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7주년 특집 1-교통부문 핵심이슈] 예비타당성조사, 이대로 좋은가
상태바
[창간 57주년 특집 1-교통부문 핵심이슈] 예비타당성조사, 이대로 좋은가
  • 교통신문 webmaster@gyotongn.com
  • 승인 2023.10.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타면제사업 관련 법률조항 조속히 삭제해야

 

타당성 미흡한 ‘통과 사업’, 이후 세대에 불행

정치권·주민 등 간여로 ‘예타’ 본질 이미 훼손

총선·대선 앞두고 ‘예타 면제사업’ 남발 우려

‘예타’ 최종평가위 독립성·자율성 보장이 관건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명예교수 손의영

최근 서울-양평고속도로 건설과 관련해, 정부와 정치권, 지역주민 등 이해관계자 간에 발생한 논쟁이 불거진 이후에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논쟁의 하나로 예비타당성조사제도에 대한 문제점이 언급되고 있다. 즉 국토교통부에서 발주한 본타당성조사 및 기본계획을 민간회사가 수립하는 과정에서 예비타당성조사에서 검토하지 않은 노선 대안을 제시하면서, 왜 예비타당성조사에서 제대로 노선 대안을 검토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것이다.

하나의 고속도로가 건설되기 위해서는 여러 계획 단계를 거치게 된다. 다수의 고속도로가 포함된 전국적인 고속도로망계획이 수립된 이후, 개별 고속도로에 대해서는 사전타당성조사(이하 '사전타'),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 본타당성조사 및 기본계획(이하 ‘본타’)을 거치게 된다. 서울-양평고속도로 또한 2017년 1월에 한국도로공사가 수립한 장래 전국 고속도로계획에 여러 고속도로 노선 중의 하나로 제시돼 있다.

2017년에 서울-양평고속도로에 대한 ‘사전타’를 시행했고, 이 결과를 토대로 2019년 3월에 기획재정부는 ‘예타’사업으로 선정했다. 그리고 KDI는 ‘예타’를 수행해, 해당 사업은 타당성 있는 것으로 판명했다.

 

‘예타’ 결과가 타당성 있는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국토교통부는 민간회사에게 요청해 2023년에 ‘본타’를 수행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예타’에서와는 상이한 노선 대안을 민간회사가 제시하면서, 왜 ‘예타’에서는 ‘본타’에서의 노선 대안을 검토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아울러 이 와중에 다른 측면에서 그동안 논란이 되어 왔던 ‘예타’의 유용성 내지는 적합성이 다시 불붙게 된 것이다.

그러면 대규모 교통시설사업을 추진하면서 왜 자꾸 ‘예타’의 문제점이 언급되는지, ‘예타’제도는 정말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서 논의해 보도록 한다.

‘예타’제도는 1999년에 도입된 이후에 정부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 매우 크게 기여를 한 유용한 제도로 판명되고 있다. 이는 국내 뿐 아니라 세계은행 등 외국 전문가에도 인정받고 있다. 사실 ‘예타’ 도입 이전에도 국토교통부는 지금의 ‘본타’와 유사한 타당성조사를 수행했으며, 이 때에는 거의 모든 교통시설사업이 타당성 있는 것으로 판명돼 건설돼 왔다.

사업별로 당시 ‘본타’를 수행한 연구진은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으로 방법을 적용해, 시급한 사업은 물론 별로 시급하지 않은 정치적인 사업도 다수 건설했다. 제약돼 있는 정부예산을 너무 많은 사업에 골고루 배정함으로써, 시급한 사업이 조속히 건설되지 않는 등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사용되는 문제점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에 ‘예타’는 효율적이고 공평한 사업에만 정부예산을 배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정해, 모든 교통시설사업을 평가하는 데에 적용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일관적인 방법을 개발했다. 다만 예비적으로 사업의 타당성을 평가하고, 적은 비용으로 짧은 기간에 수행해야 한다는 조건 또한 갖춰야 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기획재정부가 예산 배정을 목적으로 하는 예비적인 사업 평가이지만, 이미 예산 배정을 승인받은 사업이므로 많은 경우 국토교통부의 ‘본타’ 평가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이러한 결과가 초래됐다. 즉 일부 사업의 경우에만 ‘본타’에서 ‘예타’와 다른 사업 대안이 제시되며, 서울-양평고속도로가 바로 이러한 일부의 경우에 해당된다. 무엇보다도 ‘예타’에서는 교통시설로 인해 발생하는 장래 30년 이상의 수요와 비용, 편익을 추정하는 데에 필요한 정형화된 기법을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개발했다. 특히 장래 수요를 과다하게 추정하는 그동안의 관행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가지 엄격한 현실에 적합한 조건을 토대로 수요를 추정하는 방법론을 제시했다.

반대로 건설비용을 과소하게 추정하는 기존 관행을 방지하기 위해, 사업별 시공방법별 특성에 따라 km당 평균적인 비용을 제시했다. 이와 같은 객관적이고 일관적인 방법을 모든 교통시설사업에 적용하게 함으로써, 그동안 관행적이었던 과다한 수요 추정과 과소한 비용 추정을 실제로 크게 방지할 수 있게 됐다.

2010년대 중반까지는 국토교통부가 신청한 ‘예타’사업의 절반 정도만 타당성 있는 것으로 판명돼 건설되고, 나머지는 기각됨으로써 결국에는 건설이 취소, 보류되거나 연기됐다.

한편 객관적이고 일관적인 방법론을 적용하는 ‘예타’는 해당 교통시설사업을 나름대로 주관적으로 추진하려는 정부 부처, 그리고 해당 지역 사업을 추진해 본인의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하려는 국회의원, 광역 및 기초단체의 장, 또한 사업 노선으로 인해 땅값 등 자산가치에 영향을 받게 되는 지역주민에게는 일부의 경우 매우 거추장스럽고 성가신 제도가 됐다.

그리하여 국회의원, 지역단체장, 지역주민은 ‘예타’사업을 수행하는 KDI에 끊임없는 압력을 행사해, ‘예타’ 결과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제시되도록 노력한다. 특히 국도, 고속도로, 지역간 철도, 공항 등의 사업은 전액 중앙정부 (일부는 공기업) 예산으로 투자되며, 운영 상의 적자가 발생해도 모두 중앙정부(일부는 공기업)가 부담하고 있다.

따라서 정치권이나 해당 지역 주민이 자신들의 세금으로 투자비나 운영적자를 부담하는 비용은 전혀 없어, 거의 무조건적으로 적정 규모 이상의 과다한 투자를 끊임없이 요구하게 된다.

2010년대 중반까지 신청한 ‘예타’사업 중에서 타당성 있다고 판명된 비중이 약 절반이었으나, 최근에는 크게 낮아지게 됐다. 2018년에는 약 2/3가, 2020~21년에는 80%~90%가, 2023년에는 100%가 타당한 것으로 판명되고 있어, 원래 목적했던 ‘예타’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에 대해 커다란 의문이 들고 있다.

이렇게 된 커다란 원인의 하나는 기존에 KDI 연구진 위주로 구성된 소수의 평가위원회에서 경제성 분석과 정책성 분석 결과를 적정 비중으로 고려해 최종적인 사업 타당성을 평가했으나, 최근에는 경제성 분석보다 정책적 분석의 비중을 크게 높이고 최종적인 사업 타당성 평가위원회에 정치적 관점에서 적지 않은 비전문가가 참여하면서 이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나마 ‘예타’사업으로 신청하는 사업은 타당성이 일부 미흡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타당성이 매우 낮아 ‘예타’를 수행하면 기각될 가능성이 매우 높거나, 이미 과거에 ‘예타’에서 기각됐던 사업을 정치권에서 ‘예타면제사업’으로 지정해 해당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들 예타면제사업은 대부분 사업비 규모가 매우 커서 그 부작용 또한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4대강, 김천~거제 남부내륙철도, 새만금공항 등이 대표적으로, 이들에 대해서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서로 명시적으로 주고받기를 하면서 예타면제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명박정부에서 61.1조원, 박근혜정부에서 25조원, 특히 문재인정부에서는 급증해 105.9조원의 사업들이 ‘예타’를 통한 적정성 검토를 하지 않는 예타면제사업으로 현재 추진되고 있다.

이들 사업을 위해 막대한 투자비가 집행돼야 하므로 정작 현재 세대에게 필요한 일자리 창출 및 복지 등 다른 부문 사업이 추진되지 못할 뿐더러, 이들이 완공된 후에 발생하게 될 막대한 운영적자는 현재 세대보다는 장래 세대들이 지속적으로 감당해야만 한다.

그러면 객관적이고 일관적인 방법을 적용해 정부예산을 효율적이고 공평하게 집행하는 원래 의도했던 ‘예타’제도의 목적이 점차 훼손되고 있는 상황에서, ‘예타’제도를 어떻게 개선하는 것이 필요한가에 대해 논의해 보기로 한다.

첫째는 가장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예타면제사업을 하루속히 없애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현재의 윤석열정부도 국회에서 최근 가덕도공항과 대구·경북공항과 광주공항 이전 등을 예타면제사업으로 지정했다. 이러한 예타면제사업의 남용은 특히 총선 및 대선을 앞두게 되는 시점에서는 더욱 남발될 것으로 우려된다. 따라서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예타면제사업과 관련한 법률조항을 삭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는 ‘예타’사업을 실제 수행하는 기관인 KDI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최근 거의 모든 ‘예타’사업이 적정하다고 판단되는 원인은 KDI의 독립성과 자율성보다는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비전문가의 이해관계자가 ‘예타’사업의 최종적인 판단을 하게 되는 평가위원회에 정치적 관점에서 다수 참여하게 되면서 발생됐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기존 방식과 마찬가지로 ‘예타’의 최종 평가위원회에 정치적 이해관계를 갖는 비전문가를 제외하고, 대신에 ‘예타’사업에 참여한 KDI 위주의 소수 전문가만이 참여하도록 독립성과 자율성을 부여하면서 그로 인한 책임까지 갖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