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시장 ‘노동 기본권 분쟁’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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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시장 ‘노동 기본권 분쟁’ 비화
  • 이재인 기자 koderi@gyotongn.com
  • 승인 201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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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 “처우개선 복지사업 지원 진행 중”

기사 “페널티 성과급제 진상 규명해야”

일을 관두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곳이 있다.

택배가 바로 그렇다.

흔히 택배기사로 불리는 화물운송업 종사자는,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브랜드 택배회사와 계약된 하청 운송사에 소속된 지입차주이거나 영업용 화물차를 매입한 형태의 개인 사업자로 크게 둘로 나뉜다.

이들 택배기사들은 사업자 대 사업자로서의 관계가 맺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약을 중도 해지하거나 소위 ‘갑’의 위치에 있는 물류․운송사로부터 직․간접적으로 통제받고 있다.

브랜드 택배회사의 소속원도, 그렇다고 도급업체 직원도 아닌 특수고용형태 노동자인 화물운송 종사자 ‘택배기사’들의 하소연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알아봤다.

▲‘들어올 땐 네 맘, 나갈 때는 내 맘’

택배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택배회사의 영업․대리점주와 용역 계약하거나, 00택배의 협력사라고 소개하는 물류․운송업체와의 위수탁 계약을 맺어야 한다.

서류상 개인사업자 신분으로서 계약은 체결되지만, 일감을 위해 구직활동자로 나선 택배기사들은 이해당사자들로부터 철저히 통제된다.

부당한 피해를 입더라도 노동자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사고를 당했거나 개인사유로 인해 택배 일을 중단해야 할 때 역시 본인 의지로 결정할 수 없다.

이는 계약서에 명시된 계약기간과 계약 해지에 대한 의무 조항 때문이다.

정례화된 계약내용과 양식은 없지만, 대부분 계약기간 도중 계약 해지를 요청할 때 택배기사(‘을’)는 대체인력을 수배해야 하며, 후임자에게 업무 전부를 인수인계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구인광고 등에 따른 비용은 일체 택배기사 본인 부담이며, 후임자를 찾지 못하거나 인수인계하지 못한 채 업무를 수행하지 못했을 시에는 계약위반 명목으로 익일 25~30만원 상당의 피해보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서류상 ‘갑’으로 표기돼 있는 택배 물류 운송사들은, 택배기사가 약속된 업무를 이행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손해를 메우기 위한 것이라며 이 비용은 용차 및 대체인력에게 지급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갑’질에 우는 ‘을’의 자화상

지난 7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는 자신들을 ‘현대판 노예’라고 소개하면서 화물운송 택배기사들의 노동 기본권을 보장하라는 내용의 고공농성이 강행됐다.

자신이 속한 CJ대한통운이 손해배상·가압류 철회와 계약해지 인원 최소화 등에 대한 교섭을 약속했으나, 요구조건을 수용하는 대신 사측이 제시한 모든 처분에 응하겠다는 서약서에 동의하라는 내용이 오간 게 시비 발단이다.

문제 요지는 지난 2013년 5월께 발생한 ‘CJ대한통운 배송거부’ 사태 당시 금전적 페널티 폐지 및 편의점 집하 마감 시간 단축 등을 골자로 사측과 합의된 사항이 여전히 이행되지 않고 있는데 관련 내용을 즉각 시행하라는 것이다.

이를 주장하고 있는 화물연대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은 배송거부 사태가 진행되자 택배기사들과 대화로써 해결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대체인력을 현장 투입시켰고 파업 3일째 되던 날 근무지 이탈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노조 간부를 상대로 30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가압류 청구 소송에 이어, 대체차량 투입을 저지한 이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형사고발하는 등 대기업의 우월적 지위로 노동자를 탄압함으로써 시대상 비극이 드러났다고 연대는 지적했다.

이에 대해 CJ대한통운은 고공농성에 참여한 울산지역 화물연대 소속 택배기사들이 먼저 무리한 요구를 했으며, 언제든지 의견 조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측에 따르면 반품 분실 시에 택배 기사가 물건 값을 배상하는 금전적 페널티에 대해 무조건 택배기사가 내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으나, 해당 택배기사에게 확인 절차를 거쳐 소명 기회를 부여하고 타당성이 인정된 경우에는 제외하는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다.

또한 요구하고 있는 대부분은 이미 개선된 내용들이며, 택배기사들을 위해 근무환경 및 처우개선, 복지증진 등의 지원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택배기사 성과급제, 오해와 진실

대대적인 복지제도를 시행하면서 관련업체들은 택배기사를 대상으로 한 만년 ‘을’ 딱지 떼기에 한창이다.

지원내용을 보면 택배기사 자녀를 위한 학자금부터 종합검진과 인센티브 등 다양하게 행해지고 있다.

택배기사들에 따르면 이런 제도들은 오배송, 임의배송, 상품파손 등에 부여되는 페널티로 쌓인 적립금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여러 이유로 실적이 좋지 못한 택배기사들에게 각출한 자금을 융통시키면서 택배회사가 생색내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관련 내용들은 정부와 유관기관에 최근 민원 접수됐다.

종합해보면 건별당 20원에서 최대 1000원으로 책정돼 있는 페널티 조항을 근거로 택배기사에게 벌금이 징수되고 있는데 택배기사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적용되는 이 내용의 법적 효력이 있는지와, 택배회사 자체적으로 평가해 근무점수가 높은 이에게 일부 정산해주고 나머지는 사용출처가 불명확하게 처리되고 있는 성과급 제도에 대한 진상규명해 줄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지난 6월 탄원서를 접수한 김씨는 “2012년 2월 입사 후 배송단가는 요지부동이고 지금까지 동복 한 벌, 하복 조끼 하나, 명절 선물세트 받은 게 전부인 반면, 택배회사가 정해 놓은 독소조항으로 인해 지난 4월 한 달 간 총 1721건에 대한 벌금이 적용됐다”면서 “페널티 제도뿐만 아니라 이를 근간으로 운영되는 성과급 제도도 이해하지 어려우나, 이보다 더 납득하기 힘든 것은 총 급여를 지급한 다음에 벌금을 납부하게 하는 게 아니라 본인 동의 없이 애당초 몫을 제하고 나머지 분을 급여로 지급하는 정산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택배기사들은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힘없는 소상공인의 목을 죄고 있다면서 사각지대에서 행해지고 있는 ‘갑’의 횡포에 대한 근절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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