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길과 흥망성쇠 함께 한 탄광촌, 삼척 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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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과 흥망성쇠 함께 한 탄광촌, 삼척 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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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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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선 개통으로 석탄 개발 본격화·산업발전 가속
사람 떠나자 기차 사라지고 지역경제 급격히 쇠퇴
"역사인 산업유산은 간직해 보존해야 가치가 있다"
대한석탄공사 도계영업소

1956년 1월 1일 영암선이 개통됐다. 경북 영주에서 강원 태백 철암까지 총길이 86.4㎞다. 처음으로 철길이 백두대간을 넘어 연결된 것이다. 영암선 개통은 우리나라 석탄산업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석탄 개발이 본격화했고, 산업 발전도 가속했다.
삼척탄광의 석탄을 영월발전소에 보내려면 삼척 도계에서 묵호항까지 실어 나른 후 묵호항에서 배에 실어 남해를 경유해 인천항으로 운반한 후 다시 철도로 영월발전소로 수송해야 했다.
영암선 개통과 함께 삼척탄광에서 태백∼고한∼예미∼영월∼제천을 잇는 태백선이 1955년부터 1973년까지 구간별로 잇따라 개통했다.
철길이 뚫리자 남한(우리나라)의 연간 석탄 생산량은 1955년 80만t에서 1959년 282만t으로 급증했다. 석탄 생산량 증가는 일자리 급증으로 이어졌다.
일자리가 생기자 경상도 지역의 농민들이 삼척탄전으로 대거 들어왔다.

◇한 대 인구 25만 명 넘어 : 석탄산업은 1개 군을 4개 시·군으로 분할하는 우리나라 행정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을 만들어냈다. 당시 삼척군 인구는 25만명을 훌쩍 넘었다. 그리고 삼척군 인구 급증의 중심에는 도계가 있었다.
도계의 석탄산업은 1950년대 초부터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곳에서 생산된 석탄은 도계역으로 옮겨진 후 기차로 묵호항까지 옮겨졌다. 석탄 수송을 위해 일제는 도계역에서 묵호항까지 42㎞ 구간에 철도(삼척선)를 건설했다. 삼척선은 1935년 6월 착공해 1937년 5월 개통했다.
삼척탄광 개발 붐은 인구 유입으로 이어졌다. 삼척탄광이 남한지역 최대 탄전으로 급부상하자 너도나도 노다지의 꿈을 안고 도계로 몰려왔다.
삼척군 인구는 1935년 8만8700명에서 1940년 12만5081명으로 늘었다. 인구가 5년 만에 약 1.5 배로 급증한 것은 삼척탄광의 영향이었다.

◇철암선 인클라인 : 삼척탄광 개발이 지금의 태백지역까지 확대되면서 태백지역에서 생산한 석탄을 묵호항까지 수송하기 위한 또 하나의 철길이 뚫린다. 1940년 개통한 태백 철암에서 묵호항까지의 철암선이다. 철암선에는 '인클라인'(Incline)이라는 '강삭철도'(鋼索鐵道)가 설치됐다. 태백 통리역∼삼척 심포리역의 급경사 구간을 기차가 운행하려는 방법이었다. 이들 구간의 거리는 1천m 남짓했지만, 표고차는 219m에 달했다.
심포리역에서 통리역까지는 쇠줄로 기차를 끌어 올렸다. 그러나 객차는 너무 무거워서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삼척에서 태백으로 가려면 심포리역에서 내려 통리역까지 걸어서 가파른 비탈을 올라야 했다. '보릿고개'보다 더 힘든 '통리고개'였다.
도계 주민의 수많은 애환을 간직한 '강삭철도 시대'는 1963년 5월 '스위치백'(switchback) 철도가 생기면서 막을 내린다. 
스위치백 개통은 경북 영주에서 경북 봉화∼태백 통리∼삼척 도계∼동해를 거처 강릉에 이르는 총연장 193.6㎞에 이르는 산업철도인 영동선의 완성이었다.
기차가 뒤로 달리는 지그재그 철로로 유명했던 국내 유일의 스위치백 철도는 2012년 6월 솔안터널 개통으로 과거 흔적만 남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도계읍에 남아 있는 탄광 사택

◇석탄산업 합리화로 급격히 쇠퇴 : 영원할 것만 같았던 '삼척탄광' 도계 영화는 석탄산업 사양화로 급격히 쇠퇴했다. 탄광 구조조정인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 시행 첫해인 1989년 한해에만 도계에서는 삼마, 대방, 삼보 등 3개 탄광이 문을 닫았다. 이어 1991년 4개, 1992년 2개, 1996년 1개 등 12개 탄광 중 10개가 폐광했다. 
탄광이 문을 닫자 인구도 급감했다. 1989년 3만9125명이던 도계 인구는 1999년 1만7444명, 2009년 1만2445명 등으로 감소했다.
인구가 급감하자 도계 역사의 동반자였던 철길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영동선 비둘기호 열차가 1998년 11월 30일 마지막 기적을 울렸다. 열차 운행 중단은 역 주변 상권을 무너뜨렸다. 삼척지역 8개 간이역이 모두 폐쇄됐다.
간이역 폐쇄는 역 주변 상권 붕괴로 이어졌다. 상권이 무너지자 상인도 한 명 두 명 떠났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사람으로 붐볐던 '팔도공화국' 도계는 이렇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철길 막으며 생존권 투쟁 : 1995년 폐광지역 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에도 지역경제 붕괴가 계속되자 2000년 10월 10일 도계 주민은 대정부 생존권 투쟁에 나섰다.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 중앙갱 폐쇄 계획을 저지하고자 시작한 당시 투쟁은 영동선 철로 점거 사태로까지 확산했지만, 도계의 공동화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김광태 포럼상생 공동대표는 "도계광업소 폐광 계획으로 도계 주민은 제2의 생존권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현실에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석탄산업의 퇴장으로 운명공동체인 탄광촌 도계의 옛 영광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김태수 한국석탄산업유산 유네스코 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공동 대표는 "석탄산업은 사라지고 있지만, 철도, 탄광, 사택 등 과거 영화의 흔적인 유산은 남아 있다"며 "역사의 한 페이지인 산업 유산은 소중히 간직해 보존해야 그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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