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지원할 수 있지만 아무나 될 수 없는 고속버스 승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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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지원할 수 있지만 아무나 될 수 없는 고속버스 승무원
  • 정규호 기자 bedro10242@naver.com
  • 승인 2013.1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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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고속 공채 현장 르포]

지난 11월 30일 토요일 오전 7시 30분, (주)중앙고속의 97기 신입 승무원들이 대모산 입구 앞에 모였다. 해가 뜨기 시작하자 찬 공기는 뺨까지 올라왔다.

대모산 앞에 모인 97기 승무원은 총 15명으로 141명의 지원자 중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올라온 합격자들이다. 이들은 모두 4년 이상 시내․시외버스를 몰아본 베테랑 기사들이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올라온 만큼 그들의 눈빛에는 자부심과 굳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중앙고속은 이번 기수에 총 25명을 선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자격을 충족시킨 14명만 최종 합격 시켰다.  고도 비만과 고혈압, 당뇨병으로 16명이 신체검사에서 떨어졌고, 음주단속에 걸려본 경험자는 서류 접수 조차 받지 않았다.

일부 기사들 사이에서는 ‘버스업계의 사법고시’라고 표현할 정도로 아무나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고속버스업계에 따르면 승무원들의 평균 연봉은 4000만원~6000만원으로 버스 업계에서 가장 높고, 학자금 지원 등 사내 복지 제도는 유명 대기업 못지않다.

특히, 버스 기사 사이에서 최고 반열의 기사라는 이미지가 뿌리내리고 있어 40~50대에 마지막 꿈을 도전해 보겠다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룬다고 한다.

25명 모집에 141명 지원, 합격 14명…경쟁률 ‘10:1’
서류․면접․실기․체력․인성 등 12단계 검증 거쳐

중앙고속의 공고 채용(정규직) 과정은 지난 10월 21일 서류 접수를 시작으로 내년 1월 3일까지 총 73일 동안 12단계의 평가로 진행되는데, 금일은 8번째 단계인 ‘체력 측정’이 있는 날이다.

중앙고속 관계자는 “15명이 최종 합격된 것은 맞지만 나머지 실습과 훈련에서 낙오된다면 떨어지게 된다. 고속버스는 한 번의 사고가 사망에까지 이르는 대형사고이기 때문에 정원이 미달되더라도 승무원으로서의 자격이 충족되지 않으면 절대 뽑을 수 없다. 그를 위한 것이고, 국민을 위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등반을 시작한 지 30분이 지났을까.  신입 승무원들이 틈틈이 흰 종이를 꺼내 무언가를 중얼중얼 거렸다.

고속버스 운행 안전 수칙 등을 적어 놓은 종이를 읽고 외우고 있었다. 한 신입 승무원은 “산 정상에서 암기 시험을 보기 때문에 여유가 있을 때 외운다”고 설명했다.

드디어 산 정상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해 있던 선배 조교들은 곧장 암기 테스트에 들어갔다. 신입 승무원들은 가쁜 호흡을 가다듬고, 그동안 잠을 설쳐가며 암기한 것들을 쏟아냈다.

시험은 냉정했지만 통과를 바라는 선배와 반드시 통과해야 하겠다는 후배들의 염원이 느껴졌다.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모두 통과했다. 그제서야 선후배들은 얼싸안으며 고생했다고 등을 쓰다듬어 줬다.

기쁨도 잠시, 신입 승무원들이 가장 기피하는 테스트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기초 체력 테스트다. 팔굽혀펴기, 달리기, 윗몸일으키기 등의 7종목의 기초체력을 평가하는 것인데, 경찰청의 경찰 선발 기준과 똑같다.

곧장 한강고수부지로 이동했다. 

처음 시작한 테스트는 팔굽혀펴기.  1분에 30~40세는 31개, 40~50은 30개 이상을 해야 한다. 윗몸일으키기 30초에 24개, 21개를 각각 해야 한다. 이를 악무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고, 덜덜덜 떨리는 온 몸으로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이어나갔다.

이어진 테스트는 800m 달리기.  몇 몇 신입 승무원들은 긴장한 탓이지 후들후들 다리 떨리는 모습이 저 끝에서도 보였다. ‘팡’ 소리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다들 마음만큼은 우사인 볼트였다.

테스트 결과 1명이 “너무 힘들다”며 중도포기를 선언했고, 다른 1명은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병원에서 이상 없다는 소견이 나와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체력 측정을 통과했다.

앞으로 남은 일정은 ‘현장 실무 교육’이다. 내년 1월 2일까지 한 달 간 15시간씩(05~20시) 고속버스 운전 실기에 들어간다. 전 노선을 돌면서 그동안 베여있던 시내․시외버스 운행 습관을 고속버스 운전 방법으로 철저히 바꾸는 작업이 진행되는 것이다.

중앙고속 관계자는 “하루 14~15시간 동안 운전대를 잡거나 차에 타있는 것은 엄청난 강행군이기 때문에 가장 많은 탈락자가 발생하는 시기”라며 “(97기 승무원들이) 꼭 이겨내 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버스기사들 사이에선 ‘최고 반열 기사’ 인식 뿌리내려
연봉 4000~6000만원, 학자금 등 업계 최고 복지 보장

한편, 고속버스업계에서는 ‘기사’를 ‘승무원’ 또는 ‘승무사원’으로 부른다. 비행기, 크루즈 종사자들과 마찬가지로 최고의 서비스와 안전을 선사하기 위해 표현부터 차별화를 둔 것이라고 한다.

채용부터 교육, 투입까지 일련의 과정을 보니 말 뿐인 차별화가 아니었다.

어느새 시간은 오후 12시. 태양은 하늘 한 가운데에 떠 있었다.

최고의 승무원을 배출하려는 중앙고속의 노력과 최고의 승무원이 되려는 승무원들의 각오가 고속버스의 미래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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