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7주년 특집] 경북도 '문경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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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47주년 특집] 경북도 '문경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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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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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팔달 '문경새재'관광명소 새 지평을 열다


입신양명 다짐하며 '꿈을 안고 넘었던 고개'
역사·문화·예술·전통을 잇는 '힐링명소'로
서울서 1시간40분 거리…국내외 관광객 증가

 


【경북】조선시대 영남지역 사람들이 한양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했다던 옛길 문경새재.
이제는 중부내륙고속도로 개통으로 서울에서 1시간40분, 대전 1시간20분, 부산에서 2시간10분이면 도달할 수 있다. 그야말로 동서남북을 가장 빠른 시간에 잇는 중간 지점에 문경이 있다. 
교통팔달 '문경새재'가 최근 교통수단이 다양화하고 전국 1일생활권이 가능해지면서 국내외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100선' 중 1위에 선정되는 등 문화·예술·역사를 잇는 사통팔당 교통망으로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경사스러운 소식을 가장 먼저 듣는 곳, 문경(聞慶)=
문경새재는 조선시대 영남 유림들의 기쁨과 슬픔이 함께 묻어있는 옛길이다. 과제 급제를 꿈꾸고 입신양명을 다짐하며 청운의 꿈을 안고 넘었을 영남 유림이 금의환향, 과거에 급제하고 돌아가는 선비들의 기쁜 소식을 빨리 전하기 위해 넘던 길, 경사스러운 소식을 가장 먼저 듣는 곳이라는 문희경서(聞喜慶瑞), 즉 문경(聞慶)이라는 지명의 유래이다.
문경새재는 조선 태종 14년, 1414년에 만들어진 관도이다. 영남에서 소백산맥의 준령을 넘어 한양으로 가는 가장 큰 길목이다. 관도가 되기 전인 조선 중기 때만 해도 하늘재 길을 대신하는 폭 1m 내외의 작은 길이 보부상을 비롯한 서민들이 다니는 길로 열렸다.
문경새재는 과거부터 여러 이름으로 불리었다. '조령(鳥嶺)'은 통일신라시대 처음 등장한 이름이며, 고려말 공민왕때 육문이 개통되면서 '초점(草岾)'으로 불렀다. 한학을 즐기던 선비들 입에서 억새가 우거진 고개라는 뜻의 '초점'으로 널리 불리었다고 한다.
정상까지의 높이는 해발 642m. 길 중에서도 가장 높은 길이라 새들도 날아서 넘기 힘들다는 '조령'이 '새재'다. 새재는 과거 영동의 추풍령, 단양의 죽령과 함께 백두대간을 넘나드는 3고개 중 으뜸이다. 주흘산과 조령산이 모여 지형 또한 험준하다. 산을 방패삼은 새재는 군사 요새였다. 임진왜란 당시 신립장군이 문경새재에서 왜군을 막지 못해 국방의 한이 서린 길이기도 하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한양으로 올라오는 적을 막기 위해 문경새재에는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등 3대의 관문이 만들어졌고, 관문을 따라 부속산성과 관방시설들이 축조됐다. 1관문 주흘관에서 시작해 제3관문 조령관까지 약 6.5㎞로 지금은 약 4시간 정도를 걸어야 한다. 이구 간은 현재 황톳길로 남아있어 국내 최고의 트래킹 코스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 '아름다운 길, 꼭 가봐야 할 길'= 지난 2006년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됐고, 최근에는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관광지 100선' 중 '1위'를 차지한 문경새재에는 자연 그대로 잘 보존된 흙길을 걷기 위해 매년 4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문경새재로 드는 입구에는 옛길 박물관이 있다. 문경새재, 하늘길, 토끼비리 등 문경지역에 있는 옛길과 조선의 10대 도로, 고지도, 여행기 등을 소개 전시하고 있다.
옛길박물관을 지나 단풍나무 길을 따라 걸으면 '문경새재과거길' 표지석이 보이고, 웅장한 '주흘관'이 펼쳐진다.
1관문의 성벽을 지나 2관문 조곡관 까지는 3㎞. 옛 선비들이 괴나리봇짐을 매고 걸었을 이 길을 지금은 남녀노소 누구나 맨발로 걷는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잘 다듬어진 황톳길을 맨발로 걸으면 견딜만한 통증에 건강이 저절로 찾아온다.
길을 따라 쭉 걸으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에 온 것 같은 '문경새재 드라마촬영장' 이 자리한다. 1999년 문경새재 도립공원내 6만5000여㎡부지에 KBS왕건세트장으로 건립됐다가 2008년 '대왕세종' 오픈세트장으로 다시 건립됐다.
세트 건축물 전체가 조선시대 양식으로 건립된 드라마촬영장은 조선시대 광화문, 육조거리등 126채의 조선시대의 초가, 기와지붕으로 자리한다. 이 드라마 촬영장은 폐광촌 문경에서 관광도시 문경으로 탈바꿈하게 된 문경관광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지금도 얼마 전 개봉된 영화 '관상'을 비롯해 '장옥정', '궁중잔혹사 꽃들의 전쟁' 등 웬만한 사극은 이곳에서 촬영되고 있다. 문경새재가 이렇게 사극촬영지로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세트장 외에도 성곽과 흙길, 뛰어난 전통소나무 산림 등이 잘 보존되어 있어 사극 촬영의 최적지로 꼽히기 때문이다.  
뛰어난 풍광을 따라 계속해서 걸으면 오른편으로 조령원터가 나오며 원터를 지나 왼편에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드나들던 주막이 원형대로 복원돼 있다.
호젓한 길을 따라 걸으면 조선시대 신구 경상감사가 업무를 인수인계하던 교귀정(交龜亭)이 보인다. 조선정조때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세운 '산불됴심비'도 나온다. 이 비석을 지나면 2관문이다. 2관문을 지나면 경사도 심해지고 급작스레 좁아지는 길이 천혜의 요새임을 알 수 있다.
3관문으로 향하는 길은 더욱 경사가 심해지고 동화원을 지나면 왼쪽의 좁은 오솔길에 책바위가 나오고 '장원 급제 길'로 접어든다. 돌을 책처럼 쌓아놓은 책바위에서 조선시대 선비들은 장원 급제를 빌었으리라. 지금은 해마다 입시철이면 학부모들이 찾아와 자녀들의 합격을 기원한다. 책바위를 지나 가파른 산길을 헤치고 나면 3관문 조령관이다. 조령관을 기준으로 북쪽은 충청도요. 남쪽은 경상도다.

▲국립아리랑박물관 문경 유치 추진=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민요이다. 우리민족의 삶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노래이다. 우리나라에는 60여종 3600여곡의 아리랑이 전승되고 있다. 문경에도 아리랑이 있다. 서양약보로 채보된 최초의 아리랑이다.
1896년 고종의 외무대신 헐버트박사가 펴낸 '조선유기(朝鮮遊記)'에는 '아라릉 아라릉 아라리오 아라릉 얼싸 배 띄워라/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 다 나간다'란 아리랑 채보 기록이 있다. 아리랑은 길 위의 노래이고 고개의 소리이다. 조선시대 500년간 한양과 지방을 잇는 연결로인 문경새재.
최근 아리랑 가사에 사용된 고개가 '문경새재'로 추정된다는 근래의 학계의 설이 부각돼 있다.
문경시는 이런 점을 들어 처음으로 국립아리랑박물관의 유치에 나섰다. 문경새재입구인 문경읍 진안리에 1만3000㎡의 부지에 1200억원을 들여 국립 아리랑박물관을 건립해 아리랑 문화의 중심지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정선, 진도 등 지역별로 아리랑 전수관은 있지만 한 지역에서 각 지역의 다양한 아리랑을 보고, 들을 수 있는 박물관이 없다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문경시는 국립아리랑박물관 유치를 위해 새재에 아리랑비를 세우고, 민요와 아리랑 연구서를 발간했다. 또, 2008년부터 문경문화원과 함께 ‘문경새재아리랑제’를 열고 있다. 올해 '2013문경새재아리랑제'는 지난 7월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과 학생 252명이 문경새재아리랑 다듬이 공연을 펼쳐 한국기록원의 공식 기록으로 인증을 받았다. 아리랑의 본향은 문경이며, 접근성면에서도 문경이 국립아리랑박물관입지의 최적지라는 주장이다.
한양과 영남을 잇는 관문에 위치하며 자연그대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옛길로 소문이 나면서 국내 여행자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힐링의 1번지로 자리 잡은 문경새재. 형형색색 단풍으로 물들고 맛좋은 사과축제가 열리는 가을 이맘 때 쯤이 가장 좋다.
고윤환 문경시장은 "문경새재는 청운의 꿈을 안고 넘던 고개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가 소통하고 문화와 예술, 역사를 잇는 사통팔달의 교통망으로 매년 4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자연을 맘껏 호흡할 수 있는 맨발로 걷는 황톳길, 자연생태공원, 오토캠핑장 등의 시설을 갖춰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힐링의 1번지이다"라고 말했다.
이성일기자 sllee@gyotong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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