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버스업계, “차고지 절반 이상 이사할 판, 탁상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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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버스업계, “차고지 절반 이상 이사할 판, 탁상행정”
  • 정규호 기자 jkh@gyotongn.com
  • 승인 2014.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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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전세버스 차고지 등록기준 대폭 강화
▲ 현재 약 10곳의 전세버스 회사들이 차고지로 사용하고 있는 서울의료원 공영주차장. 과거에는 여객운수사업법(국가, 지방자치단체, 정부투자기관, 또는 정부출연기관이 관리·운영하는 토지는 차고지 요건 충족)에 따라 합법이었지만 주변에 주거시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분류되어 있고 최근에는 시가 하청을 준 업체와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차고지로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차고지 등록기준 여객·국토·건축법 규제 신설

업계, “차고지 절반이 부적합…앞날이 ‘막막’”

올해 초부터 서울시가 전세버스 차고지 등록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기존에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이하 여객법)만 지키면 됐지만 지금은 관계 법령의 규제를 추가했다.

서울전세버스업계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양도양수, 신규 증차를 하려면 차고지를 확보해야 하는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업계는 “세월호 여파로 힘든 상황인데, 규제가 왠말이냐”며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서울시가 네가 만든 법대로 네가 한번 지켜봐라” 등 비난 여론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전세버스업계 조사에 따르면 시 규제대로라면 전체 버스의 53%가 사업등록이 취소되거나 타시도로 이전해야할 판국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취재해봤다.

서울시는 그동안 시민의 민원 발생이 없는 범위내에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이하 여객법)에 나오는 4가지의 기준만을 지키면 차고지로 등록해 줘 왔다. 4가지 기준은 이러하다.

▲터미널 ▲국가, 지방자치단체, 정부투자기관, 또는 정부출연기관이 관리·운영하는 토지 ▲타인이 소유한 토지를 2년 이상 계약 ▲일반 주차장을 2년 이상 계약 등이다. 다른 지자체에서도 큰 거부감 없이 이 법을 따랐다.

그런데 유독 서울시만 올해 초부터 전세버스 차고지 기준 요건을 강화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과 ‘건축법’ 등의 규제를 추가 한 것이다.

본지가 입수한 시의 ‘전세버스 차고지 등록기준 관계법령 검토’ 자료를 보면 ▲준주거지역 ▲중심상업지역 ▲일반상업지역 ▲근린상업지역 ▲유통상업지역 ▲전용공업지역 ▲일반공업지역 ▲준공업지역 ▲생산녹지지역 ▲자연녹지지역은 차고지로 인정이 되고, ▲제1, 2종 전용주거지역 ▲제1종 일반주거지역은 인정이 안 된다.

그리고 ▲제 2, 3종 일반주거지역도 차고지로 사용할 수 없지만 12m 이상의 도로가 있고, 해당 구청장이 차고지로 인정해주면 차고지 등록이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다.

시는 국토교통부에 건의해 이같은 기준을 만들어도 무방하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바로 ▲제 2, 3종 일반주거지역이다. 서울전세버스 회사들의 차고지들이 이 지역에 대거 밀집해 있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전세버스조합은 지난 7월 시가 제시한 차고지 등록 기준대로 자체 조사를 실시했다.

조합의 ‘주요 주차장 이용면적별 실태결과’를 보면 업계 전체 차고지 면적 중 53%는 지금 당장 이사해야 할 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시가 제시한 차고지 규제 기준이 굉장히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E사는 서울 서초구의 한 대형 A주차장을 사용하고 있다. 이곳은 제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분류된다. 진출입로 폭이 12m가 넘어 서울시가 제시한 차고지 등록 요건에 부합된다.

그러나 시는 단순히 제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분류했고, 국토 이용에 관한 법률에 위반된다며 차고지 부적한 판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곳은 과거 서초구청에서 전세버스 차고지로 사용 토록 업무협약까지 맺은 곳이기도 하다.

구청은 사용해 달라고 전세버스회사에 요청하는 반면, 시는 불법 차고지라는 격이다.

이에 대해 시는 “해당 구청의 실무자가 법을 몰라 실수한 것일 뿐 법대로 보면 차고지로 허가를 내주면 안된다”고 설명했다.

▲ 서울 서초구의 한 주차장. 여객법에서 제한한 진출입 도로폭이 12m보다 넓어 차고지로서 적합하다. 그러나 시는 이곳은 제2종일반주거지역이라며 국토 이용에 관한 법에 저촉된다면서 차고지 불허 판정을 내렸다.

 

반대로 성수동에 있는 한 주차장은 진출입로가 12m가 안 돼 등록 요건에 부적합하지만 준공업지역으로 분류돼 통과가 됐다.

허점은 또 있다. 서울의료원 강남분원의 주차장은 전세버스 회사 10여곳이 차고지로 사용하고 있는 곳이다. 진출입 폭도 12m가 넘는다.

무엇보다 이곳은 시립 병원부지이기 때문에 여객법에서 규정한 ▲국가, 지방자치단체, 정부투자기관, 또는 정부출연기관이 관리·운영하는 토지에 부합돼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런데 시 관계자는 “이곳은 우리 시가 직접 운영하는 곳은 맞지만 주차장은 민간 사업자에게 운영권을 줘 지자체와 직접 계약한 것으로 볼 수 없어 법을 지킨 것이 아니다”며 “차고지 등록 부적격 판정을 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업계는 지자체가 관리·운영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하청을 준 업무도 ‘관리·운영’으로 충분히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대로 K회사는 최근 여객법에서 터미널 내에 차고지를 둘 수 있다는 조항에 따라 등록을 수리했다.

그러나 이 터미널은 노선여객전용터미널로 조성된 곳으로 사실상 전세버스차고로 부적합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문제는 또 있다.

행정상 잡초들로 무성한 지역이 주거전용지역으로, 주택 밀집 지역이 상업지역이나 기타 지역으로 잘못 기재돼 있는데, 이는 전 국토를 세밀하게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곳들을 단순히 서류로만 파악하려다보니 전세버스 차고지의 다양성을 시가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조합에서는 “대도시 특성상 차고기준을 충족하는 차고확보가 불가능한 현실에서 적정한 주차공간을 일정기간 계약하면 차고로 갈음하도록 여객법에 정하고 있으나, 구획선만 그려진 주차장과의 계약을 건축법을 적용하여 건축물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과도한 적용이며, 결국 이런 지역을 사용하고 있는 전세버스업체들은 불안한 제도에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논란은 특수여객업계까지 번지고 있다.

시의 차고지 기준대로라면 병원과 장례식장에 특수여객 차량을 둘 수 없다. 서류로만 차고지 등록기준을 가려내려다 보니 산업의 특성을 간과했던 것이다.

또, 특수여객이 경우 대형 버스와 달리 리무진, 스타렉스 같은 봉고차 위주의 차들이 많은데, 이번 차고지 규제에 똑같이 적용받아 대형 버스로 분류되고 있어 과도한 규제를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시는 반드시 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불법 차고지 기준은 묵인하면 안 된다. 만일 법이 옳지 못하다면 업계가 정부에 요구해 개정해야 한다. 시는 국토부가 만든 법을 따를 뿐이다”고 설명했다.

한 전세버스 전문가는 “최근 서울시의 전세버스 규제를 보면 장발장 소설에 나오는 ‘자베르 경감’과 다를 바 없다. 세월호 여파로 먹고 살기 힘든 판에 현실을 무시하는 각종 규제를 만들어 업계를 힘들게 만들고 있다. 명분은 당연히 자베르 경감처럼 악법도 지키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가 신설해준 차고지 등록기준은 좁디 좁은 서울 땅에서 지킬 방법이 없다. 그러니 더 이상 책상에 앉아있지 말고, 현장에 나와 대책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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