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의 신부, 소멸에 맞설 '치즈'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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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의 신부, 소멸에 맞설 '치즈'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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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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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신부와 주민들, 돌산 뚫고 치즈 생산
치즈 활용한 테마파크 등 인기...관광객 몰려

올해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될 때만 해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자신의 고향을 비롯해 현재 주거지 이외의 지역에 기부금을 내고 답례품을 받는 제도다. 심각한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하고자 시행됐다.
당연히 출향민이 많거나, 유명 관광지가 있어 인지도가 높은 지역에 기부금이 몰릴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의외였다.
제도 시행 후 3개월간 모금 실적에서 전북 임실군이 3억1500만원으로 전국 1위를 차지했다. 지자체 평균인 5300만원의 6배에 달하는 액수다.
낙후된 전북에서도 인구가 적기로 손꼽히는 임실군은 어떻게 '기적'을 썼을까.

 

◇한국 최초의 치즈 생산 : 1964년. 임실성당에 한 외국인 신부가 부임한다. 벨기에라는 나라에서 온 그의 이름은 디디에 세르반테스.
당시 임실군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평야가 적고 산지가 많아 농사를 짓기 쉽지 않은 땅이었다.
이 척박한 땅에서 세르반테스 신부는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기로 마음먹는다.
산지가 많은 지형을 활용해 산양을 기르기로 마음먹고 유럽에서 산양 두 마리를 직접 들여왔다. 마을 청년들과 함께 젖을 짜 도시에 내다 팔다가 1967년 드디어 우리나라 최초의 치즈 상품을 개발했다.
이어 1968년에는 균일한 맛과 품질을 가진 프랑스식 카망베르 치즈를 생산하는 데 성공한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풍미 있는 숙성치즈를 만들고 싶었던 신부는 주민들과 함께 정과 망치로 산에 굴을 파기 시작했다.
돌산을 뚫는 고된 작업 끝에 길이 21.8m 땅굴이 만들어졌다. 신부는 1970년 이곳에서 최소 2개월 이상 숙성이 필요한 체더 치즈를 생산하는 데 성공한다.
청정 자연에서 짜낸 원유로 만든 치즈는 금세 인기를 끌었다. 잇따른 계약으로 원유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이에 산양 대신 젖이 풍부한 젖소를 기르게 됐다. 이후 독일에서 생산설비를 도입, 새로운 치즈 공장을 지어 대량 생산에 나섰다.
◇신부의 후예들 : 임실군 이플농장. 이플은 '청순하고 소박하다'는 뜻이 담긴 순우리말이다.
농장 송기봉(71) 대표는 원유와 유제품을 함께 생산하는 낙농 전문가다. 1981년 젖소 3마리로 목장을 세워 이제는 현대식 목장과 생산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전기 시설이 없어 돌산을 뚫어 치즈 숙성시설을 만들던 임실군의 낙농업은 이제 첨단 낙농 기법과 현대식 시설을 갖춘 수준으로 발전했다.
송 대표와 같이 질 좋은 유제품 생산에 대한 열정이 큰 주민들은 치즈의 본고장인 유럽으로 연수를 다녀온다. 송 대표 또한 스위스, 네덜란드, 프랑스 등을 방문해 현지 기술과 노하우를 익혔다.
치즈농협 강창호 과장은 "이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만 40명 정도 된다"며 "원유를 생산하는 농민과 가공, 생산, 판매하는 주민을 합치면 지역에서 치즈가 차지하는 위상이 실감 날 것"이라고 했다.
◇치즈가 준 선물 : '고향사랑기부액 전국 1위'라는 임실군의 기적도 임실치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부제 시행 후 임실치즈는 전국 농축산물 답례품 중 제주 감귤에 이어 선호도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4월까지 임실군에 기부한 사람의 40% 이상이 치즈 또는 요구르트를 답례품으로 선택했다.
임실군의 포부는 고향사랑기부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낙농'과 '가공'에 '관광'까지 겸한 입체산업을 키우면서 치즈를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인구 감소에 맞선 임실군의 전략은 바로 '관광인구'의 육성이다.
관광지로 이름난 스위스 중소도시 아펜젤을 모델로 해 장장 8년의 사업 기간을 거쳐 2012년 문을 연 임실치즈테마파크는 그 전략의 핵심이다.
테마파크는 치즈를 직접 만들고 쌀 피자 만들기, 산양 먹이 주기 등도 체험할 수 있다. 더구나 비용도 부담스럽지 않아 가족 단위 관광객을 대거 끌어모으고 있다.
지난해 치즈테마파크 입장객 수는 211만 명을 넘어 군 전체 인구의 100배에 육박했다. 치즈 축제가 열리는 10월에는 나흘 동안 전국에서 50만 명이 몰렸다.
임실군은 치즈테마파크와 연계한 다양한 관광지를 발굴하고 알리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절경이어서 사진작가의 '성지' 중 하나로 꼽히는 옥정호 붕어섬에 출렁다리를 개통했다.
지난해 관광객 810만 명이 다녀간 임실군은 관광 수요의 급증으로 조만간 '관광객 1천만 시대'를 맞을 것이라는 꿈에 부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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