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어린 단종 유배길…'한반도 축소판' 선암마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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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어린 단종 유배길…'한반도 축소판' 선암마을까지
  • 교통신문 webmaster@gyotongn.com
  • 승인 2023.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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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마다 깃든 전설과 역사 이야기 담겨
뗏목·줄배 체험, 워케이션 성지로 거듭나

우뚝 솟은 암벽과 푸르른 나무로 가득한 산세, 그리고 이를 휘감아 흐르는 강물의 찬란함까지.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광에 감탄이 절로 나오지만, 왠지 모를 아릿한 감정이 올라오는 이유는 세상에 가닿지 못한 조선시대 비운의 왕 단종(端宗, 1441∼1457)의 한이 굽이치는 길목마다 서려 있기 때문인 걸까.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강원 영월로 유배됐다가 이곳에서 죽임을 당했다. 그래서일까. 단종이 한양에서 출발해 영월 청령포에 도착하기까지 7일간의 여정 중 영월에 들어오는 솔치고개에서부터 청령포까지 43㎞에 달하는 구간 곳곳에 어린 왕이 감내해야 했던 가슴 저릿한 슬픔이 엿보인다.

 

명승 제50호 청령포는 3면이 서강에 둘러싸여 있는 곳으로, 나머지 한쪽은 절벽이 가로막힌 섬과 같은 곳이다. 지금까지 유일한 출입로가 동쪽 자갈밭인 것만 보아도 '천연감옥'으로 불렸던 유배 당시 상황이 뚜렷하게 그려진다.
고작 만 16세의 나이로 이곳을 향해 발걸음 했을 단종의 모습에 마음이 애달프기도 잠시, 기암괴석의 절벽을 휘돌아나가는 강과 곳곳을 빼곡히 채운 울창한 송림이 어우러진 멋진 절경이 그런 마음을 위로해주기도 한다.
1457년 6월. 양력 7월의 삼복더위에 단종과 50명의 군졸은 쓰라린 마음을 뒤로하고 고개에서 다시 고개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모처럼 산 중턱 너른 터에 닿았는데, 샘터 옆 바위에 걸터앉아 이들은 비 오듯 흐르는 땀을 씻고 마치 감로주와 같은 샘물을 마셨다.
후세 사람들은 단종이 목을 축이고 간 그 장소에 '물미'라는 지명을 붙였고, 그 샘터는 '임금이 마신 우물'이란 뜻의 '어음정'(御飮井)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호송 행렬은 술이 샘솟는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주천 나루터를 지나 3층 석탑이 있는 탑거를 지났다. 이후 단종이 지나간 이 험한 길은 '임금이 오른 고개'라 하여 '군등치'(君登峙)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단종은 아내 정순왕후의 고운 모습을 닮아 이름 붙인 '옥녀봉'(玉女峰)과 높이 약 70m에 이르는 '선돌'을 지나 마침에 창덕궁 돈화문을 출발한 지 7일 만에 곤하고 긴 유배행렬을 마치고 청령포에 도착했다.
억울하고 서러운 단종의 착잡한 마음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울음 때문이었을까.
그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 호송 행렬에 있던 말의 목에서 말방울이 떨어졌다.
이 일화를 계기로 말방울이 떨어진 지점에 '방울재'라는 이름이 생겼다.
방울재로부터 약 2.5㎞ 떨어진 곳에는 3면이 강물로 둘러싸인 습지가 있다.
동고서저의 한반도 지형을 고스란히 닮아 절벽 지역은 동쪽으로 한반도의 백두대간을 연상시키는 산맥이 길게 이어져 있고, 서쪽에는 서해처럼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명승으로도 지정된 한반도지형은 독특한 지형적 특성 탓에 영월에서 청령포만큼이나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이런 특수성을 반영해 2009년 '서면'이었던 지역명이 지금의 '한반도면'으로 바뀌었다.
마을에 사는 95가구 157명의 주민은 대부분이 고추, 감자, 옥수수 등 농작물을 키우며 생활하고 있다. 고작 20여년 전만 해도 10여 가구에 불과했던 한적한 마을은 2000년대 한반도지형이 알려지면서 그 규모가 커졌다.
마을 이름과 걸맞게 선암마을에서는 한반도지형을 가까운 곳에서 구경할 수 있는 뗏목 체험도 운영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시원한 강물에 발을 담그고 자연을 감상하기도 하고 직접 뗏목의 노를 저어보기도 한다.
최근 주민들의 가장 큰 고민은 마을이 늙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평균 연령 70세. 마을에서 가장 젊은 사람이 50대가 된 지 오래다.
군 전체로 보면 인구수 감소와 청년 유출도 심각해 주민들은 그런 상황이 단순히 '남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실제 1960년대 12만여명이었던 군의 인구는 올해 2월 말 기준 3만7561명으로 줄었다.
사람이 사라진 곳에 그간 쌓아온 마을의 역사와 문화, 전통도 함께 사라지는 것 역시 두려운 일이다.
이들에게 청장년층을 마을로 다시 불러 모으는 일이 중요한 목표인 이유다.
이에 주민들은 머리를 맞대 뗏목 체험 등 외에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을 개발하고 있다.
지금 운영하는 줄배 타기, 트레킹 등에 더해 5천평가량 되는 부지에 꽃밭을 조성하는 계획도 세웠다.
최근에는 휴가지에서 일을 하고 휴식을 즐긴다는 '워케이션'(Worcation) 트랜드에 맞춰 젊은 층이 마을을 방문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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