로 자리 잡은 황태 같은 수산물도 서화면을 따라 들어왔기에 그 길목에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전쟁 전까지만 해도 서화마을은 이북에 속해 있었다.

홍천에서 44번 국도를 따라서 오다 보면 38도선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는데, 서화마을은 그곳에서도 한참을 북쪽으로 올라와야 있는 곳으로, 전쟁 초기에는 전쟁터에 속하지 않았다.

북한군이 전쟁을 개시하기 직전에 서화마을보다 더 남쪽에 있는 원통리 일대에 집결해 있었기 때문이다.

1950년 9월 15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전세가 역전되고, 북한군이 후퇴하면서 서화마을 주민들도 전쟁에 휘말리게 됐다.

전쟁은 마을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마을 주민들이 남과 북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농경지는 황폐해졌고, 옹기종기 모여 있던 집들도 폐허가 됐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서화면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을 켜고 생활했을 정도로 낙후했다. 끼니를 챙기는 것조차 쉽지 않았기에 군부대가 가축을 직접 기르거나 배추를 재배해 김치를 담가 먹는 등 자구책을 세워야 할 정도였다.

주민들은 국가로부터 분배받은 토지를 일구며 농사를 짓고, 산채나 버섯, 약초를 캐며 살았다.

그런 환경에서도 군인들과 주민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았다.

다방, 여인숙이 즐비해 '라스베이거스'로 불릴 정도로 유흥가로 이름을 날렸다.

접경지역으로서 발전에서 소외돼있던 서화마을에는 최근 들어 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전쟁의 폐허로 남은 땅 비무장지대(DMZ)는 70여년 만인 지난해 9월 'DMZ 평화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민간인의 발길을 허락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차로 1시간가량 올라가면 동서남북으로 탁 트인 '1052고지'에서 DMZ, 양구 해안면 펀치볼, 소양강의 발원지로 여겨지는 무산, 무산 앞뒤로 위치한 미수복지역인 이포리와 가전리, 금강산을 만날 수 있다.

인제에서 내금강으로 가는 최단 거리가 60㎞, 고성에서 외금강까지의 거리가 100㎞라고 하니 금강산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 차량 이동 구간이지만, DMZ 일대를 직접 걸어볼 수 있는 1.5㎞가량의 하늘길 도보 탐방 구간 '을지스카이웨이'가 포함돼있다.

1052고지에 있는 854고지 전적비와 양구 해안면 펀치볼 등과 엮인 역사 이야기도 관광해설사로부터 들을 수 있다.

서화면의 이미지를 바꿀 평화지역 경관개선사업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인제군은 서화면 도시공간 개선은 물론 시가지 활성화를 위해 2019년부터 184억원을 들여 경관을 개선했다.

군은 2021년 천도리 시가지 경관개선 사업과 서화리 공영주차장 조성, 서화리 전선지중화 공사 등을 완료한 데 이어 2022년에는 물빛테마공원, 비득고개광장, 서화리 만남의광장 조성 사업 등을 마쳤다.

평화지역 경관개선사업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천도리 택지조성사업도 순항 중이다.

낡고 낙후된 곳으로 여겨졌던 서화마을은 이제는 쾌적하고 안락한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옛일들을 기억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해 토박이 어르신들과 군인 출신 주민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며 채록집을 펴내고 있다.

 

1960년대 인제 서화면 천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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