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택배업체 살찌우는 신규증차, 이대로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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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택배업체 살찌우는 신규증차, 이대로 좋은가
  • 이재인 기자 koderi@naver.com
  • 승인 201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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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사ㆍ지입차주 종속관계 격차 벌어져

무분별한 증차는 시장 선진화ㆍ부족난 해결 못해

"시장 파괴할 수 있는 위협적 요소 될 수 있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택배차 증차 방침이 가시화되면서,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지난 25일 개최된 ‘택배산업 육성 및 지원방안’ 공청회를 통해 공개됐다.

이날 제시된 내용은 증차관련 집배송 택배차의 증차대수 산정기준 및 신규증차된 사업면허 공급 대상자 선정 등의 세부 추진안과, 양도ㆍ양수 제한 및 실적 기반의 주기적인 평가체제 등 사후관리ㆍ운영 방안을 도입해 택배시장을 선진화해야 할 것으로 요약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직접 택배물량을 배송ㆍ관리하는 배송기사에 대한 근로환경 및 처우개선에 대한 실질적인 방안은 제시되지 못했고, 또 저단가 출혈경쟁으로 운송시장의 질서를 저해하는 택배사들의 치열한 경쟁구도를 완충시킬 수 있는 솔루션을 비롯한 운임비 개선 등에 대한 사항이 논의되지 못해 이날 공청회가 무의미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화물운송업계 종사자 및 관계자를 비롯해 전문가들은, ‘대국민 서비스’라는 명목하에 현행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을 위반해 자가용 택배차량의 시장진입을 유도, 불법행위를 서슴지 않은 택배사의 비도덕적 행위를 강력히 비판, 택배사가 주장하고 있는 차량 부족분에 대해서는 현재 시장에 공급된 사업면허를 양수하는 한편, 근무종사자들의 처우를 개선해 택배기사 부족난을 해소해야 하며 이런 자구 노력도 없는 택배사에게 증차라는 특혜를 부여하는 국토해양부는 즉시 이를 철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택배 증차 필요한가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택배시장은 지난 2001년 홈쇼핑 및 전자상거래 활성화로 연 10% 이상 지속적으로 물량이 증가해 지난해에는 연간 약 13억 개로 대폭 상승한 반면, 지난 2004년 허가제로 전환되면서 신규 증차 및 면허공급이 동결돼 택배시장에 집배송 택배차량 부족난이 가중되고 있고 올해 기준 현재 영업용 택배 차량이 약 1만~1만 4천여 대가 부족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화물운송시장 종사자와 더불어 택배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택배사가 주장하고 있는 택배차량 부족난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택배사들의 주장에 따라 허가제로 전환된 이후 택배차량이 부족했다면, 소비자들이 먼저 피부로 느껴 이를 공론화시켰을 것이고, 이를 통해 정부는 소비자ㆍ택배사ㆍ화물운송업계 종사자와 사회적 합의를 거쳐 신규증차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순서라고 택배기사를 비롯한 업계 종사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또 집배송 택배차량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배송기사가 부족한 것임을 지적, 택배기사 및 종사자의 근로조건 및 처우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채 증차가 추진된다면, 택배사가 피력하고 있는 택배차량 부족난이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업계 종사자는 “대다수의 택배사가 개별ㆍ용달 개인 운송사업자 또는 자가용 택배차주와 위ㆍ수탁 계약을 맺어 지입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지입차주 즉 택배기사들 경우, 새벽 5시에 출근해 밤 12시에 퇴근하는 근로환경에서 월평균 100만원으로 처우를 받고 있어 택배기사로 근무하기를 꺼린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만약 택배사들이 운임비 조정 및 근로조건을 개선한다면, 택배시장에서 근무하려는 지입차주들이 줄을 설 것”이라며 “택배차량이 부족해 증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택배사와 이를 수용하려는 움직임은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탁상행정에 불과한 것”이라 비판했다.

▲증차하면 택배시장 선진화 되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분별없는 증차는 택배를 포함한 화물운송시장 전체를 큰 혼란에 빠뜨리는 위험을 수반하게 된다.

택배사는 신규증차로 약 900~1000만원(1t 미만 기준)의 프리미엄 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차량을 확보할 수 있게 되고 이에 소요되는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게 된다.

이 비용을 택배터미널 등 시설투자와 연구개발에 투입해 택배시장의 가시적 성과를 거둘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택배시장의 선진화를 이룰 수 없는 장애 요소로 전락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먼저, 신규증차는 택배사와 배송기사의 위수탁 종속ㆍ귀속관계의 격차를 벌려 갈등을 심화시키게 된다.

‘갑’의 입장인 택배사의 횡포가 ‘을’인 배송기사에게 가중되는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며, 이로 인해 그간 제기돼 온 택배기사 및 종사자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여지마저 상실하게 된다.

이는 곧 택배사의 배송기사인 지입차주의 이직률 빈도가 높아짐을 의미하며, 신규 증차된 번호판이 남아도는 반면에 이를 부착ㆍ배송할 근무자가 부족한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즉 택배시장에 추가 공급된 번호판이 당초 취지와 달리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화물운송시장에 차량을 과잉 공급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국토부는 운송시장에 택배를 제외한 타 업종에는 차량을 유동ㆍ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공급을 제한하고 있고, 신규 공급된 택배 번호판의 용도 변경을 방지하기 위해 양도ㆍ양수를 제한하는 방안을 제시, 증차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신규 증차된 1.5t 미만 택배 번호판을 일반ㆍ개별ㆍ용달화물의 일반카고용으로 전환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공짜로 공급받은 택배 번호판을 매매해 프리미엄 값 약 900~1000만원의 부당이득을 취할 수 있는가 하면, 위ㆍ수탁 차주에게 관리비 명목으로 지입료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실예로, 현재 신규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 레커차 등 특수용도용 경우 타 시ㆍ도로 전출ㆍ전입한 후 이를 서류 위조 등으로 불법 대폐차해 브로커와 양도ㆍ양수, 이 세탁 과정을 통해 일반카고형으로 면허를 전환하고 있고, 심지어 이를 매매해 번호판 값을 버젓이 취하고 있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다시 말해 택배시장에 신규 증차는 화물운송시장의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 위협적인 요소로 풀이할 수 있다.

▲누구를 위한 증차인가

택배업체 중 상당수는 자사가 보유한 능력 이상의 물동량을 수용ㆍ확보하려 하고 있고, 이 때문에 근본적으로 택배시장 및 근무환경이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택배사들은 사업용 택배차량으로 운영하는 직영체제로 사업을 영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영업소 개설 등 몸집 불리기에 치중해 능력 이상의 물량을 수용해왔다.

급기야는 배송차량 대비 물량이 초과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택배사들은 개별ㆍ용달 등의 개인 운송사업자와 위ㆍ수탁 계약을 맺어 지입체제로 전환해 물량을 소화하고 있으나, 이들에 대한 처우 개선을 택배사들이 외면 또는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어 사업용 화물차를 소유한 개인운송사업자인 지입차주가 시장을 이탈하고 있다.

이는 택배사가 지입으로 운영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택배차량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지입차주 즉 택배시장에서 근무할 개인운송사업자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가운데 택배시장에 참여하려는 업체 수가 증가, 난립하면서 택배사간의 경쟁이 가열됐고, 생존에 사활을 건 택배사들은 운임하락에 가세함으로써 택배기사들의 근무환경이 한층 더 열악해져 영세성이 극에 달하고 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택배업체 수는 지난 1992년 9개에서 2009년 19개로 대폭 증가했고 택배화물 차주의 근로여건은 일평균 운행시간 약 8.9시간, 일평균 운행외 업무시간은 약 3.1시간으로 용달화물운송사업자의 일평균 근로시간 약 10.4시간보다 길고 노동 강도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

택배사 지입차주로 활동 중인 A씨는 “이런 근무환경이 개선되지 않은 채 택배사에게 증차 특혜를 부여한다면 택배사들의 횡포는 더욱 심화될 것이고 실제 화물을 배송하는 차주들의 영세성은 가중될 것”이라며 “지난해 6월 대통령이 택배현장을 방문해 근로여건을 개선하라고 지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개선된 것이 없는 상태에서 정부가 택배시장을 선진화한다는 명목으로 신규증차를 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도무지 납득이 안 된다”며 비난했다.

그는 또 “자가용 택배차를 고용한 택배업체들은 위법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왜 처벌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며 “직접 발로 뛰며 화물을 운송하는 개별ㆍ용달화물의 영세한 차주들의 목소리를 정부가 귀 기울여 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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