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로 일궈낸 재활과 봉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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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로 일궈낸 재활과 봉사의 삶”
  • 박종욱 Pjw2cj@gyotongn.com
  • 승인 2013.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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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토부, 올 장애극복 재활상 수상자 3인 선정...  


지난 29일 국토교통부는 교통사고 장애인으로 자립에 성공한 3명을 선정해 교통사고 장애극복 재활상을 수여했다.

사고로 신체 일부가 훼손됐지만 강인한 의지로 자립에 성공한 이들은 봉사활동도 활발히 전개하는 등 감동의 장애극복의지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국토부는 2005년부터 장애극복 사례를 발굴해 매년 시상식을 개최하고 있다. 이들 3명의 장애극복 사례를 소개한다.

 

◇김진호(남‧60) : 1992년 어느 날 김씨는 광화문 미대사관에서 발생한 4중 추돌 교통사고로 삶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경추 2, 3번 탈골로 인해 하반신 마비 1급 장애인이 됐다.

김씨는 이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절망과 고통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다 가족의 지극정성과 보살핌으로 재활의지를 갖게 된다.

재활운동을 꾸준히 하며 바깥 출입을 할 수 있게 될 무렵부터 장애인과 함께 할 수 있는 도자기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전 직원이 장애인으로 구성된 작은 회사였지만 한국관광공사로부터 휘장업체로 등록되는 쾌거를 이루며 커다란 성공을 이룬다.

그는 이후에도 장애인직업재활시설장과 곰두리봉사회 은평구 지회장으로 임명받아 각종 봉사활동과 장애인직업재활에 앞장서는 일들을 하게 된다.

또한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 사회복지사자격증, 보육교사자격증, 건강가정사자격증 등을 취득하고 현재는 사회복지법인 곰두리복지연합 서울시협회장과 복지TV영상 사업단을 운영하는 등 소외계층과 사회복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형환(남‧50) : 1979년, 고등학교 2학년이던 김형환씨는 열차로 통학을 하던 중 열차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 순간 정신을 잃는 바람에 어떻게 떨어지게 되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꿈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김형환씨는 다리를 잃고 자신의 몸을 의족에 의지한 채 고등학교를 다니다 결국, 중퇴를 하고 방에만 갇혀 지내는 신세가 됐다.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게 돼버린 김형환씨는 방황의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부모님의 권유로 삼육재활원에 들어간 김형환씨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선생님과 자신보다 더 힘든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서부터 재활의지를 갖게 된다. 재활원 졸업 후 시골로 내려와 자그마한 도장 시계수리점을 운영하면서 결혼도 하고 사랑스런 두 자녀도 얻어 자립에 성공하게 된다.

이 후 1997년부터 곰두리차량 봉사대 일원으로 참여해 자신과 같은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위해 이동서비스를 시작했다. 2003년에는 영동군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 광고사업부 운영을 맡으며 장애인 일자리 사업을 하게 되었고, 2004년에는 저소득 장애인들을 위해 밑반찬을 만들어 제공하고, 장애인 낚시대회, 차량 이동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박종찬(남‧55) : 1978년 10월, 덤프트럭 운전기사로 전국을 누비며 열심히 삶을 일궈가던 박종찬씨는 악몽같은 교통사고를 당해 우측 다리 절단과 좌측 다리 운동장애를 입어 장애3급 판정을 받는다.

다리도, 직업도, 희망도 모두 잃은 박종찬씨의 곁을 지켜준 아내를 위해서라도 다시 일어서야만 했던 그는 포장마차에서부터 슈퍼마켓, 양복점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렇게 아내의 응원 덕분인지 도전하고 실패하는 과정에서 세탁소라는 천직을 만났고 당당히 자립에 성공하게 된다.

이 후, 2006년도에 2,000평의 농지를 구입하여 사과나무 묘목 650주를 식재하여 전 가족이 일치 단결한 결과, 매년 20%의 성장률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 박종찬씨는 자신과 같은 어려움에 처한 장애인들과 함께 과수원을 꾸려가는게 최종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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