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보조금', 불법경영업체까지 무차별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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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보조금', 불법경영업체까지 무차별 지원
  • 교통신문 webmaster@gyotongn.com
  • 승인 2007.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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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유류보조금, 국민 혈세가 샌다

-보조금 지급형태 전면 재고해야
-행정기관 간 협력 안돼 부실 야기
-국민의 혈세 사업자 주머니로


지난 9일 서울 중계동 인근 한 가정. 4평 남짓한 공간의 좁은 방에는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서울의 택시회사인 A교통에서만 7년째 근무하고 있는 L씨, 다른 회사에서 7년간 근무한 후 A교통으로 옮긴지 2년이 넘은 H씨, 또 다른 택시업체인 B통운에서 9년 간 근무하다 지난해 10월 사고를 이유로 해고당한 P씨.
이들의 공통점은 회사에 밉보여 해고를 당했거나, 현재 굉장한 압박을 받고 있어 회사나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있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왜 속된 말로 회사는 물론, 같은 일을 하는 동료로부터 '왕따'가 된 것일까.
"저는 택시회사가 기사들에게 돌아갈 정부지원금을 가로채고 있다는 언론보도를 접할 때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느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제 일이 되고 나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르더라고요. 그래서 회사에 이를 개선해 달라고 했더니 그때부터 (따돌림이)시작되더라고요." (H씨)
"저는 '법'에 대해서 완전 무지했지만, 법 관련 업무랑 전혀 무관한 택시운전을 하면서 노동법을 완전 터득했습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일이지요. 왜 제가 이러한 상황에 놓였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조금씩 어쩔 수 없이 떠밀려 오다보니 이렇게 됐네요." (P씨)
현재 A교통에서 근무하고 있는 L씨와 H씨는 수 년째 회사측의 부당한 처우를 개선해 달라며 2년이 넘게 법정투쟁도 불사했지만, 돌아온 것은 회사측의 냉대와 동료들로부터의 따돌림뿐이었다.
H씨는 "제가 문제제기를 한 다음날 친했던 동료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저를 피하더군요. 이유를 알아보니 회사측에서 저를 만나는 직원은 불이익을 주겠다는 압력을 넣었다고 하더라고요. 동료들을 이해는 하지만 서운한 것은 어쩔 수 없습디다."
H씨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혀 있었다.
이들이 평일엔 1일 2교대로 근무하고 오전근무에서 오후근무로 넘어가는 일요일은 24시간씩 총 28일을 꼬박 근무해 손에 쥐는 돈은 월 평균 130만원이라 한다.

유류보조금 지급 실태

정부가 이렇듯 열악한 택시산업현장을 개선하기 위해 내놓은 지원정책 중 하나인 유류보조금이 택시업체 사업자의 부가수입으로 전락하고 있다.
정부는 택시산업 지원을 위해 지난 2001년부터 택시연료인 LPG에 유가 인상분 중 일정분을 '유류보조금'이라는 명목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특히 지난 2003년부터는 유가 인상분 전액을 LPG구입자(회사 또는 택시근로자)에 지급하고 있다.
따라서 실제 유류비용을 부담한 사람에게 보조금이 지급돼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본지가 지난달 전국 택시근로자 86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택시근로자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류보조금을 전혀 받지 않고 있다고 응답한 근로자가 117명(22%)으로 응답하지 않은 사람(198명)을 제외하면 가장 많았다.
또 업체가 하루에 공급하는 연료 외에 본인이 추가로 부담하고 있다는 응답이 574명으로 전체 응답자의 66.4%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회사가 하루 평균 근로자 1인에 제공하는 LPG량은 25∼27ℓ 분에 해당하는 유류보조금을 제외하고, 기사들이 추가로 주유하는 연료의 보조금은 한달 평균 2만원∼4만원 수준.
문제는 기사들 개인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연료비에 대한 보조금을 택시업체에서 담당 관청으로부터 수령을 하고도 해당 근로자에게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 및 지자체가 지급하는 유류보조금은 ℓ당 186.50원으로, 이는 오는 6월말까지 적용된다.
따라서 택시근로자가 하루 평균 5ℓ씩 추가로 주유 한다고 가정한다면, 25일 근로를 기준으로 할 때 월 평균 2만3312원 가량의 보조금을 지원 받을 수 있다.
10ℓ를 추가 주유한다면 4만6624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이 같이 택시운전자에게 한달 평균 적게는 2만원에서 많게는 4만여원까지 유류보조금이 지급돼야 하지만 본지 설문조사 결과를 기준으로 한다면 전체 택시근로자 중 약 22%가 이러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22%의 근로자 몫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서울시가 지난해 7, 8월 2개월 간 관내 256개 업체 중 254개 업체에 지급한 유류보조금은 총 123억9179만원.
각종 증명자료를 허위로 제출했다는 의혹으로 현재 법적 소송중인 2개 업체를 제외한 모든 업체에 보조금을 지급했다.
건설교통부 지침에 따르면 회사가 보조금 신청서 및 세금계산서 등 구비서류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보조금을 지급 받은 경우와 지·도급 단속에 적발된 업체는 일정기간 지급을 중지하고, 상습적인 경우 사업자면허 취소 또는 형사고발조치 할 수 있게 돼 있다.
서울시가 본지에 밝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총 13개 업체 205대의 도급택시를 적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교부 지침대로라면 이들 13개 업체에는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아야 함에도 불구, 소송중인 2개 업체를 제외한 관내 전체 사업체에 유류보조금을 지급한 것이다.

지·도급 관행이 보조금 편취로 이어져

더 큰 문제는 서울시가 밝힌 이 같은 단속건 수에 비해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불법 지·도급 택시가 전국에서 운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지난 수 십년 간 지·도급 운영 관행을 바로잡으로 갖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여전히 전국 대다수 택시업체가 지·도급을 일삼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시 관계자는 "지입과 도급의 구분이 모호하고, 제보나 증거를 갖고 현장을 확인해 사진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여간해선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일례로 서울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A사는 일부 차량을 도급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한 번도 담당관청으로부터 적발되지 않았다.
이 회사의 노동조합 자료에 따르면 2005년 1, 2, 3월 조합원 수는 월별로 각각 79명, 81명, 83명이지만, 동년동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신고된 고지인원(근로자 수)은 1월 142명, 2월 141명, 3월 117명으로 기재돼 있다.
또 가장 최근자료인 지난해 2월에는 조합원 수가 116명이지만, 공단자료에는 135명으로 나와 있어 도급인원이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L씨는 "A사는 노조가 유니언 숍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노조의 조합원 수와 공단에 고지된 인원이 같아야 한다"며 "그러나 실제로는 근로자 수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조합에 등록되지 않은 고지인원은 모두 도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 회사의 경우 지·도급 단속에 적발됐더라면 원천적으로 유가보조금을 지급받을 수 없다.
그러나 서울시의 정보공개 자료에 따르면, 이 회사는 지난 2001년부터 현재까지 3개월마다 적게는 1100만원에서 많게는 8000만원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꼬박꼬박 지급 받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각 행정관청에서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지만, 이처럼 간단한 서류 대조작업만 이뤄졌더라면 훨씬 더 쉽게 단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도급 운전자 중 대다수가 유가보조금을 지급받지 못한다는 일반적 사실에 비춰볼 때 사업자들의 유류보조금 착취는 더 심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혈세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줄줄이 세고 있는 것이다.

-단속 왜 안되나

그렇다면 택시산업에 이 같이 불법이 만연돼 있는데 왜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 중 하나는 사업자들의 편취 수법이 갈수록 지능화되기 때문이다.
개인택시의 경우 개인이 사업자이기 때문에 각자 해당 관청에 자신이 사용한 연료분을 신고하지만, 법인택시의 경우 반드시 회사가 신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추가분에 대해서는 회사를 통해서만 지급 받을 수 있다.
택시업체는 이러한 부문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으며, 그 방법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대전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D운수는 차령만기가 4년이라는 점을 악용했다.
이 회사의 2003년 조기대폐차 정산내역을 살펴보면, 차령이 4년이지만 해당 차량 담당 운전근로자가 운행을 활발히 해 조기에 대폐차를 할 경우, 차량의 기사에게 말소일까지의 손실금을 산정해 이를 해당기사가 받을 수 있는 보조금으로 상계해 나가는 방법을 동원했다.
이 회사의 조기대폐차 정산내역에는 대전50바88XX 차량의 경우 등록일이 2000년 1월6일로, 차량 만료일은 2004년 1월5일이지만, 이보다 179일 앞선 2003년 7월10일 차량을 말소했다.
D운수는 이 차량을 4년 운행했을 때 해당 운전자의 추가연료분에 해당하는 유류보조금을 하루 평균 5342원으로 계상, 여기에 조기 대폐차 일 수인 179일을 곱해서 나온 95만6300원을 편취했다.
이 근로자는 열심히 일을 한만큼 돈도 벌었겠지만, 사용하지도 않은 미래에 발생할 보조금 분을 업체에 저당(?) 잡힌 것이다.
이 같이 사업자들의 수법도 교묘해 졌지만 무엇보다 단속을 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근본적으로 정부담당부처인 건교부와 각 지자체 간, 광역시 이상 대규모 지자체의 경우 시와 구청 간 협력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시에서 직접 단속을 펼쳐 업체를 적발하더라도 이를 해당 구청에 통보하지 않아 구청에서 적발사실과 관계없이 보조금을 지급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C씨는 "유류보조금은 택시근로자 개개인으로 봤을 때는 금액이 크지 않아 (기사들이)그리 큰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회사에서 이러한 심리를 이용하고 있다"며 "구청이나 시청도 관심이 없어 별로 관심이 없어 사업자들만 살찌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이 행정관청 간 협조체제가 전혀 안 돼 주무부처인 건교부는 지난해 지·도급 단속현황 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건교부 관계자는 "지난해 지·도급 단속 및 처분현황을 보내달라고 각 지자체에 요구했으나, 아직 제대로 취합이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 또한 "일부 구청만 협조가 되고 대다수 구청은 협조가 잘 안되고 있어 단속실적 취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해결방안 없나

이 같이 이상하게 지원되는 유류보조금 문제를 해결하려면 해당 관청에서 지·도급을 철저하게 적발해 보조금 환수 및 중단조치를 내리거나, 전액관리제를 도입하면 된다.
전액관리제가 도입돼 택시회사에서 기사들이 사용하는 연료 전량을 지원하게 된다면 이 같은 유류보조금 문제 자체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택시업체가 기사 개인당 25∼27ℓ 씩만 지원하는 이유는 노사간 임금협정서에서 이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이하 전택노련) 서울지부와 사업자가 체결한 2006년 임금협정 제5장 부칙 제20조에 따르면 '회사는 차령연료 전량을 지급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 단 근로자 과로방지와 정상영업활동과 무관한 연료소비분 및 통상적이며 객관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연료소비분은 제외한다'고 적시돼 있다.
이 문구를 근거로 서울지역 택시업체는 하루 6시간 40분(1인 기준) 기준 운송수입금에 해당하는 하루 50리터(2인 1차제, 1인당 25리터)만 기사들에게 공급, 이를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임금협정서 내용대로라면 근로자의 휴식시간을 많이 주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근로자 입장에서는 회사 사납금(1일 9만여원)을 맞추려면 사실상 근로시간 외 근무가 불가피해 추가 연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H씨는 "회사가 주는 25ℓ 분량으로 운행하면 사납금의 3분의 2도 채우지 못할 것"이라며 "회사는 이러한 현실을 잘 알면서도 이를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지·도급을 철저하게 단속하고, 전액관리제만 된다면 유류보조금 편취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 28일을 꼬박 근무해 한 달에 130여만원의 돈을 손에 쥐는 택시근로자에게는 2∼4만원의 유류보조금이 결코 작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정부와 각 지자체 등 행정관청은 지금이라도 국민의 혈세가 올바르게 사용될 수 있도록 철저히 단속해야 할 것이다.

특별 취재팀=김흥식기자, 오병근 기자, 이상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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