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40&교통신문40=<7>1972년 안전수송체제 확립 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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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40&교통신문40=<7>1972년 안전수송체제 확립 박차
  • 박종욱 Pjw2cj@gyotongn.com
  • 승인 2006.0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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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안전관리 확보에 주력"

전 사업용 교통수단 일제점검 실시
박 대통령 "전국 1일 생활권"
6대 도시 매연 시내버스 중점 단속




2차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계획 기간 중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는 급격히 신장됐고 수송능력도 현저히 늘어났다.
1971년 12월 말 자동차운전면허 소지자만도 총 51만8707명으로 전년도에 비하면 무려 11만5989명이나 증가했다. 이 중에는 1종 대형면허가 4만6836명이고, 1총 보통면허가 39만7256명, 1종 소형면허 6113명, 1종 특수면허 3342명, 2종 보통면허 1만4682명, 2종 소형면허 7544명, 2종 특수면허 299명, 2종 원동기면허 4만2635명이었다.
1972년부터 1976년까지의 3차 5개년기간 중 목표연도인 1976년에는 수송수요가 여객의 경우 671억7300만명(㎞)으로 추산됐는데 이는 1970년의 303억 6200만명의 2배나 되는 수치로, 연평균 11.9%의 증가율을 보인 것이다.
상공부 당국은 1972년 1월20일자로 신진·현대·아시아·기아 등 4개 자동차메이커를 제외한 군소 자동차조립공장의 폐쇄를 단행했다.
당시만 해도 전국에는 약 20개의 조립공장이 미국잉여물자를 불하받아 자동차를 조립, 국내시장에 공급했는데 4대 메이커가 신차제작을 본격화한 후부터는 단 1대의 차량도 등록을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 군소조립공장은 정비사업으로 전향하거나 아예 자진 폐쇄해 버렸다.
1972년 1월20일 김신 교통부 장관은 연두기자회견에서 안전수송체제 확립에 중점을 둔 운수행정을 펴나가겠다고 피력하고 또 전국을 10대 관광권으로 하는 관광개발 4개년계획을 확정·발표했다.
1월25일 정부는 2월1일부터 공공요금을 인상한다고 발표하고 자동차운임을 시내 일반입석버스 요금을 15원에서 20원으로, 시내좌석버스 25원은 30원으로, 택시기본요금 2㎞당 80원을 90원으로, 이후요금 350m당 10원을 500m 당 20원으로, 대기료는 10분당 50원을 10분당 100원으로 인상하는 한편, 시외버스요금은 포장도로 ㎞당 3원21전으로 28.9%, 비포장도로 ㎞당 3원59전으로 29.1%를, 그리고 합승(마이크로버스)은 포장도로 ㎞당 3원86전으로 26.4%, 비포장도로 ㎞당 4원95전으로 26.98%를 각각 인상했다.
또 서울시 당국은 용달차 기본요금을 8㎞에 500원으로 결정고시하고, 부산시당국은 급행버스 구간제운행을 폐지키도 했다.
그리고 서울시는 3월2일부터 18일까지 17일 동안 택시의 일제점검을 실시했으며, 한국자동차정비사업진흥회는 자동차기능공 양성을 위해 정비요원 1만8000명에게 기술교육을 실시했다.
1972년 하반기는 사실상 차량의 안전관리와 운수업체 경영관리개선에 주력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교통부는 6월29일 경부·경인·호남·영남 등 4개 고속도로를 운행하고 있는 700여 대의 고속버스가 각 노선별로 적정 대수를 투입·운행되고 있는지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KIST에 용역을 주는 한편 7월1일부터는 16인승 마이크로버스와 장의자동차의 일제점검까지 실시했으며 각 운수조합에서도 자율정비에 착수했다.
또 교통부는 7 6일자로 특정지역 차량이 타 지역에서 불법영업행위를 하다 적발돼 타 시·도에서 행정처분요구가 있을 때에는 규정에 의해 강력한 행정처분을 단행한 후 관계 시·도에 회부하고 만약 처분을 하지 않을 때에는 그 사유를 즉각 보고토록 했다.
그리고 교통부는 버스·화물·택시운수업체에게 정비 관리자의 배치와 선임현황 파악에 철저를 기하고 자동차의 일상점검제도를 확립하라고 각 시·도에 촉구했다. 뿐만 아니라 도시공해를 방지하기 위해 서울·부산·대구·대전·광주·인천 등 6대 도시에서 운행되고 있는 시내버스 중 매연발산 차량을 중점 단속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8월1일을 기해 중고자동차매매업자들에 대한 일제정비에 착수하고 이때까지 관장했던 인·허가 사무 중 80여건을 소속기관과 시·도로 대폭 이양했다.
그리고 1976년까지 3차 5개년 계획기간 동안에 승용차 7만1344대, 버스 5979대, 화물차 5만602대, 기타 1만6650대 등 도합 14만4575대의 자동차를 증차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교통부는 고속버스 등장 이후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시외버스 보호정책의 하나로 장거리노선을 단구간으로 조정, 고속버스와 연결운행체제를 확립하는 한편, 차량의 운용효율을 높여 경영개선을 촉진하는데 주력키로 했다.
또 차령 5년 이상 10년까지의 버스는 업자로 하여금 자진대체토록 유도하고 11년 이상의 노후버스는 일정기간내에 완전대체토록 개선명령을 발동했다.
이 해 10월1일 현재 서울시 인구는 604만 명으로 밝혀졌다. 이 무렵 현대자동차는 서독의 벤츠사로부터 엔진·액슬·브레이크등 50%의 부품을 도입하고 보디·시트·타이어·히터·에어컨등 50%는 국산을 사용하는 벤츠고속버스를 개발했다.
11월10일 박정희 대통령은 영산포 댐공사를 시찰하고 "머지 않아 대량수송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호남·영동·남해고속도로가 완전 개통되면 전국 어느 곳에서나 5시간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1일 생활권이 이뤄질 것이 틀림없다"고 장담했다.
한편 이 무렵 우리나라의 자동차공업의 기초를 다질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다.
세계 랭킹 1위의 GM이 한국에 진출, GM코리아(대표 김창원)를 설립했으며 기계류의 국산화추진은 물론, 1973년부터는 수출까지 넘보는 단계에 있었다. 이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은 1973년도 수출목표를 340만 달러로 책정했다.
1973년 1월19일 박정희 대통령은 교통부 연두순시에서 '종합운송체계' 확립을 강력지시하고, 교통사고예방에 만전을 기하라고 당부했다.
대통령은 당시 잇따른 빌딩화재사건을 예로 들면서 "실제로 이해관계가 깊은 손해보험회사들이 사전에 점검을 철저히 했더라면 큰 피해를 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교통안전문제에 있어서도 자동차교통사고는 자동차보험회사가, 해상사고는 해상손해보험회사가 차량과 선박의 안전도를 사전에 철저히 체크해야 사고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말하면서 "모든 교통유관기관은 유비무환의 정신을 발휘하라"고 당부했다.
이 지시가 있은 후 교통부 당국은 차량·선박에 대한 정비와 검사를 강화하고 자동차검사요원 신규채용에 있어서도 교통부가 취업희망자 명부를 직접작성, 순서에 의해 채용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등 법석을 떨었다.
이해 2월 25일에는 현 매매연합회의 전신인 한국자동차매매협회가 출범, 초대회장으로 김종옥씨가 추대됐고, 부회장에는 이용필, 전해수씨가 경선 끝에 당선됐다.
당시 제도권 매매업체는 1972년 1월 25일 1차 허가이후 4차에 걸친 허가로 전국에서 95개 업체가 탄생했는데 창립총회에는 59개 업체가 참서했다고 교통신보 3월 2일자는 보도하고 있다.
한편 이 시절 고속버스업계는 고객유치경쟁의 하나로 회원제 고객관리시스템을 도입, 회원에 가입하면 버스요금 할인은 물론 호텔 식음료비·백화점 구매가·병원진료비 등을 할인하는 마케팅을 전개해 눈길을 끌었다.
이를 알리는 신문광고가 교통신보에도 게재됐는데 회원증 견본과 함께 정장을 차려입은 청춘 남녀가 산야에 마주보고 엎드려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 옛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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